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발원지인 중국과, 강력한 방역체계로 초반 총력전을 펼친 한국의 경우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가 주춤하며 진정국면에 들어서고 있으나 미국과 이탈리아 및 일본, 이란을 비롯해 다른 나라에서는 서서히 악몽이 시작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중국은 10일 기준 전날과 비교해 확진자가 19명, 사망자는 17명 늘어나는 것에 그쳤으며 한국도 확진자 숫자가 100명대 수준으로 내려갔으나 미국은 뉴욕주에서만 4000명이 격리조치 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백악관은 유급 병가와 중소기업 긴급 지원 등 다양한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는 한편 근로소득세 감면 등을 의회에 요청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탈리아는 10일 기준 확진자가 1만명에 육박하고 사망자는 463명으로 집계되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로 면회가 금지되자 교도소에서 폭동이 벌어지는 한편 주요 도시들은 봉쇄조치에 들어간 상태다. 이란도 사망자가 237명을 돌파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며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집단감염을 우려해 이례적으로 신년 연설을 취소했다. 2020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일본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예정된 올림픽을 취소하거나 무관중으로 경기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자 세계보건기구 WHO도 판데믹(대유행)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팬데믹의 위협이 매우 현실화했다"면서 "많은 사람과 국가가 그렇게 빨리 피해를 봤다는 것은 분명 괴로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발 빠른 대응
국제유가가 폭락한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까지 심각해지며 글로벌 증권가는 패닉에 빠졌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9일(현지시간) 전 거래일 대비 무려 2013.76 포인트 하락한 2만3851.02에 마감했으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225.81포인트로 주저앉으며 신음했다. S&P 지수는 이날 오전 9시 30분 개장과 함께 심각하게 폭락했고, 결국 4분 간 거래가 중단되는 서킷 브레이크가 가동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속도전에 나선다는 각오다. 신속한 예비비 투입과 16조원에 달하는 긴급경기부양책을 발표한 상태에서 현재 국회에서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한 막바지 조율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 정부는 임시국무회의를 통해 11조7000억원에 달하는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황이다. 이번 추경의 여파로 국가채무비율 40%가 깨지는 등 나라살림의 부담이 커지는 점은 우려스럽지만 코로나19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응이라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편이다. 오히려 추경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9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추경의 규모에 대해서 전향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좀 증액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대한상의

박 회장은 “추경(11조7000억원)이 전액 집행된다고 하더라도 그 금액 자체로 놓고 보면 GDP에 미치는 효과가 한 0.2%p 정도 수준”이라면서 “1%p 경제 성장률을 높이려면 과연 얼마나 돈이 드는지 거꾸로 역산하면 거의 40조원 가까운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야당 일각에서 이번 추경이 4.15 총선을 앞 둔 여당의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어, 추경이 예정된 속도전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융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6개 금융협회장들이 9일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간담회를 연 가운데 김태영 은행연합회 회장은 “중소벤처기업부 지신보 보증과 관련해 소액긴급생활·사업자금에 대한 절차를 대폭 간소화할 필요성이 있다”며 “은행권 특별대출 신규 자금 공급 규모를 현행 3조2000억원에서 4조6000억원으로 1조4000억원 추가 확대할 계획이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10일 간부회의를 통해 "국내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금융안정 리스크가 증대되고 있는 만큼 가능한 정책수단을 적극 활용하여 금융안정을 도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차원의 논의도 빨라지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서울청사에서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내외 경제 상황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3개월간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요건을 완화하는 한편 거래금지 기간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한국 중심의 글로벌 교역망 흔들
정부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속도전을 펼치고 있으나 '공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불안감도 만만치않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중국에 거점을 둔 삼성전자 및 LG전자, SK하이닉스 등이 현지 공장 가동률을 두고 어려움을 겪은 가운데 이제는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두 가지 측면이다. 먼저 한국의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며 한국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를 건 나라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일본의 경우 한국에 대해 비자면제 철회를 선언했으며 한국도 비슷한 수준의 대응에 나서는 등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다. 

두 나라의 강대강 대치에 세계보건기구 WHO도 우려하고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의 WHO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을 통해 “우리는 코로나19라는 공동의 적과 대면하고 있다”면서 “모든 국가가 화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의 파격적인 조치에 한국도 물러설 수 없다는 점을 밝히며 사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재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본의 무분별한 조치에 한국이 주권국가 입장에서 맞대응을 하는 것까지는 반대할 수 없으나, 이번 충돌로 재계는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지정한 후 한국이 동일한 조치로 맞불을 놓으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고, 그 연장선에서 국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업계에 상당한 후폭풍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직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비자면제라는 최악의 상황이 겹칠 경우, 국내 대표 산업군의 피해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치적 문제까지 얽혀있기 때문에, 문제해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다만 중국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코로나19 확진세가 주춤한 중국에서 한국에 대한 마스크 지원 등이 이뤄지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4월 방한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일본에는 지나치게 강경하고 중국에는 다소 유화적이라는 지적을 받지만,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8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일본과 중국에 대한 조치를 두고 "국민의 보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감염병 유입에 대한 철저한 통제에 주안점을 두고 내린 결정임을 분명히 밝힌다"면서 "정부는 중국 내 확진자 집중지역인 우한시와 후베이성 등에 대해서는 입국을 금지하고 있고 특별입국절차를 신설해 면밀히 조사, 체크해왔으며, 사증 심사에 있어서도 강화된 조치를 실시한 바 있다. 중국은 감싸고, 일본에만 초강경이라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무리하고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어필했다. 강 대변인은 "일본의 과잉 조치에 대한 한국의 조치는 코로나19 대응 3원칙에 따라 일본과는 다른 절제된 방식이다. 일본은 14일간의 한국인 격리 조치 외에 한국인에 대한 비자 면제 조치와 기 발행된 비자의 효력까지 정지했다"고 강조했다. 일본처럼 국내 입국자 14일 지정장소 대기 요청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게 아니라 '특별입국절차'를 적용하기로 한 점을 들며 "신중하게 절제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일본과의 강경대응을 이어가며 중국과 줄타기를 하는 등 미묘한 경제 외교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국 중심의 글로벌 교역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코노믹리뷰>의 취재에 따르면 한중일 동북아 삼국이 항공이나 배편을 이용한 교역에서 코로나19 타격을 입는 수준은 아니다. 실제로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 따르면 현지서 총 23개 국가물류허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으며 입주 기업의 업무 개시율은 70%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슷하다.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국내 경기가 침체되며 성장 동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 경우,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교역망에서의 역할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장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수출 전선의 핵심 인프라 강화에 나서는 한편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한 입체적인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미 경고등은 나왔다. 무디스는 지난 6일(현지시간) 세계 거시경제 전망(Global Macro Outlook) 수정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올해 실질 GDP 성장률 예상치를 전년 대비 1.9%에서 1.4%로 0.5%포인트 낮췄다. 지난달 16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2.1%에서 1.9%로 낮춘 후 재차 하락세에 배팅한 셈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