▲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함에 따라 유가가 폭락하고 글로벌 여행 산업이 붕괴되고 이탈리아에서부터 중국에 이르기까지 곳곳의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에너지, 호텔, 자동차 분야의 기업들이 채권을 상환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출처= Barrons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기업들이 부채에 의지해 온 상황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막대한 기업 부채가 경제 피해를 악화시키고 금융 시장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기업들은 저금리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며 채권을 발행해 사업 성장을 위한 자금을 마련해 왔다. 국제금융연구소(Institute of International Finance)에 따르면 비금융 기업의 부채는 2009년 말 48조 달러에서 2019년 말 75조 달러로 폭등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함에 따라 유가가 폭락하고 글로벌 여행 산업이 붕괴되고 이탈리아에서부터 중국에 이르기까지 곳곳의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에너지, 호텔, 자동차 분야의 기업들이 채권을 상환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무더기 신용등급 강등이 발생하고 채무 불이행이 촉발되면 금융시장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경제적 충격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캐피탈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의 사이먼 매카담 글로벌 이코노미스트는 "기업 부채가 금융 시스템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쇼크

지난 주 주가가 폭락함에 따라 투자자들은 기업의 부채에 대해 점점 더 불안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기업 채권시장에서 채권을 사거나 매각할 수 있는 기능은 크게 떨어졌다. 기업 채권 수익률이 급등하고 있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기업 채권을 위험 자산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변동성이 급증하면서 회사채 자금 유출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의 최고신용거래전략가(CCS) 로트피 카루이는 "현재의 경기순환이 시작된 이후 디폴트와 등급 강등(downgrade) 리스크가 가장 높은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위험의 대부분은 송유관을 건설하고 다른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기 위해 최근 몇 년 동안 차입이 급증한 에너지 회사에 있다. 이들 기업들은 석유 수요 감소와 OPEC+의 감산 합의 불발로 유가가 1월 초 이후 50%나 떨어지며 심각한 압력에 직면해 있다.

항공, 호텔, 크루즈 산업 또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11일 발표한 유럽발 미국행 여행 금지조치는 결정타가 되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Fitch Ratings)는 "코로나바이러스가 항공업계에 빠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요가 회복되는 데 과거의 어느 충격보다 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글로벌 항공사 신용도에 하락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회사들도 위험한 상태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제조 공장이 문을 닫은 데 이어, 감염이 확산됨에 따라 유럽의 여타 지역과 미국의 자동차 공장들까지 공장 문을 닫게 될까 노심 초사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이미 수요 감소와 미-중 무역전쟁으로 3년째 판매 감소가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 미국의 회사채 가운데 ‘투자 등급’ 범위의 최하단인 BBB등급 기업의 비중이 전체 시장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출처= Bloomberg Barclays

누가 부채를 떠안고 있나?

신용등급 강등과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증가함에 따라, 투자자들의 관심은 과연 그 부채를 누가 떠안고 있는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매카담 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모기지 사태 때보다 은행들의 기업 부채에 대한 노출은 줄어들었지만, 문제는 ‘투자 등급’ 부채로 분류되는 등급 범위의 최하단인 BBB 등급 회사채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들 회사들이 이른 바 정크 본드(high-yield debt) 상태로 강등된다면, 투자 기금들은 그들의 강제 규정에 따라 그 채권을 투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은 더욱 압박을 받고 유동성은 마르게 될 것이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2011년 회사채 가운데 BBB등급 기업이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했는데, 현재 그 비중은 전체 시장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에 따르면 에너지회사들이 발행하는 투자등급 부채의 67%가 BBB 등급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는 전체 시장 평균인 50%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그리고 BBB 등급의 에너지 회사 채권 340억 달러는 이미 한 개 이상의 신용 평가 기관으로부터 부정적인 신용 전망 목록에 올라 있다.

게다가, 소위 ‘그림자 은행’(shadow banks)이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대출업체들보다 훨씬 규제를 덜 받는 금융 업체들이 많은 양의 회사 채권을 낚아 챘다. 10년 동안 이어진 저금리로 사모펀드, 헤지펀드, 심지어 연기금까지 수익률이 더 높은 위험 자산을 사들인 것이다. 국제금융연구소의 글로벌 정책계획 에미레 티프틱 소장은 이들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들이 고수익 부실 기업 채권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그렇게 많이 알지 못합니다."

시스템 리스크의 불씨 될 수도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주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기업 부채가 문제를 증폭시키고 다음 경기후퇴를 심화시킬 위험이 높다는 경보를 발령했다.

IMF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절반 정도 충격을 가상으로 기업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 중국,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 기업 부채 상위 8개국에서 19조 달러 상당의 기업 부채가 채무불이행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것은 이들 8개국 기업 총 부채의 40%에 해당되는 것이다.

실제로 채무 불이행이나 일련의 신용등급 강등이 발생하면 금융 시스템을 뒤흔들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올레그 멜렌티예프 정크본드 전략팀장은 "자금 출처가 고갈되면 신용 순환의 전환이 불가피하고 되돌릴 수 없게 되는 지점으로 신용시장이 빠르게 움직일 것이며, 채권발행업체들은 유동성 경색, 신용손실 증가에 직면하고 투자자들은 썰물같이 빠져나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IMF는 이런 상황이 되면 해고의 물결이 일 수 있고, 기업 투자는 더 떨어지며,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은행에까지 타격을 받게 되면서 기업들은 가장 필요한 기간에 대출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세계적인 불황이 덮치면서 실제로 그런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지더라도 바이러스 위협이 사라지면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시스템의 신용위험은 그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부채는 금융 시스템에서 경기와 상관 없는 자동 불안 유발 요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