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축산농업인 백석환씨. 그는 진짜 농민이었다. 생각에서 말, 행동까지 오로지 농장과 농업에 대한 것뿐이었다. 그런 노력은 자연스레 그를 부농(富農)으로 만들었다. 단지 돈을 많이 벌어서 부농이 된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농업에 대한 연구 노력으로 일궈낸 농사인생이다.

궁즉통(窮則通). 궁하면 오히려 통한다고 했던가. 말 그대로 매우 궁한 처지에 이르니 도리어 펴 나갈 방법이 생겼다. “온 나라가 힘들었던 IMF시절, 축산 농가는 정말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소 값은 떨어지고 사료 값은 폭등했어요. 방법이 없었지요. 어쩔 수 없이 친구와 함께 직접 사료를 만들어 먹일 궁리를 했어요.”

대전시 유성구 신동 315번지 석청농장 백석환(53세)대표. 그는 농산물 부산물을 이용한 한우 TMR(완전배합사료 : Total Mixed Ration) 사양관리로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고 ‘대한민국 최고 농업기술명인’의 영예까지 얻었다.

지난 1997년 IMF의 여파로 소값 파동이 일어났다. 당시 시장 거래가는 600Kg 기준 수소 가격이 360만원에서 135만원으로 급락했고, 250만원 하던 송아지도 70만원으로 떨어졌다. 뿐만 아니었다. IMF로 달러 값이 치솟자 사료가격은 폭등해 2700원 하던 게 4600원으로 곱절 가까이 올랐다. 말 그대로 농장 파산이 불 보듯 뻔했다.

“쌀겨, 비지, 깻묵, 옥수수 등 농산물 부산물을 배합해 물에 갠 다음 발효시켰어요, 처음엔 이렇게 발효시킨 사료와 공장에서 배합한 사료를 반반씩 섞어 먹였습니다. 그랬더니 맛이 나쁘지 않았던지 소들이 잘 먹어요. 3개월 뒤부터는 자가 배합사료를 번식우에게 100% 급여를 했어요. 한 6개월간은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지 알았어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 자가 배합사료를 먹인 소가 낳은 송아지가 눈이 멀어 태어난 것이었다. “처음에 한 마리가 실명한 채 태어났을 때는 그러려니 했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낳은 송아지도 마찬가지예요, 여기저기에 원인을 찾아다니다가 축산과학연구원에 찾아갔더니 비타민A가 결핍되어서 그런 거래요. 사료에 비타민을 첨가했어요. 그 이후로는 태어나는 송아지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이렇게 시작한 농산물 부산물을 이용한 자가 배합사료는 백 대표에겐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고부가 가치 제품으로 거듭났다. 저비용 고소득의 농장 경영 개선의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부산물 활용한 자가 배합사료 개발 농장파산 위기 극복
실명 송아지 문제 이후 백 대표는 배합프로그램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처음부터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다녔고, 모르는 것은 먼 곳이라도 찾아가 물었다. 성장단계에서는 단계별로 균형 잡힌 영양소를 공급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농협 사이버컨설팅의 고정열 박사에게 도움을 받고, 국립축산과학원 오영준 박사와 함께 단계별 사료배합 방법을 짜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만들어진 배합프로그램에 따라 사료를 먹인 결과는 1년6개월 정도가 지나자 눈에 띄게 나타났다.


“사료 값이 50% 이상 줄었어요. 잔병치레 하는 소도 없어졌고요. 주사를 맞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다 출하되는 소가 99%에 달해요. 자연히 소고기 품질등급도 올라갔어요.” 백 대표의 자가 배합사료는 농산물 부산물을 활용한다. 농산물 부산물이란 한마디로 농산물 폐기물을 말한다.

재배를 했지만 상품가치가 없거나 가공 후 남는 부산물이다. 백 대표는 이를 위해 쌀겨는 도정공장에서 구매하고 두부공장에서는 비지를 구매한다. 기름집에서 깻묵을 구했고, 보리차공장에서 옥수수를 사왔다. 천일염은 시장에서 사고 발효제는 구청에서 구입하는 식이다.

이때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볏짚, 잔디 및 들풀, 수입건초, 총채보리 등의 조사료 확보는 백 대표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지난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대전 하천 유채밭 5만8000평 중 3만평의 유채 대를 조사료로 활용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는 대전천 고수부지 잔디 58만평에서 연간 20~30톤의 잔디를 수거하기도 했다. 현재는 영양보리, 이탈리아 라이그라스 혼파 7500평과 호밀 8000평 등을 재배한다. 이렇게 생산되는 조사료 생산량이 보리 14톤, 호밀 15톤, 수단그라스 20톤 등이 된다.

백 대표는 “조사료도 마찬가지지만 자가 배합사료를 만들기 위한 농산물 부산물은 인근 25km 안에서 구한다는 게 원칙이에요. 너무 거리가 멀어지면 운반비 등 물류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되요”라고 얘기했다.

사실 석청농장에서 농산물 부산물을 구매하는 것은 인근 주민들과 상생하는 것이다. 생산된 농산물이 상품가치가 없거나 가공한 후 남은 것들은 음식물 쓰레기나 폐기물로 분류돼 버릴 때도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백 대표는 이런 것들을 저렴하게 구매함으로써 자신은 경비를 절감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수입을 올려주는 상황이다.

백 대표가 이렇게 인근 주변에서 부산물을 구매해 배합사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미생물 배양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미생물을 활용하면 농산물 부산물을 저장할 때 매우 편리합니다. 자체 배양한 미생물을 부산물에 뿌려서 밀폐하면 1년까지도 저장이 거뜬해요.”

독자 미생물 배양기술로 고급육 생산 3배로 늘려
사실 석청농장은 다른 우사에서 풍기는 야릇한 냄새가 없다. 미생물을 혼합한 사료를 먹이면 축분에서도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다는 게 백대표의 설명이다. 백 대표가 자체 개발한 자동 지붕 개폐시설과 자동 환풍 시설도 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석청농장이 자랑하는 자가 TMR배합 때에는 비타민 A, D, E(지용성)과 미네랄이 혼합된 토털믹스를 배합량의 0.25% 첨가한다. 또한 소금(천일염, 배합량의 0.3~0.5%), 발효제(미생물제, 배합량의 0.2~0.3%), 칼슘, 당밀 등이 들어간다. 물이 들어간다. 이렇게 만들어진 발효사료는 축사 악취제거뿐 아니라 소화율을 높여 사료 섭취량을 늘림으로써 고급육 생산에 도움을 준다.

석청농장의 품질등급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국내 거세우 등급 1+ 이상 평균 출현비율은 40%가 채 안 된다. 하지만 석청농장은 평균치의 두배가 넘는 82%에 달한다. 1++ 등급 비율은 42.6%로 전국 평균 13.8보다 세배나 높다.

지난해 석청농장에서 출하된 소는 모두 24마리. 모두 합쳐 1억6000만원에 팔렸다. 이중 경영비 3200만원을 제하면 순수익은 1억2000만원에 달한다. 동갑내기 부인 오청자씨와 둘이 짓는 농사로서는 실속 있는 경영성적표다.

현재 한우 80두를 먹이는 석청농장의 규모로는 놀라운 성적표다. 이 성과에는 백 대표의 저비용 경영이 빛을 발했다. 지난해 석청농장의 경영절감 비용은 약 4400만원이다. 사료비로만 3200만원을 절감했고, 조사료, 자가 인공수정, 농기계 자가 수리 등으로 1200만원을 아꼈다.

석청농장이 규모에 비해 내실 있는 경영성적을 내게 된 또 다른 원인은 백 대표의 끊임없는 연구 열정이다. 선천적인 언어장애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던 그가 이제는 다른 축산농가에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해마다 석청농장을 견학하러 오는 인원만 해도 500명이 넘는다. 국립 한국농수산대학교 현장 실습장이기도 한 석청농장에는 현재 축산과 2학년인 황하성(20세)씨가 1년간 농장에서 숙식하며 부농의 꿈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6개월씩 거쳐 간 제자들에 이어 세 번째 제자인 셈이다. 또한 전국 48개 한우농가에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지난 1976년에 농사를 시작했으니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이 3번이나 지나고도 5년이 더 됐다. “당시 농진청 교육을 갔었는데 어떤 사람이 사례발표를 했어요. 농업을 해서 연 1000만원을 번다는 거예요. 70년대 당시 한 달 월급이 고작 3만원 정도 할 때였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도 1000만원 벌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81년 축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백 대표는 한 가지씩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방송통신대학과 한국벤처농업대학도 졸업했다. 2006년에는 농림부에서 ‘신지식인 농업인장’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으로부터 ‘농축산부산물 자원화 홍보대사’에 위촉됐다.

2010년에는 새농민 본상(농협중앙회,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고 지난해 말에는 농진청에서 ‘대한민국 최고 농업기술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들도 후계자 공부 ‘부농의 전설’ 이어간다 백석환 대표는 요즘 마음이 든든하다. 억대 수익과 농업기술명인이란 칭호 때문만은 아니다.

“아들이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에서 일해요. 농업에 대한 미래를 보고 아들아이에게 농대를 권했는데, 1학년 때는 적응을 잘 못해 걱정했었죠. 다행히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농업에 대한 가치를 이해하면서 제 할 일을 찾아가더라고요.”

아들 백열창씨(29세)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는지 전공이 TMR이다. 백 대표에겐 든든한 울타리이자 버팀목이 생긴 것. 농업을 해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시작한 그가 이제 처음의 꿈은 이룬 것 같다. 하지만 50이 넘은 그가 새롭게 꾸는 꿈이 있다. 자신의 노하우를 주변 농가에 보급해 ‘부자농장’을 이식시키겠다는 꿈이다.

전략 노하우 | 석청농장 경영철학
뚜렷한 직업정신에 도전의식 투철

백석환 대표의 ‘대한민국 최고 농업기술인’이란 자부심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만의 경영 철학과 원칙을 몸소 실천하면서 얻어진 값진 결과물이다.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한 경영 철학은 첫째, 직업의식을 갖고 농장 경영을 하자다. 뚜렷한 직업의식이 없이 농장을 경영하는 것은 나침반 없이 세상을 나서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백 대표는 항상 자신이 축산농업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런 자세로 생활을 하기 때문에 남들의 눈에는 안 보이는 일들이 자신에게는 보인다고 믿는다.
둘째, 백 대표는 규모화에 의존하지 않는다. 작은 규모에서도 최선을 다한다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주변 다른 사람들의 농장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항상 농장 규모에 만족하면서 내실을 키우는 게 더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셋째, 경영과 함께 농기계 엔지니어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농기계의 오일교환이나 에어클리너 청소 등은 직접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농기계 기술을 취미로 삼으라고 권한다. 결국 이런 취미가 농기계의 수명을 연장하고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한다.

넷째, 농장경영은 도전과 연구생활을 일과로 삼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는 교육이 농장경영의 기본이며 교육을 통해 도전정신이 생긴다고 믿는다. 다른 농장의 규모는 부러워하지 말되 타 농장의 경영방식은 배워서 자신의 농장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다섯째, 가족 중심의 농장경영을 하라고 조언한다. 남의 일손을 빌리지 말고 자가 노동력으로 농장경영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백 대표는 한 번만 더 생각하면 농장 일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일은 줄이고 가족과 함께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이 올바른 재충전 방식이라는 것이다.

한상오 기자 hanso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