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국산차 업체들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앞서 신차 출시 일정을 줄줄이 보류·연기하고 있다. 중국을 주요 생산기지로 둔 협력사로부터 부품을 원활히 공급받지 못함에 따라 당초 계획한대로 신차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해외에 본사나 모그룹을 둔 완성차 업체들은 또 글로벌 브랜드 전략의 큰 흐름에 발맞추느라 국내 소비자들이 원하는 수입 차종을 충분히 들여오지 못하고 있다.

신차에 대한 소비자 갈증이 제때 해소되지 못하는 가운데, 현재 단종된 차량들이 일부 소비자들로부터 새삼 주목 받고 있다. 국내 판매되는 동안 인기를 구가했다가 단종된 후 희소 가치를 더하거나, 높은 내구성으로 현재 차도를 다니는 구형 모델들의 가치가 다시 조명 받는 분위기다. 해당 차량들은 다수 중고차 거래업체나 관련 플랫폼을 통해 활발히 거래되며 상품성을 입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기준 차량등록 현황을 파악한 결과 중고차 거래(이전 등록) 건수는 369만5171건으로 집계됐다. 2016년(378만116건) 이후 작년까지 4년 간 건수는 등락폭을 나타냈지만, 같은 기간 신차 등록 대수가 180만대 수준을 유지한 점을 미뤄볼 때 중고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높은 수요를 가늠할 수 있다.

활발히 이전 등록돼 ‘현역’ 운행되고 있는 차 국산차 가운데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양사를 제외한 국산차 업체의 일부 단종 모델이 눈에 띈다. 현대차·기아차가 광범위한 영업·서비스망을 앞세워 내수 국산 신차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나름 유의미한 수준의 고객 관심을 끌고 있다. 주요 모델로 한국지엠 올란도와 쌍용자동차 체어맨 등 2종이 꼽힌다.

▲ 한국지엠 올란도. 출처= 한국지엠

올란도·체어맨, 상품성과 후속모델 없는 희귀성으로 가치 확보

준중형 다목적 차량(MPV) 올란도와 대형 세단 체어맨은 현재 각 제조사의 라인업에 같은 차급의 후속모델이 포함돼있지 않은 점으로 희소 가치를 높이는 모델이다.

올란도는 2018년 6월 단종됐다. 단종 직전 판매량이 300대 수준으로 낮아지는 등 수요가 감소하기도 했지만 주 이유는 생산처인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폐쇄됐기 때문이다. 올란도는 2011년 처음 국내 생산 차종으로 출시된 이후 8년 간 동급 경쟁 모델인 기아차 카렌스의 고객 수요를 위협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7인승에 양호한 주행 성능과 2000만원대의 합리적인 가격대로 많은 호응을 얻어왔다. 한국지엠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도 상품성 높은 올란도의 단종을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중고차 거래 업체 SK엔카 공식 사이트를 살펴보면 올란도의 2015년 연식 모델(2.0 디젤 LTZ 프리미엄 기준)은 990만~1250만원 가격대에 거래되고 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이 올해 발표한 비영업용 승용자동차 잔가율 자료를 토대로 출고 5년 된 올란도의 신차 가격에 잔가율(0.368%)를 적용할 경우 각각 909만~988만원으로 집계된다. 당국의 잔가율을 적용한 가격보다 좀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 쌍용자동차 체어맨W. 출처= 쌍용자동차

쌍용차는 체어맨을 1997년 출시한 지 20년 지난 2017년 단종했다. 체어맨은 처음 시장에 판매될 때부터 단종될 때까지 끊임없이 쌍용차를 둘러싼 대내외적인 위기를 돌파해왔다.쌍용차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 위기를 거치는 동안 회사 매각, 대규모 구조조정 등 사태를 겪었다.

체어맨은 이 같은 풍파에도 10년 넘게 브랜드를 유지했지만 2015년 현대차의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가 출범함에 따라 결국 국내 고급세단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체어맨은 지금도 길거리를 정상적으로 활보하고 있다. 쌍용차가 20년 전 체어맨을 개발할 당시 독일 완성차 업체 메르세데스-벤츠와 기술 제휴하는 등 공들임에 따라 탄탄한 내구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쌍용차는 체어맨 시리즈에 벤츠의 엔진, 변속기, 디자인 요소 등을 적극 반영했다. 이는 체어맨 브랜드 자체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체어맨 전문정비업체 씨엠모터스의 김종훈 대표는 “씨엠모터스에서 현재 관리하고 있는 체어맨 고객 차량이 1000대 정도 달한다”며 “쌍용차의 자동차 철판 강성과 벤츠의 파워트레인·디자인 특성이 결합된 체어맨은 동시대 판매됐던 경쟁사 모델보다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국내 시장에서 나타나는 각종 자동차 소비 경향이 얽힘에 따라 단종 모델의 마니아 고객층이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단종된 구형 모델의 떨어지는 성능은 과거에 비해 발전한 개조(튜닝) 기술력으로 보완할 수 있다. 이 경우 단종 모델이 구식 아닌 레트로(복고) 감성을 제공하는 차량으로 시장에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밖에 중고차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는 점도 단종 모델에 대한 수요를 높이는데 기여하는 요소로 지목된다.

익명을 요구한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단종 모델은 A/S 부품을 수급하기 어렵거나 제품 자체에 대한 무관심 등 요인 때문에 갈수록 잔존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라면서도 “최근 차별화한 제품 경험을 원하는 소비 성향이 자동차 시장에도 나타남에 따라 단종 모델이 다시 주목받는 것으로 분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