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분당서울대병원 등 국내 연구진이 134개 피부질환을 진단하는 인공지능(AI)를 개발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연구진이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S’자 형태 식도인 ‘아칼라지아’ 치료와 관련해 내시경 근절개술이 효과적인 점을 확인했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이 유방암 예후의 새로운 예측방법을 제시했다.

134개 피부질환 진단 AI 개발

15일 연구 업계에 따르면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나정임 교수 연구진(공동연구자 아이피부과 한승석 원장, 아산병원 피부과 장성은 교수, 전남대병원 영상의학과 박일우 교수)은 최근 134개에 이르는 피부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AI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134개 질환에는 흔하게 발생하는 피부병의 대부분이 포함된다. 100개가 넘는 피부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AI가 발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말 글로벌 기업 G사에서 개발한 피부질환 진단 AI도 26개 질환군을 분류하는데 그쳤다. 국내 AI 기술 경쟁력이 선두 그룹에 뒤쳐져 있는 상황에서 피부질환 연구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세계적 수준을 보유하고 있음을 증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피부질환의 병변은 겉으로 보기에도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기존의 진단 AI는 제한된 질환 몇 가지에만 사용할 수 있고, 피부종양의 악성 여부 파악 등 단순 분류에만 그쳐 실제 상황에 적용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피부종양의 양성과 악성을 구별하도록 훈련받은 AI에게 아토피 피부염 사진을 보여주면 악성질환으로 오진하는 등 비의료인도 쉽게 구별 가능한 질환이라 할지라도 직접 훈련받지 않은 경우 판별에 실패하는 한계가 있었다. 

▲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나정임 교수. 출처=분당서울대병원

나정임 교수 연구진은 보다 많은 피부질환을 분류하고 진단할 수 있는 AI의 개발을 위해 합성곱 신경망(CNN)이라는 특화된 알고리즘을 활용해 22만장에 이르는 아시아인 및 서양인의 피부병변 사진을 학습시켰다.

개발된 딥러닝 기반 인공지능 모델은 피부과 전문의에는 못미치지만 레지던트와 동등한 수준으로 피부암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항생제 처방 같은 일차적 치료 방법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134개의 피부질환을 분류하는데 성공했다. 

피부암 진단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피부과 레지던트 26명과 전문의 21명이 3501개의 사진 데이터를 진단한 결과, 단독으로 진단했을 때의 민감도는 77.4%였으나 AI의 도움을 받아 판독했을 때는 86.8%로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비의료인 23명을 대상으로 피부암을 감별하게 해본 결과, 처음에는 민감도가 47.6%에 불과했지만 AI의 도움을 받았을 때는 87.5%로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의료인과 의료진의 피부암 진단 특이도 역시 AI의 도움을 받았을 때 약 1% 증가했다. 

기존 연구가 AI와 의사의 진단 능력을 단순 비교한 것에 그친 것과 달리 이번 연구는 AI가 의사의 진단능력을 향상 시킬 수 있으며, 비의료인이 AI의 도움을 받을 경우 피부암을 2배 가량 더 잘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도 입증했다.

의사, AI, AI의 도움을 받은 의사 중 AI의 보조를 받은 의사가 가장 진단 능력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진이 AI의 조력을 받는 것이 피부질환을 진단하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이라는 의미다. 

나정임 교수는 “AI의 정확성은 사진의 초점, 구도 등에 따라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인간의 지성이 보완할 수 있는 것으로 결론적으로 의료진은 AI의 도움을 받아 피부질환을 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진단할 수 있었다”면서 “향후 의료계에서 AI와 의사는 서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할 것이며 의사의 진단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조력자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앞으로 후속 연구를 통해 이러한 알고리즘이 상용화된다면 일반인들이 특별한 장비 없이도 스마트폰이나 PC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피부암을 검진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가 피부과에 조기에 내원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피부연구학회지 ‘JID(Journal of Investigative Dermatology)’ 최근호에 게재됐다.

‘S’자 식도 아칼라지아, 내시경 근절개술 효과적

식도 아칼라지아(이완불능증) 치료법 중 하나인 경구 내시경 근절개술이 아칼라지아가 매우 진행돼 식도가 심하게 확장된 경우에도 효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박효진, 윤영훈 교수 연구진은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식도 아칼라지아로 경구 내시경 근절개술을 받은 환자 중 식도의 확장과 굴곡이 심하게 진행된 13명의 치료 결과를 분석했다.

▲ 정상식도. 출처=연세대강남세브란스병원

식도 아칼라지아는 식도와 위의 경계 부위인 하부식도 조임근이 불완전하게 이완되면서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증상이 나타나는 식도 운동성 질환이다. 병이 진행되면 식도의 내강이 크게 확장되고 식도의 굴곡이 심해져 ‘S’자 형태로 변한다. 일반적으로 약물 치료, 내시경 풍선 확장술을 먼저 시도할 수 있지만, S자 형태로 진행된 아칼라지아는 기존 치료에 효과가 좋지 않아 수술(근절개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 일반적인 식도 앜라라지아. 출처=연세대강남세브란스병원
▲ 진행성 식도 아칼라지아. 출처=연세대강남세브란스병원

연구진은 S자형 식도 아칼라지아 환자 13명에게 수술 대신 경구 내시경 근절개술을 시행했다. 시행 결과 모든 환자가 삼킴곤란 등의 증상이 개선됐고 합병증 발생은 없었다. 11명은 식도의 형태도 개선되는 효과가 확인됐다.

박효진 교수는 “최근에는 최소침습수술로 회복기간과 합병증을 줄이고 있지만 개복 또는 복강경 수술은 여전히 환자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면서 “경구 내시경을 통한 근절개술이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난 만큼 환자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윤영훈 교수는 “식도 아칼라지아는 식도암의 전암 병변(암으로 변하기 쉬운 질병)으로 정상인보다 약 7배 위험도가 높다”라면서 “아칼라지아 환자는 정기적인 내시경 검진 등 식도암 예방 및 조기발견에 주의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성과는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ㆍ운동학회 국제학술지 ‘JNM(Journal of Neurogastroenterology and Motility)’ 최근호에 게재됐다.

유방암 예후 새로운 예측방법 제시

비만이 유방암 예후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내장비만의 염증 활성도는 비만이 미치는 유해한 영향의 핵심기전으로 알려졌다. 최근 폐경기 여성에서 비만과 유방암의 중요한 예후인자인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와의 관계가 세계최초로 규명돼 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날까지는 비만이 폐경기 여성에서 유방암의 발생도를 높이고 유방암 환자의 사망률을 증가시킨다고 알려져 왔지만 비만의 핵심기전인 내장비만의 염증 활성도와의 관계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고려대 안암병원 핵의학과 김성은 교수와 박기수 교수 연구진(김성은 교수, 박기수 교수)은 내장비만의 염증 활성도와 폐경기 유방암 여성의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와의 관계를 규명했다.

▲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김성은 교수. 출처=고려대학교 안암병원
▲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박기수 교수. 출처=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연구진이 수술 전 PET/CT검사를 시행한 유방암 수술환자 173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폐경기 유방암 여성에서 내장비만의 염증 활성도가 높을수록 유방암의 생존율이나 치료방법을 결정하는 중요한 예후인자인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가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성은 교수는 “내장비만의 염증 활성도는 핵의학적 영상 방법인 양전자방출단층촬영 (PET/CT)을 통해 평가할 수 있는데, 이번 연구는 폐경기 여성에서 급증하고 있는 비만과 유방암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면서 “향후 폐경기 유방암 여성에서 진단 및 치료 효과 예측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성과인 ‘Visceral fat metabolic activity evaluated by preoperative 18F-FDG PET/CT significantly affects axillary lymph node metastasis in postmenopausal luminal breast cancer’는 국제적 학술지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