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세기의 경영자로 불리는 잭 웰치 전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 겸 CEO가 2일(현지시간) 별세한 가운데, 그에 대한 입체적인 평가도 눈길을 끈다. 잭 웰치는 경영의 달인으로 불리며 글로벌 기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는 구조조정의 달인, 오래된 경영방식에 매몰된 구시대 경영인라는 꼬리표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잭 웰치는 새로운 시대의 바람이 불어오는 상황에서 GE라는 거대한 함선의 선장을 이끌 후계자를 잘못 골랐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로 잭 웰치는 2001년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며 후임자로 제프리 이멜트를 지목했으나, 제프리 이멜트는 왕관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며 GE의 난파를 자초했다. 현재 GE는 래리 컬프 CEO의 주도로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리더
잭 웰치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경영의 신으로 군림했다. 1960년 GE에 엔지니어로 입사해 1981년부터 20년간 CEO를 지내며 회사를 고속으로 발전시켰다. GE를 창업한 것은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지만, 현재의 GE를 만들어낸 것은 잭 웰치다.

그는 6 시그마라는 강력한 품질 관리 시스템을 고안하는 한편 관료주의를 타파하는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가동해 GE의 체질을 완전히 바꿨다. 미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으로부터 1999년 세기의 경영자(manager of the century)라는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했으며 강력한 인수합병 본능으로 GE를 미국의 자랑으로 키워냈다.

경영의 신으로 군림했으나, 그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마치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는 중성자 폭탄처럼 대규모 감원을 불사해 '중성자 잭'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정리해고 시스템인 활력곡선 이론을 차용했지만 직원들의 동요는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문어발 사업 확장으로 제조업 시대의 마인드에 갇혔다는 지적도 많다.

무엇보다 후계자가 신통치않았다. GE가 겪고있는 현재의 모든 고통에 대한 책임을 후계자에 지우는 것은 무리한 처사지만, 잭 웰치의 후계자인 제프리 이멜트가 빛과 그림자로 가득한 GE의 신화를 온전하게 이어가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제프리 이멜트는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지 며칠 되지 않아 업무를 넘겨받은 상태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 어려운 시절을 보냈고, 이 과정에서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무엇보다 제프리 이멜트는 체질개선의 명확한 포인트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평가다. 제프리 이멜트의 친구였으나 나중에는 GE에서 제프리 이멜트를 축출한 넬슨 펠츠 트라이언 회장은 당초 GE의 어려움이 지나친 금융회사로의 변신 시도로 보고 이를 제프리 이멜트가 바로잡기를 원했으나, 제프리 이멜트는 모든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결국 GE의 어려움은 한 때 경영의 신으로 불렸으나 지나친 고효율 추구 및 문어발 확장으로 제조업 시대의 프레임에 갇혀버린 잭 웰치의 실책과 더불어, 역시 시대의 변화에 부합되지 않는 상태에서 잭 웰치 시대의 부작용만 보여준 후계자 제프리 이멜트의 등장으로 촉발됐다고 볼 수 있다.

선구자와 후계자
잭 웰치와 제프리 이멜트의 사례를 보면, 결국 한 시대를 호령한 기업에는 그에 걸맞는 리더십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GE는 실패했으나, 의외로 이 부분에서 성공한 기업도 많다. 후계자의 경영학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곳이 많다는 점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명확히 파악했고, 선구자는 파격으로 승부를 걸었다면 후계자는 그에 맞는 안정을 택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구글이 대표적이다.

구글의 공동창업자이자 글로벌 ICT 권력의 중심, 실리콘밸리의 천재로 잘 알려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 CEO에서 물러난다고 지난해 12월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2017년 에릭 슈미트 전 알파벳 회장이 퇴임한 후 구글의 공동창업자 두 명도 구글을 떠나자 “놀랍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이 40대 중반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알파벳을 떠난다고 선언하자 그 충격은 배가된 바 있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선다 피차이 구글 CEO가 맡는다. 구글의 차르에서 알파벳의 차르가 되는 셈이다.

구글 및 알파벳의 자연스러운 사령탑 교체는 곧 후계자의 경영학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시대의 흐름을 간파한 대목이다. 선다 피차이는 2014년 10월 페이지와 브린이 구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고, 2015년 구글의 CEO로 등극했다. 동시에 구글은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로 나아가며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포착하는 것에 성공한다. 

여기에 양자컴퓨터라는 키워드도 나온다. 실제로 알파벳은 두 사람의 퇴진을 알리는 보도자료 첨부 사진으로 선다 피차이 새 알파벳 CEO가 양자컴퓨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미지를 공개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리더가 포착한 새로운 트렌드의 시작이다.

선구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물러나고 우직한 스타일의 선다 피차이가 구글은 물론 알파벳의 전면에 나서는 장면은, 선구자는 파격으로 승부를 걸었다면 후계자는 그에 맞는 안정을 택했다는 의미도 있다.

이러한 전략의 모범적 사례는 애플도 꼽을 수 있다. 고 스티브 잡스가 파격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며 세계를 매료시켰다면, 후계자인 팀 쿡 CEO는 공급망 관리에 따른 효율적인 기업 운영으로 지금의 애플제국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파격적인 '원 모어 띵'은 없지만, 팀 쿡은  현재 애플을 시가총액 1조달러 기업으로 키워내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시대의 흐름에 따른 구독경제 도입 등 다양한 전략도 진행중이다. 더이상 하드웨어 기업이 아닌,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디즈니도 마찬가지다. 디즈니는 최근 전설의 CEO 밥 아이거가 물러나고 후임에 디즈니파크를 이끌던 밥 치페크가 등판한다고 밝혔다. 밥 아이거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거인이다. 애플의 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가 이사회에서 물러났을 당시 그와 함께 픽사 신화를 썼으며, 2009년 마블 인수에 이어 2018년에는 폭스그룹 인수합병을 이끌어낸 전설적인 CEO다.

밥 아이거가 파격이라면 밥 차페크는 안정이다.  치페크는 최근 디즈니가 역점을 두고 있는 IP 기반의 사업매출에 집중한 인물이 아닌, 말 그대로 테마파크 및 상품 판매 등에서 두각을 보였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역시 시대의 흐름을 읽고 선구자가 파격을, 후계자가 안정을 택한 모범사례로 볼 수 있다.

시대의 흐름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선구자가 파격을 통해 기업을 키워낸 후 후계자가 안정을 꾀하는 사례는 국내 스타트업 업계도 보인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고 일부 외부적인 요인이 섞이기는 했으나 배달의민족, 여기어때 사례가 눈길을 끈다.

▲ 김봉진 대표와 김범준 신임 대표. 출처=배달의민족

배달의민족은 파격의 브랜딩으로 국내 배달업계를 강타한 선구자 김봉진 대표가 물러나고 김범준 차기 CEO가 사령탑을 맡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글로벌 플랫폼 업계로 뛰어드는 김봉진 대표, 나아가 내부에서 딜리버리히어로와 협력할 김범준 차기 CEO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 심명섭 전 여기어때 대표. 출처=본인 제공

여기어때의 경우 '돌격앞으로 CEO'로 잘 알려진 심명섭 전 대표의 뒤를 이어 최근 여기어때 경영권을 인수한 CVC가 최문석 대표를 낙점했다. 최 대표는 심 대표가 끌어온 국내 숙박앱 플랫폼의 파격을 이어받아 사모펀드 특유의 안정적인 경영에 나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