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16일 전주시를 방문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소상공인들을 만나 "전주시와 시민들께 박수를 보낸다"면서 "정부도 상상력을 발휘해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4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추가경정예산의 편성을 공식화하며 재차 "정책적 상상력 제한 두지말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말한 정책적 상상력은 코로나19 사태로 흔들리는 국가 경제를 바로잡기 위한 '과감하고 속도감 있는 로드맵'을 의미한다. 과연, 문 대통령의 공언은 현실이 되었을까.

▲ 아리따움 라이브 명동의 매장 내부는 철거가 진행중이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기자

"다 죽는다"
세계보건기구 WHO가 11일(현지시간)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팬더믹(대유행)을 선포한 가운데, 세계는 지금 최악의 전염성을 자랑하는 질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탄탄하고 투명한 방역 대응에 나서며 말 그대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수출지향모델을 가진 국내 경제는 사실상 '빈사'상태다. 소비심리는 바닥을 치고 있으며 여행과 유통업계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수의 기업들이 '필사즉생 생즉필사'를 외치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으나 매장은 줄줄이 폐업하고 있으며 거리에는 인적마저 뚝 끊기고 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 주인은 "이대로는 다 죽는다"면서 "아침마다 식당 문을 여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고 하소연했다. 오랜 단골인 기자와 만나 연거푸 담배만 태우던 그의 씁쓸한 미소에는 생각하기도 싫은 섬뜩한 절망마저 켜켜히 쌓여있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지점이다. 실제로 OECD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한 지난 2월 한국의 소비자신뢰지수(CCI)는 1월과 비교해(100.0)보다 0.4포인트 하락한 99.6를 기록했으며, 낙폭은 자료 집계가 완료된 OECD 25개국 가운데 가장 컸다. 같은 기간 일본이 99.0에서 98.9로 떨어졌다는 것을 고려하면 처참한 결과다.

수출 전선도 비상등이 들어왔다. 관세청이 3월 1일부터 10일까지 집계한 수출 현황을 보면 전체 수출액은 133억39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1.9% 늘었으나 이는 조업일수가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조업일수 변수를 제거하면 올해 일평균 수출액은 2.5% 하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귀다툼 벌어진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경제의 파탄이 현실로 다가오며 정부의 대응에 시선이 집중된다. 정부는 과연 정책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2월 말 더불어민주당에서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을 어필하고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대목은 일단 고무적이다. 4조원의 예비비가 신속히 집행되고 16조원의 경기부양책이 발표된 후 4일 정부가 추경 편성을 국회에 보고하는 한편 본회의 통과 D데이를 16일로 잡은 것까지는 순조롭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행정부는 물론 국회의 무능이 한꺼번에 발견된다.

우선 16조원의 경기부양책과 11조7000억원 추경의 특성이다. 대부분의 정책이 임대인을 위한 정책이거나 대출 확대 및 쿠폰 발행 등으로 채워져 있다. 이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지만, 긴급상황에 맞춰 최소한의 고민도 없는 기계적인 대책이라는 점이 문제다.

일반적인 경기하강국면이라면 쿠폰을 뿌리고 대출을 확대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으나 지금은 시민들이 감염 우려로 야외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 상태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전통시장쿠폰을 풀면 사람들이 시장으로 나와 상품을 구매하고 골목상권이 살아날 것이라 본 것일까. 그저 메뉴얼에 적힌 대로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니 현재의 특수한 상황을 담아내는 세밀한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김부겸 의원 등 민주당 코로나19 대구경북(TK) 재난안전대책특별위원회가 11일 "융자, 보증 등 빚을 늘리는 방법이나 쿠폰 등 간접적 지원 방식은 적절한 치유책이 아니다"고 공개비판한 행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추경은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 대안으로 재난기본소득 정책이 지자체 등을 중심으로 제안되고 있으나 국회와 정부는 일단 선을 긋고 있다. 재난기본소득 정책 자체에 포퓰리즘 성격이 담겼다는 비판은 나오지만, 이러한 파격적인 정책을 고려하는 것 자체가 문 대통령이 말했던 정책적 상상력이라는 말도 나온다.

추경 논의 자체도 문제다. 추경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총력전, 그리고 속도전이 필요한 순간이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격언을 떠올리며 말 그대로 선제적인 조치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추경 논의가 4.15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어 눈쌀을 찌푸리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추경 증액 여부를 두고 행정부와 여당의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분위기도 감지되니,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이런 가운데 취약계층, 특히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내 최초로 코호트 처리가 들어간 대구 한마음 아파트와 수도권 집단감염의 시발점이 될 소지가 있는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두 곳 모두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의 터전이자 마지막 생활의 보루다.

신천지에 대한 단죄 여부와는 별도로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연결고리,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전염병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사례가 속출하는 가운데, 정부는 지금 과연 어디에 있는가.

기본만 해라
시간이 없다. 대구 경북 지역의 골목상권은 사실상 파탄이 났고 소상공인들은 그저 하늘만 보며 장탄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고민없는 정책을 남발하고 국회는 총선 모드로 들어가 의미없는 헛심공방만 거듭하는 중이다. 행정부는 물론 여야 모두 경제 아마추어이자 '굶어보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속도전이 필요하다. 우선 국회서 논의되는 추경 논의를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 추경 자체에 문제는 있지만 지금은 '이것이라도' 해야 한다. 야당의 전격적이고 대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당리당략과 정치적 의도는 모두 접어둬라. 4.15 총선을 앞두고 '의원 본능'은 어쩔 수 없겠지만, 언제까지 선거의 생물로 남아 본능만 앞세워 짐승이 될텐가. 일단 속도전을 통해 추경을 비롯한 모든 경기부양책을 총동원하는 선제적 대응에 나서라.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야당을 재차 만나고 설득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후 보완할 것을 보완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말한 파격적 상상력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추경 증액도 검토해야 한다. 현재 여당에서는 재난기본소득에는 부정적이지만 추경 증액에는 전향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세를 몰아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어 추경 증액의 필요성을 강조한 대목에 더 집중해야 한다. 나라살림이 어려워 추경 증액에 거리를 두는 행정부의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지금은 특수하고 위험한 비상시국이다.

재난기본소득 논의도 계속 이어가야 한다. 기본소득정책의 실효성을 두고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버티는 경제체력이 필요하다. 빠른 협의가 중요하다. 지금, 경제가 죽고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총선승리를 거머쥔다고 남는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다.

경제가 폭망해야 정신을 차릴텐가. 그래도 정신차리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더 크다. 우리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