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를 활용한 신약개발 방법이 주목된다. SK바이오팜 연구원이 연구를 하고 있다. 출처=SK바이오팜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신약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제약사 사이의 간극 등을 줄이기 위해 각 제약사들이 AI 신약개발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AI 신약개발 스타트업인 인실리코 메디슨은 새로운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이를 합성 및 검증하는 단계까지 단시간에 수행할 수 있는 AI 시스템 ‘GENTRL’을 개발했다. 연구진은 GENTRL을 이용해 섬유증 및 기타 질환 치료를 위해 DDR1 억제제 타깃물질 6개를 발굴하고 합성한 후 시험관(in vitro) 및 생체(in vivo)에서 검증하는 프로세스를 단 46일만에 마치기도 했다.

신약개발, 긴 시간·막대한 비용 소요

신약은 질병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개발된다. 특정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있음에도 해당 질환을 타깃으로 효능과 안전성이 더 좋은 약이 출시된다. 면역항암제가 그 예다. 항암제는 1세대, 2세대, 3세대로 나뉜다. 2세대 표적항암제로도 다양한 암종을 치료할 수 있지만 부작용 등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3세대인 면역항암제가 연구개발(R&D)된 후 출시됐다.

신약은 크게 작용기전을 토대로 동종 계열내 최초(First-in-class)와 동종 계열내 최고(Best-in-class)로 나뉜다. 면역항암제는 전자,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는 후자에 속할 수 있다. 엑스코프리 임상 2상에 참여한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이상건 교수는 “난치성 뇌전증 환자를 위해 부작용을 개선한 약은 많았지만 이처럼 효과가 뛰어난 약은 없었다”면서 “기존 치료제의 부작용, 약물상호작용 등을 더욱 개선하기 위해 신약은 꾸준히 개발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과 비용이다. 업계에서는 대개 5000~1만여개 신약후보물질 중에서 9개만이 임상에 진입하고 이중 하나의 신약만이 최종적으로 판매허가를 받아 시판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를 획득하기 위해 소요되는 임상 기간은 1990~1994년 평균 4.6년에서 2005년~2009년 동안 7.1년으로 늘어났다. 후보물질 발굴과 독성시험, 전임상 등의 기간을 포함하면 R&D 기간은 8~15년까지 길어질 수 있다.

▲ 신약개발단계. 출처=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미국계 글로벌 제약사들은 지난 15년 동안 신약 개발에 약 520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이는 항공산업의 5배, 소프트웨어와 컴퓨터 산업의 2.5배에 이르는 규모다. 글로벌 제약사 로슈와 노바티스는 연간 약 85억달러(약 10조원) 규모를 R&D 비용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각각 21.8%, 19.9%에 이른다.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은 약 7.5% 수준이다. 국내에서 R&D 투자액이 가장 많은 셀트리온은 2018년 2888억원을 투자했다.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29.4%다. 셀트리온 등 다수의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이 고군분투 하고 있음에도 글로벌 제약사와의 R&D 투자액 차이는 크다.

긴 시간과 대규모 비용을 투자했음에도 실패할 수 있는 것이 신약개발이다. 개발에 성공할 시 단일제품으로 연매출 10억달러(약 1조원)를 기록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될 가능성이 있는 한편 매출이 저조할 수 있다는 리스크도 공존한다. 업계 관계자는 “AI를 신약개발에 활용할 시 기존 신약후보물질 발굴에 소요되는 기간과 비용절감에 커다란 효과가 있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향후 신약개발에서 AI의 활용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AI 신약개발 통해 제약 강국 도약 목표

AI를 신약개발에 활용할 시 기존의 연구 방식을 개선할 수 있다. 대개 신약개발을 위해 한 명의 연구자가 조사할 수 있는 자료는 한 해에 200~300여 건이다. AI는 한 번에 100만 건 이상의 논문을 탐색할 수 있다. 이는 또 400만 명 이상의 임상 데이터도 분석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이 발달해 신약개발에 본격적으로 활용되면 미래에는 소수의 연구원만으로도 비용과 기간을 대폭 줄여 블록버스터 약물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강조했다.

제약사들은 신약개발 효율을 높이기 위해 자체 AI신약개발 플랫폼 개발 이외에도 전략적 제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 세계 AI신약개발 스타트업 약 150곳 중 주목을 받는 한국 기업은 신테카바이오와 스탠다임이다.

▲ 글로벌 AI 신약후보물질 발굴 시장 규모(단위 백만달러). 출처=Allied Market Research

CJ헬스케어와 JW중외제약,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카이노스메드 등은 신테카바이오와 협업을 진행했다. CJ헬스케어는 신테카바이오와 협력을 통해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STB001’ 발굴에 성공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CJ헬스케어 측으로 기술도입됐다. KTB투자증권 김재윤 애널리스트는 “CJ헬스케어는 신테카바이오와 6개월 협업으로 선도물질까지 도출에 성공했다”면서 “CJ헬스케어 내부적으로 전통적 방법을 통한 유효물질 도출이 2년 이상 걸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획기적인 수치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SK로부터 100억원의 투자를 받은 스탠다임은 약물이 특정 세포나 유전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학습한 ‘스탠다임 인사이트’와 220만 건에 이르는 물질의 구조와 기능을 딥러닝으로 학습한 ‘스탠다임 베스트’ 등을 보유하고 있다. 스탠다임은 글로벌 제약사 및 한미약품, CJ헬스케어, 크리스탈지노믹스,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한국과학기술원 등과 협력했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미국에서 AI에 기반을 두고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 아톰와이즈와 협약을 체결했다. 브릿지바이오는 협약을 통해 아톰와이즈의 AI 기술을 적용, 최대 13개의 새로운 저분자화합물 후보물질을 발굴할 예정이다.

두 기업은 계약에 따라 초기에는 ‘펠리노 E3 유비퀴틴 리가아제’와 신규후보물질의 상호작용을 평가할 계획이다. 상호작용 평가 후에는 다양한 질환을 타깃한 ‘펠리노 저해제’를 개발하게 된다. 두 기업은 또 브릿지바이오가 선정한 추가 타깃에 대한 발굴도 진행할 방침이다.

브릿지바이오 이정규 대표는 “이번 공동연구는 아톰와이즈의 우수한 AI 기술에 기반을 둔 연구 협력을 통해 더욱 다양한 타깃과 새로운 후보물질을 발굴해 나가는 데 탄력을 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브릿지바이오는 궤양성 대장염 환자를 대상으로 ‘계열내최초(First-in-class)’ 펠리노-1 저해제 후보물질 ‘BBT-401’의 미국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펠리노-1 단백질을 저해해 염증을 억제하는 기전을 나타낸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인공지능 신약개발지원센터를 열고 국내 제약사의 AI 신약개발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AI를 활용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면서 “신약개발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