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동안 대한민국과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여파가 거의 역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우리 대한민국 국민에게 전해졌던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4관왕 수상 소식 또한 역대급 낭보(朗報)일 것이다. 외국 영화에게는 유독 깐깐하고 문턱이 높기로 유명한 아카데미상이었기에 4관왕 수상 소식이 우리에게 더 큰 의미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잘 지어진 집처럼 짜임새 있고 탄탄한 봉준호 감독의 스크립트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두고두고 회자될 수 있게끔 만든 것이 결정적인 비결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영화 기생충이 양산한 여러 어록, 트렌드 중에서 필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바로 주인공 기태의 한 대사였다. 박사장 집에 기생(?)하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들 기우를 기특하게 바라보면서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며 흐뭇하게 말하는 장면은 영화 기생충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명대사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아들 기우의 계획대로 모든 일이 잘 풀렸을까? 경영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업이나 경영자가 계획을 세운다고 기업이 다 잘 될까? 만약 계획대로 일들이 잘 안 풀린다면 무계획이 최선일까? 직업병이 발동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기생충을 통해 계층간의 갈등, 빈부의 격차 등의 주제가 담론화 되었지만 필자는 ‘계획’이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러한 필자의 고민이 경영전략적 관점에서도 다소 생소하지 않은 이유는 기존의 경영전략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전략’이란 개념이 ‘계획’이라는 개념과 많이 혼용되어 쓰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일부 경영자들은 ‘경영전략’과 ‘계획’이 같은 동의어라고 인식하기도 한다.   

‘계획’과 ‘전략’의 차이에 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한 사람은 바로 캐나다 맥길대학의 헨리 민츠버그 교수다. 그는 전략에게는 크게 5가지의 과정이 있는데 이는 계획, 책략, 패턴, 포지션, 전망이고 계획은 전략의 여러 단면 중에 하나의 단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완벽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전략이 되기 위해서는 계획만 있어서는 안 되고 나머지 4개의 조건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계획’을 통해 세부적인 ‘책략’을 설정하고 세부적인 책략은 ‘패턴(행동)’을 만들고 그러한 패턴을 통해 확실히 ‘위치(포지셔닝)’ 설정이 되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전망’을 만들어 간다는 지론이다.

민츠버그 교수는 많은 기업들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그럴듯한 계획을 설계해 놓고 그것이 잘 만들어진 전략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그냥 그 자리에서 머무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전략의 초기단계에 있는 ‘계획’이 기업과 경영자들의 전략적 사고를 오히려 방해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잘 만들어진 그럴듯한 계획보다는 무계획 상태에서의 직관과 창의성으로 무장하여 기업의 방향과 목표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할 수도 있다고 그는 극단적으로 말한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은 기업들은 결코 화려하고 그럴듯한 계획만으로 이루어진 기업들이 아닐 것이다. 21세기가 발견한 이 위대한 기업들의 창업자들에게 ‘당신에게 어떤 계획이 있었냐’라고 묻는다면 과연 이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도 잘 정리된 대답을 듣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전략 형성이란 가장 복잡하고, 섬세하고, 때로는 무의식적인 인간의 의지와 사회적 과정이 연루되는 극도로 복잡한 과정이라고 민츠버그 교수는 말한다.

만약 전략을 세우는 일을 계획을 세우듯이 공식화 한다면 앞으로 기업이 나아가야 할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줄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정해진 구조에 맞지 않는 대안은 무시될 것이고 이에 따라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직관과 창의성은 먼 얘기가 될 것이다. ‘계획’은 본질적으로 기존의 범주를 지키는 선에서 만들어 진다. 반대로 ‘전략’은 본질적으로 범주를 창조함과 동시에 이미 확립된 범주를 바꾼다. 좀 더 다른 말을 쓴다면 ‘전략’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꿈으로써 혁신을 향해 나아간다. 

정리를 하자면 지금까지 우리가 ‘전략’이라 생각했던 ‘계획’은 전략의 일부분이고 많은 기업이나 경영자들이 ‘계획’이 ‘전략’의 전부라 생각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전략이 더 나은 전략이 되기 위해서는 계획à책략à패턴(행동)à위치(포지셔닝)à전망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어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전략은 깔끔한 계획에 수반되는 실행이 있을 때 더 완전해진다는 것이다.

전략이 무엇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은 필자나 경영학자들만의 고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는 미국 최고의 부자였던 앤드루 카네기도 가졌던 고민이었다. 오죽했으면 그가 당시 최고의 경영 컨설턴트였던 프레드릭 테일러를 만나서 던졌던 첫번째 질문이 “젊은이, 나에게 경영전략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 준다면 당장 1만 달러의 수표를 써 주겠네”라고 물었다. 그러자 테일러는 “회장님, 당신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다섯 가지를 쓰세요, 그리고 바로 그것들을 실행하세요”라고 말했다. 일주일 후 테일러는 카네기로부터 1만 달러 수표를 받았다.

기우(杞憂)일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결코 전략에 있어서 계획이란 것이 나쁘다는 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전략이 어떻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고 이러한 매커니즘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차원에서 계획에서 머무르는 전략을 지양(止揚)하자는 것이다. 경영전략은 가차 없이 계속 진화하고 있고, 수많은 충돌, 협력, 경쟁, 마찰, 창의성, 패러다임의 창조, 기존 아이디어의 파괴 등을 통하여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이다.

테일러가 말한 것처럼 구체화된 개념에 의해 이리저리 떠밀리기보다는 기업이 처한 현실 속에서의 실질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계획에서 멈춰진 전략은 죽은 전략과 다름이 없다. 계획이 전략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그 순간, 그 기업의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마치 영화 기생충에서의 기태의 가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