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철민 비욘드엑스 대표 겸 에디터.

[이코노믹리뷰 특별기고= 김철민 비욘드엑스 대표]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발(發) 공급망 교란에 신음하고 있다. 저물가와 저금리, 기술의 독점, 무역 분쟁에 따른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이 잘 알려진 리스크라면, 코로나 발병처럼 우발적인 위기 상황은 예측이 어렵다는 점에서 시장의 타격이 더 크다. 자연재해나 재난, 질병이 대표적인 예측 불가형 리스크에 해당한다.

이에 전 세계 글로벌 기업들도 코로나 여파로 상반기 매출에 대한 예상 실적을 대폭 수정하기에 나섰다. 중국과 아시아 지역의 공급망 단절이 그 이유다. 전 세계 최첨단 기술 산업은 중국과 아시아 중심의 부품 산업 클러스터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이 지역을 대체할 재고 수준과 대체 공급선(Alternative Supplier)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재난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일례로, 애플은 팍스콘에만 집중돼 있던 완제품 조립을 팍스콘(152B USD Revenue), 위스트론(29B USD Revenue), 페가트론(44B USD Revenue), 컴팔(32B USD Revenue)로 분산해 운영 중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팍스콘의 시설이 위치한 타이베이, 쑤저우, 멕시코시티, 마드리드, 클리블랜드 지역 중에 타이베이와 쑤저우, 즉 중국과 아시아의 생산 영향력이 여전히 높다는 것이다.

SCM(Supply Chain Management·공급망 물류관리) 분야 전문가로도 잘 알려진 팀 쿡이 이끌고 있는 미국의 애플조차도 중국 전역에 걸친 생산 시설과 항만의 폐쇄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공급처 다변화만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부품 공급망 다변화는 대량 발주에 능한 대기업에 비해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중소기업에서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연결고리의 복잡함, 그리고 연약함

〈파이낸셜 타임스〉의 시니어 칼럼니스트 팀 하포드의 책 <어댑트>는 토스터 기계 한 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전기 플러그, 구리, 석쇠, 스프링, 니켈, 운모 등 수많은 부품과 그 제작과정의 복잡함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가전제품 중에서 가장 단순한 제품이라는 토스터에도 최소 157개의 부품과 38가지의 재료가 필요한데, 쌀알보다 훨씬 작은 부품이 정밀하게 결합된 스마트폰이나 2만 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 산업은 그보다 몇 배 더 힘든 일이다.

이렇듯 공급망 작동은 세상의 모든 제품 제조와 판매, 유통 과정에서 기적을 만드는 행위다. 전 세계에 걸친 복잡한 네트워크와 기업들이 이를 구성하는 일부라는 점에서 공급망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다. 한·중·일 3국의 무역 관계를 대강 살펴봐도 한국의 수출은 일본의 부품과 소재에 기대고 있고, 중국의 생산은 한국의 중간재가 필요하다. 올해 초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의 반도체 생산과 수출에 차질을 주려는 목적으로 공급망 중에서 가장 약한 연결고리를 건드렸다는 점을 상기하자. 하나의 고리에서 발생한 충격은 공급망을 타고 전 세계에 전파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선제적 예측이 아닌 신속한 대응

이런 관점에서 ‘포스트 코로나(Post-Corona)’는 글로벌 공급망의 대규모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기업들이 해외 생산에만 의존하는 것은 국제 분업 네트워크가 붕괴하면서 그 리스크가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한 번 더 일깨웠다.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며 기업들은 공급망 위기관리에 대해 ‘선제적 예측이 아닌 신속한 대응’을 필요로 한다. "알려진 리스크는 더는 리스크가 아니다"는 말이 있듯 불확실성은 점령의 대상이 아니라 친숙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계란이 깨지지 않게 한 바구니에 담지 않듯 안정적인 공급망 운영을 위해서는 기업과 리더 중심의 중앙집중적 통제를 벗어나 분산된 자율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 설계, 즉 탈집중화된 실험이 필요하다. 

결국 비즈니스 리스크 관리는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문제해결 역량이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일련의 논제에 대해 팀 하포드는 자신의 저서에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벌레는 길이 막히거나 장애물을 만나면 곧바로 그것을 에둘러 간다. 바로 적응하기 위해서다. 땅을 기면서 장애물을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기업의 리더와 정책 결정자들은 이런 ‘벌레의 시각’이 조직에 허용되고 확산하도록 해야 한다. 하늘에서 보는 새의 시각이 아닌 벌레의 시각을 가질 때 눈앞에 닥친 도전과 실패에 대해 적응력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팀 하포드 <어댑트>(2011) 中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 글로벌 공급망 관리의 변화에 대한 적응력은 ‘새의 시각’보다 ‘벌레의 시각’이 더 중요하다고 팀 하포드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