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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상추쌈이 나왔다. 불같이 화가 났다

구내 식당은 요술쟁이 같았다.

월요일엔 만둣국, 화요일엔 된장국, 수요일엔 콩나물국, 목요일엔 미역국 이렇게 매일 같이 다른 국이 나왔는데, 먹어 보면 국물이 같았다. 마치 엄청나게 큰 통에 똑 같은 육수를 부어 놓고 만두, 된장, 콩나물, 미역만 대충 넣어서 퍼 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밥을 먹으면서 ‘오늘 미역국에서 왜 어제 먹은 만둣국 맛이 느껴지는 걸까?’하며 밥투정을 하기도 했다.

손님을 만나서 외부에서 한 식사가 많았지만 기간으로 따지면 직장생활 중에서 절반 이상은 구내식당 생활이었던 듯 하다. 군대생활 28.5개월을 포함하면 더 길다. 나머지는 회사 근처 식당에서 해결했다. 체중과의 상관 관계를 생각해보면 체중의 최고치인 90키로그램 정도를 유지했던 때는 구내식당 시절이 아니었다. 물론 운동과 술의 상관관계도 있지만, 나는 술을 먹어서는 살이 거의 찌지 않는 편이다. 대신에 식사량은 많아서 평소 컨디션에선 웬만한 식당에서 두 공기는 기본이다.

집에서는 물론 집 바깥 그 어디서도 밥 투정을 거의 해 본 적이 없지만, 구내식당 밥은 정이 가지 않는다. 희한하게도 똑 같은 구내식당 밥과 반찬도 개별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 놓으면 맛이 달라진다. 손님이 방문해서 미팅을 하다가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할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땐 특별히 요청을 해서 별도의 작은 식당에 준비를 부탁했다. 밥이나 찬이나 국이나 모든 것이 구내식당 음식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럴 땐 나도 기가 찬다. 식판에 덩어리진 밥을 퍼 담고 반찬들을 대충 담으면 깔깔하던 입맛이 예쁜 사기그릇에 담긴 때에는 두 그릇이 기본이었다. 손님들도 밥이 맛있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조심하고 건강하게 일을 계속하는 것이 곧 애국

예전에 울산의 어느 기계공장에서 공무반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매 식사 때마다 서너 가지 찬 중에 한 가지는 고기나 생선 같은 단백질 위주여서 나름 괜찮았다. 가난한 학생이 사먹을 수 있던 음식이라고 해 봐야 분식 위주의 싸구려 음식일 뿐이어서, 당시엔 구내식당 밥에도 감사했다. 위험한 일들은 알바생인 나한테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기껏 해봐야 공구를 챙기고 심부름하고 그리고 자잘하고 덜 위험한 일들을 했다. 물론 빨간색으로 코팅된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손은 늘 기름때가 묻어서 지저분했다. 식사시간이라 대충 씻기는 했어도 여전히 지저분했다.

그날은 제육볶음에 상추쌈이 나왔는데, 배도 한참 고픈 참이어서 밥, 고기, 상추를 고봉으로 쌓아놓고 정신 없이 먹었다. 처음엔 손이 지저분한데 하는 꺼림칙한 느낌이 있었지만 상추쌈 몇 번에 손이 하얘지고 나서는 그냥 먹었다. 결국 그날 손에 묻었던 기름 때를 상추에 발라서 내가 깨끗이 다 먹어 치운 셈이다.

“밥 먹기 전에는 손이 까맸는데, 먹고 나니 하얘졌어요.”

함께 일하던 공무반 아저씨한테 농담을 한 마디 던졌더니 돌아온 대답은 가관이었다.

“우린 늘 그래.”

그때가 1993년 중반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얼추 삼십 년이 다되어 간다. 새삼스레 그 때 일이 기억나는 것은 심각해진 코로나19 사태 때문이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두 가지가 기침할 때 침이 튀어나가지 않도록 옷 소매로 가리거나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물만 보면 손을 씻는 것이다. 그런데 확진자가 매일 오륙백 명이 쏟아지던 그 시기에도 계속해서 매주 한번 정도는 쌈이 나왔다. 식판을 들었다가 순간적으로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사전에 구성한 식단이라고 해도 이런 비상 시국이면 생각이 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 날 난 쌈류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나머지 찬으로 식사를 했는데, 식사하는 내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혹시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지 슬쩍 주위를 보며 한 두 마디 떠봤는데, 아무도 거기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식당에 음식을 배식하러 온 남의 회사 직원에게 따질 수는 없었다. 꾹 눌러 참고 인사총무를 관장하는 실장에게 넌지시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쌈이라면 엄청 좋아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쌈을 계속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었다. 식단 구성을 인사총무실에서 하는 것도 아니었고, 음식을 만들어 공급하는 업체에서도 이렇게 전염병이 위험해 질 것을 사전에 알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상황이 벌어진 다음에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 가에 달려있다. 미리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만전을 기하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우린 아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임했다가 큰 일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곳도 있다. 그 이후로 식단에서 손을 이용해야만 하는 메뉴는 사라졌다. 발 빠르게 조치를 취해준 해당팀도 그렇고 조치에 응해준 배식업체에도 감사의 마음을 먼저 전하고 싶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곳은 베트남의 큰 사업장 두 곳을 메인 생산 기지로 운영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기 훨씬 전부터 선제적으로 할 수 있는 여러 조치들을 해왔다. 임직원 3,000명이 훨씬 넘는데 누구 한 사람의 감염으로 인해 미칠 수 있는 여파는 상상을 불허한다. 때문에 조심조심 또 조심하는 것만이 방법이다.

코로나19사태 두 달이 가까워오자 여기 저기서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이 늘었다. 늘어진 방학이 좋아서 집안에서 뒹굴 거리던 아이들이 평소처럼 학교 가서 친구들과 수다 떨고 공 차고 놀고 싶다고 짜증을 낸 지도 오래다. 만나면 반갑다고 서로 맞잡아 주던 손이 그립고, 퇴근 후 동료들과 삼겹살에 함께 하던 소주 한잔도 간절하다. 아무 생각 없이 여기 저기 들러서 살 거 사고 기웃거리던 생활도 그립고 가끔씩 문화생활이라며 극장에 가서 보내던 시간도, 저녁이면 가서 땀 흘리고 운동하던 아파트 헬스장도 아침 저녁으로 기웃거린다. 혹시라도 헬스장 불이 켜져 있지 않나 하고 말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핵심은 ‘팀 의식’이다

다들 그렇듯이 나 자신도 걱정이 되지만 가족 걱정이 젤 많다. 천방지축 뛰놀던 아이들이라 행여라도 하는 마음에 ‘하지 말고’, ‘가지 말고’ 만 읊조리게 된다. 생일이라 맛있는 외식을 기대하는 아이들에게 사가지고 집에서 먹었고, 머리를 깎으러 가겠다는 큰 애에게 사람들 많이 다니는 쇼핑몰은 위험하니 한 두 주 정도만 있다 가라고 했다. 인공잔디를 깔아 놓은 동네 운동장이 쇠사슬로 잠겨있어 자전거 타고 공 차기도 못한 지 오래다. 심지어는 털이 너무 자라 지저분해진 강아지 정기 접종과 털깎기도 두어 주 뒤로 미뤘다. 이해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대할 때면 뭐라고 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

“코로나는 아주 위험하지는 않아서 치료 받으면 금방 나아. 그러니 너무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그렇지만 어른들이 더 무서워하잖아요?”

“우리 가족 중의 누가 코로나에 걸리면, 잘못하면 아빠 회사까지 문을 닫아야 해.”

“왜요?”

“코로나가 무서운 건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인데, 아빠는 계속 사무실에서 일을 해 왔기에,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한 사람들도 검사 받아야 되고, 방역하려면 일도 못하겠지.”

“그렇구나.”

“그러니까 서로서로 조심할 수 밖에 없어. 그게 애국하는 거야.”

나 한 사람이야 하는 생각이 아니라 그 어떤 가능성도 차단하고 조심해서 보호해야 할 것이 산업이다. 그렇게 하나 하나가 모이면 국가가 된다. 전염이 되고 싶어서 일부러 걸리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미리 조심하는 것이 최선이다. 지금의 생활이 어떻게 바뀌었든지 간에 평소대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다 소중하다. 코로나 전장에 투입된 사람들이 ‘전사’와 ‘영웅’으로 칭송 받는다. 당연하다 그들은 생업을 내팽개치고 직접 싸우고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오늘도 마스크를 하고 출근해서 퇴근때까지 하던 일 계속하는 모든 사람이 전사라 불려도 손색없다.

비교적 주목 받지 못하고 넘어갔지만, 경영계의 거장인 잭 웰치가 지난 3월 1일 타계했다. 구조조정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그는 ‘20세기 경영의 신’이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가까이에서 모시기가 대단히 힘든 리더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업적이나 교훈은 되새길만한 것이라 생각된다. ‘Before you are a leader, success is all about you. When you become a leader, success is all about growing others. 리더가 되기 전이라면 성공은 모두 당신 것이지만, 리더가 된 다음의 성공은 다른 사람들의 성장에 맞춰진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서로 지켜주는 안전이 첫 번째라는 생각이다.

잭 웰치 매니지먼트 연구소 (Jack Welch Management Institute)의 CEO인 딘 시펠은 최근 인터뷰에서 ‘‘팀이 전부다’는 점을 배웠다. 리더는 본인의 자존심을 언제 내려놓아야 할지 안다. 본인보다 더 똑똑한 사람을 채용하고 그들이 일을 하도록 놔둬야 한다. 나는 인내하고 사람들을 서포트하는 리더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잭 웰치의 교훈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핵심은 ‘팀’에 있다. 코로나가 아니라 코로나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산업 현장은 쉼 없이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보호하고 이끄는 산업 현장의 모두가 전사라는 생각이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20.03.17  1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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