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주 연속해서 코로나 관련된 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태가 심각하니 다른 쪽으로 마음이 잘 안가는 게 원인이었습니다.

주변에서 이제 좀 더 희망적인 것을 써주었으면 하는 얘기를 전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내가 과문해서 인지 다른 쪽이 잘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부적인 갈등의 모습을 보니 더 울적해졌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며 개학도 연기하고, 외부 모임들도 자제하는 형편이다 보니,

아무래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영향 때문일까요? 아파트 층간 소음 분쟁이 폭증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또 마스크 대란이 길어지니 다들 예민해진 탓일까요?

거기 줄 선 사람들과 판매하는 직원 간에, 줄 선 사람들 간에 큰 소리 나는 모습이 여과 없이 보여 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실패가 국민의 피해로 돌아오는 작금의 사태를 경험하다보니,

작년 11월에 있었던 중앙도서관 전시가 생각납니다.

‘회재 이언적(李彦迪) 독락당의 보물, 서울 나들이’라는 전시였는데,

조선 전기의 명신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의 일생이 전시 테마였습니다.

그는 종1품 좌찬성이라는 공직을 지낸 분인데, 우리나라 다섯 현인 중 한분으로 추존되어 1610년 성균관 문묘에 배향된 분입니다.

그 전시에서 그가 남다르게 생각된 것은 세도가 있는 정치가요,

대단한 학자였음에도 시끄러운 당파 시대의 나라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자기 자식 외에는 제자를 두지 않았던 점이었습니다.

전시가 열리고 있던 작년 11월은 잘 아시다시피, 도서관이 위치한 대로의

언덕배기를 중심으로 대검찰청 앞의 조국 수호를 외치는 검찰 개혁 주장파와

강남 성모병원 앞의 태극기 부대가 상반된 주장으로 대치하고 있었던 시점이었습니다.

나라가 두 갈래로 딱 갈라졌다고 생각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여러 착잡한 마음에 딱 그분의 현신을 바랬습니다.

꼭 그가 언덕배기 대로를 가로지르는 누에다리 위에 양발을 벌리고 서서

양 진영을 향해 호통 치며 자기 바지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고 할 것 같았습니다.

지금 상황도 많은 걱정을 안기고 있습니다.

과거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후와 거의 유사하게 인재(人災)란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에게 위임하고, 대처토록 하는 시스템이나 제도가 미흡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미국 오바마 정부에서 아랍 테러리스트 제거 작전시의 지하벙커 사진 한 장이 기억납니다.

대통령임에도 구석 자리에 앉아 가운데 앉은 전문가의 얘기를 경청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전문가와 현장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정해진 시스템대로 움직이는 그들이 부러웠지요.

우리도 전문가에게 권한을 주는 시스템, 현장의 얘기가 반영되는 제도화로 더 가야겠습니다.

정권은 바뀌어도 시행착오조차 축적되어 더 나은 정부와 사회가 있는 미래로 갔으면 합니다.

집에 있는 화분에 꽃씨를 심었습니다. 10여일 후에 나올 새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무언가를 투여해야 희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번 기회를 통해 그렇게 희망을 기대하고 얻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