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와 사우디간 감산 합의가 결렬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 전쟁을 선포했다.    출처= The New Daily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던 1991년 걸프전 이후 국제 유가가 가장 큰 폭의 하락을 겪었다.

9일(현지시간)의 유가 폭락은, 이미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세계 경제와 석유 수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던 시장을 더욱 놀라게 했다. 세계 원유 기준치인 브렌트유 선물은 9일, 10.91달러(24.1%) 폭락한 34.36달러로 장을 마쳤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 주말보다 배럴당 10.15달러(24.59%) 폭락한 31.13달러로 마감했다.

어게인캐피털의 유명 석유 애널리스트 존 킬더프는 "사우디가 초토화 접근으로 전환했다"면서 "사우디는 아직까지 생산비가 가장 낮은 산유국으로 다른 모든 석유생산자들, 특히 미 셰일석유 업체들에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으로 유라시아그룹을 비롯한 일부 분석가들은 보고서에서 사우디가 일단 '뜨거운 맛'을 보여준 뒤 러시아와 다시 감산합의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CNN이 5가지 질문으로 정리했다.

유가는 왜 폭락했나

세계 1위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주말 가격 전쟁을 선포했다. 사우디의 그런 결정은 사우디가 이끄는 OPEC 카르텔과 러시아 간의 동맹이 붕괴된 데 따른 것이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지난 2016년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로 급락하자 이른바 OPEC+ 동맹을 맺었다. 이후 이들은 하루 210만 배럴의 공급 감소를 조율했다.

최근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세계 석유 수요가 부진하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올해 말까지 감산량을 360만 배럴로 늘리기를 원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렇게 될 경우, 미국의 석유 생산자들이 생산량을 더 늘릴 것을 우려해 사우디의 제안을 거부했다.

러시아의 알렉산더 노박 에너지 장관은 지난 6일, 감산 시한이 종료되는 4월 1일부터 각 국가들이 원하는 만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시장 점유율 전쟁을 예고했다. 러시아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미 셰일석유업계의 고사를 노리고 감산합의를 거부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우디, 유가 전쟁 선포한 까닭은?

이번 유가전쟁은 세계 에너지 시장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안에 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아라비아 왕세자간의 이견 때문이다.

러시아는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생산을 줄이는 것에 싫증이 났고, 감산 정책으로 미국 셰일 회사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만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트(Rosneft) 의 미하일 레온티예프 대변인은 OPEC+ 거래를 ‘마조히즘’(자기 학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8일 러시아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국 시장을 양보함으로써 값싼 아랍 및 러시아산 석유를 감산하고 스스로 시장을 양보함으로써 값비싼 미국 셰일오일의 증산 기회와 생산효율만 보장해 주었다"고 주장했다.

OPEC+의 감산 덕분에 미국은 세계 1위의 석유 생산국이 되었고 올해 1분기에는 하루에 약 1300만 배럴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러시아가 감산에 반대하면서 모든 감산 참여국들의 동의를 전제로 했던 사우디의 하루 150만배럴 추가 감산안은 폐기됐고, 사우디 역시 감산할 이유가 사라졌다. 이는 러시아 뿐만 아니라 사우디도 미 셰일석유와 본격적인 경쟁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뜻한다.

지난 주말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가를 배럴당 4달러내지 7달러까지 인하해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싸우기로 결정했다. 또 하루 생산량을 1000만 배럴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 전쟁을 선포하면서 전세계 유가가 걸프전 이후 최대 폭락을 기록했다.     출처= Mubasher

코로나바이러스와의 관계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전세계 에너지 수요가 크게 감소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하루에 대략 1000만 배럴을 소비하는 원유 수입 1위국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거 전세게적으로 확산되면서 공장들은 문을 닫고 전 세계 수천 편의 항공편이 결항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9일, 글로벌 에너지 수요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어느 나라가 가장 타격을 받을까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요 붕괴를 목적에 두고 가격 전쟁은 석유 안정을 위한 해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누가 승자가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가격 전쟁으로 주요 산유국들은 시장점유율에 상관없이 손해를 볼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국가 예산이 배럴당 평균 40달러를 가정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유가 하락으로부터는 충분히 보호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등은 러시아를 더욱 유리하게 만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걸프만 국가들의 생산 비용은 가장 낮지만(배럴당 2달러 내지 6달러 정도로 추정), 정부 지출 증가와 시민들에 대한 후한 보조금 때문에 예산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배럴당 70달러 이상의 가격이 필요하다.

이라크, 이란, 리비아, 베네수엘라 등 수년간의 분쟁, 봉기, 제재로 고통 받아온 석유 생산국들은 가장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셰일 오일 붐은 일부 주에게는 경제적 횡재를 가져왔지만 유가 하락은 자금난을 겪고 있는 셰일업계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중국, 인도, 독일 같은 거대 수입국들은 유가 하락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일반적으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직접적인 혜택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소매 시장이 수요와 공급에 더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미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유럽의 경우는 주유소 가격이 세금과 부대 비용 비중이 높기 때문에 그 효과는 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경기 침체로 인해 휘발유 가격의 하락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가격 전쟁이 지난 10년 동안 호황을 누렸던 텍사스, 루이지애나, 오클라호마, 뉴멕시코, 노스다코타와 같은 주에 분포되어 있는 미국의 석유 생산자와 에너지 일자리에 엄청난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