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4시 서울중앙지법 가처분 사건 전담 재판부인 민사합의 50부 법정에서는 반도건설 계열사인 ㈜대호개발, ㈜한영개발, ㈜반도개발(이하 반도개발 등)이 ㈜한진칼(이하 한진칼)을 상대로 제기한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이 사건 가처분)에 대한 심문이 진행되었다. 채권자인 반도개발 등을 대리한 곳은 법무법인 태평양, 채무자인 한진칼을 대리한 곳은 법무법인 화우로 이른바 대형로펌 간의 대결로도 관심을 모은 이번 사건은 소송대리인들 간의 싸움마저 치열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채권자인 반도개발 등이었다. 반도개발 등은 오는 27일 예정되어 있는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 자신들이 보유한 한진칼 주식 8.2%에 근거하여 의결권을 행사하려는데, 한진칼에서 이를 방해하려 한다며 자신들이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는 취지로 지난 3일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을 했다. 이 사건 가처분 신청서는 5일 한진칼에게 도달했지만, 한진칼은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다가 심문기일 당일인 9일에서야 소송대리인을 선임하고 재판 직전에 답변서를 제출했다. 당연히 채권자 측은 물론 재판부도 채무자인 한진칼이 제출한 답변서의 내용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 채무자 측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는 별도의 PPT 자료를 만들어 와 법정에서 자신들이 쓴 답변서의 취지를 프레젠테이션하기 시작하였다. 명목상으로는 자신들이 뒤늦게 제출하여 답변서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채권자 측 소송대리인과 재판부의 이해를 돕기 위한다는 것이었지만, 소송 전략 상 단순히 서면만 제출하는 것보다는 프레젠테이션이라는 형식을 빌어 서면을 시각화하는 한편, 좀 더 오랜 시간 재판부에게 채무자 측의 입장을 어필하겠다는 목적도 다분해 보였다. 결국 채권자 측 소송대리인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채권자 측은 10장 남짓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한 것이 전부인데, 채무자 측 소송대리인에게만 장시간 프레젠테이션을 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무기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후 양측 소송대리인들 간에는 이 같은 소송 진행방식에 대한 설전이 오갔는데, 이들 간의 신경전은 재판부가 16일 한 차례 심문기일을 잡아 양측 소송대리인에게 공평하게 프레젠테이션 기회를 부여한다는 중재안을 내어 놓고서야 겨우 잦아들었다. 가처분 심문기일은 1회에 종결하는 것이 원칙이고 27일에 한진칼 주총이 열린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시간도 촉박한 편이지만 재판부는 사안의 중대성과 민감성을 고려해 특별히 추가 심문기일을 열기로 한 것이다.

이 사건 가처분의 최대 쟁점은 반도개발 등이 한진칼 주총에서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반도개발 등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모펀드인 KCGI와 더불어 이른바 반(反)조원태 연합 혹은 3자 연합을 이루며 한진칼의 경영권 장악을 노린다는 세평이 있고, 현재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진칼은 델타항공 등 ‘백기사’의 도움으로 이를 방어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도개발 등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8.2%의 의결권이 한진칼 주총에서 인정되느냐의 여부는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간의 승부를 가를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지점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반도개발 등이 한진칼 지분 8.2%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양자 간 다툼이 없다.

다만 문제는 반도개발 등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을 위반하였는지의 여부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주권상장법인의 주식 등을 5% 이상 보유하게 된 자는 그 날부터 5일 이내에 그 보유상황, 해당 주식을 보유하는 목적이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인지 여부를 금융위원회와 거래소에 보고하여야 하고(제147조 제1항), 만약 이를 거짓으로 보고하거나 그 기재를 누락한 경우에는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의 5%를 초과하는 부분 중 위반분에 대해서는 금융위원회의 처분 없이도 의결권 행사가 자동적으로 금지된다. 반도건설 등의 경우 지난 1월 10일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바꾸었는데,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주주의 지위를 정하기 위해 주주명부를 폐쇄한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점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즉, 한진칼 측에서는 반도건설 등이 주주명부 폐쇄 전 사실상 한진칼의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주식을 매입하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단순 투자’라고 목적을 밝힌 것이 ‘거짓 보고’에 해당하여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반도건설 등은 처음 한진칼의 주식을 매입한 것은 매입 당시 한진칼의 주식이 수익성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지 처음부터 반도건설 등이 ‘경영 참여’목적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3자 연합이 주장하는 ‘리베이트 건’을 마타도어라 일축하는 한편, 소액주주일망정 단 한 표라도 더 위임받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한진칼의 입장에서 이 사건 가처분은 무조건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과연 재판부는 어떠한 결론을 내릴까? 재판부는 16일 한 차례 심문기일을 더 열어 양자 간의 최종입장을 들은 뒤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