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소현 기자] 지난해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사스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폐렴 환자가 보고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신호탄이 되는 사건이었다.

유사한 감염병 사례가 연이어 보고되면서 1월 초 중국 당국은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됐음을 알렸다. 이어 우한시는 봉쇄됐으나, 1월 중순에는 이미 중국과 인접한 태국 등지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3월, 코로나19는 도시와 국경을 넘어선 지 오래다. 5일을 기준으로 6대륙 87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중국에서만 8만명이 넘게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3000명이 사망했다.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확진자는 1만6000명에 이르며, 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9년 3월 발생한 신종 플루(H1N1 인플루엔자 A)가 6월 중순 72개국에서 3만명을 감염시켰던 것과 비교될 만큼 코로나19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

이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플루 때와 같이 팬데믹을 선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30일 WHO가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언했으나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WHO는 이에 팬데믹에 대비할 것을 경고하면서도 결정 자체는 미루고 있다.


전 세계 9만명을 감염시킨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


감기를 유발해 사람들을 콜록이게 했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형태로 돌아오고 있다. 2003년 약 700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스(SARA)와 2012년 약 9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도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이다.

코로나19는 이러한 코로나바이러스 중에서도 전염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연구 결과 코로나19는 사스와 비교했을 때 인체 친화도가 10~20배 높아 효과적으로 전염된다. 사스와 달리 잠복기에 전파력이 강하다는 밝혀졌다. 

그래픽=이코노믹 리뷰 이소현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기 커지는 가운데 희소식도 나왔다. 5일까지 확진자 다섯 가운데 넷은 중국은 최근 확진자 증가 폭이 줄고 있다. 중국의 신규 확진자는 지난달 29일에만 해도 573명에 달했으나, 3월부터는 한풀 꺾이며 100명대까지 떨어졌다. 지난 1일에는 202명, 3일에는 119명, 4일 144명이 코로나19 추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후베이성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신규 확진자는 한 자릿수대까지 떨어졌다.

확진자 가운데 상당수인 5만2천명이 완치 판정을 받으며 우한시의 의료공급에도 숨통이 트였다. 이와 관련해 WHO는 섣부른 해석에 경고를 보내면서도 “코로나19 억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코로나19 감염국가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이번 주 인도네시아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에도 10여 개국에서 연달아 감염 사실을 발표했다. 폴란드, 슬로베니아, 우크라이나, 모로코를 비롯해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확진자가 1000여명을 넘어선 국가도 5개국으로 늘었다. 중국, 한국, 이탈리아, 이란이다. 일본은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크루즈를 포함해 1000명에 도달했다.

그래픽=이코노믹 리뷰 이소현 기자

중국 외 국가에서 코로나19 사태가 가장 심각하게 진행된 곳은 한국이다. 5일 오후 4시를 기준으로 확진자가 6000명이 넘어섰다. 1월 20일 첫 감염사례가 나온 이후 2월 초까지 확진자는 3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 급증하면서 3월 들어서는 하루 신규 확진자가 4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북부 지역으로 확진자가 가파르게 증가해 이날 3089명에 이르렀으며 이 중 107명이 사망했다. 독일과 스페인에서도 200여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란도 3513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197명이 사망했다. 지난주에는 인접 국가인 이라크, 쿠웨이트, 오만,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감염 사례가 나왔다.

미국에서 같은 날 코로나19 확진자가 150명, 사망자는 11명으로 늘어나면서 확산의 조짐이 보인다. 미국 행정부는 코로나19 전담팀(TF)을 구성하고 제약회사에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속도를 높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에 따르면 치료제는 올해 여름이나 가을에, 백신 개발은 내년 초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WHO, 에볼라 때 반복될까 '신중' 또는 '늦장'


WHO의 대응은 ‘신중’과 ‘늦장’ 사이에 서 있다. WHO는 지난달 중국 우한에 전문가팀을 파견하면서 “중국이 전 세계에 시간을 벌어줬다”고 밝혔다. 이에 국제적 비판을 받았으나, 일각에서는 감염병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그러면서 WHO는 팬데믹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WHO는 최근 “결정적인 시점이 왔다”며 발언의 수위를 높였으나, 아직 명확한 결정은 내리지 않고 있다. 

WHO는 앞서 현 상황이 '단어의 정의상' 팬데믹이 아님을 거듭 주장했다. 세계적 대유행을 뜻하는 팬데믹은 ‘모든’을 뜻하는 그리스어 ‘판’(pan)과 ‘사람’을 뜻하는 ‘데모스’(dmos)에서 유래했다. 단어의 뜻 그대로 WHO도 전 세계에서 감염병이 발생하면 팬데믹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감염국가 중 50여개국에서는 산발적인 감염이 보고됐을 따름이지 지역사회로의 전파가 나타나지 않다는 것이다.

이어 WHO는 팬데믹 선언으로 공포감을 키우기보다, 각국이 감염병 봉쇄에 힘쓸 것을 격려했다. 팬데믹이 선언되면 감염병 대응 방침이 감염자를 추적하는 ‘봉쇄’에서 집회와 등교를 금지해 확산을 막는 ‘완화’로 바뀐다. 완화 조치가 이뤄지면 감염병 전파는 방지할 수 있으나, 공포가 전염될 가능성이 커진다. 의료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고 국가 간의 의료 물품 물량을 공유하는 데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공중보건비상상태(PHEIC) 사태로 선언되고 공포감이 과열되면서 구호 활동에도 제동이 걸렸다. 당시 CNN 보도에 따르면 설문조사 결과 미국인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에볼라 감염을 두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러한 감정 상태는 현실에 그대로 반영됐다. 

시민들이 방호복을 사재기하면서 구호품 수급이 어려워졌다. 항공사들은 지원이 필요한 서아프리카 국가로의 운항을 제한하면서 구호 인력이 도착하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상황만 더 악화시킬 뿐이다"고 거듭 우려를 표했다.

과거 팬데믹을 선언한 신종플루 사례에서도 WHO가 망설이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WHO가 신종플루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한 2009년 6월 이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감염병이 누그러졌다. 

이에 WHO가 공포와 혼란만을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볼프강 보다르크 유럽회의 의원총회(PACE) 보건분과위원장은 팬데믹 선언을 제약회사가 주도했다며 "금세기 최대의 스캔들이다"고 비판했다. 

WHO의 대응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팬데믹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연일 커지고 있다. 4일(이하 현지시간) 독일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이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팬데믹에 도달했다"고 밝혔다고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보도했다. 슈판 장관은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데, 확실한 것은 아직 정점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달 26일 팬데믹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3일 코로나19에 대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영역에 진입했다"며 "지역사회 전파가 이렇게 빠르게 퍼지는 호흡기 계통 병원체는 이전에는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CNN 등 외신들이 근시일 내에 팬데믹 선언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는 가운데, 향후 국면에 따라 WHO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갈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