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주, 162.2×130.3㎝ 캔버스에 유채, 2018

차이와 소통은 무작위와 얽힘을 이해하는 것이다. 현대 과학은 재현과 환원의 방식을 벗어나고 있다. 우연을 통해 체계를 세우는 것이며, 결코 처음부터 계획대로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김상표의 작업 역시 처음부터 계획하지 않는다. 그는 생명이 우연 속에서 체계를 만들어가듯이, 자신의 작업에서 무작위성을 긍정한다.

우연을 긍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인공으로 산다는 것은 그 우연을 긍정하는 태도이다. 김상표는 자신의 작업에서 나오는 그 무작위성을 통해 일정한 체계를 만든다. 그가 작업한 ‘얼굴성’은 그런 우연에 대한 절대적인 긍정을 통해 표현된 것이다.

그의 우연은 한 사건을 긍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한 획의 우연성을 통해 얽혀지는 것이다. 얽힘은 부분을 통해 환원될 수 없는 새로운 창발적인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색과 선의 얽힘을 부분으로 분리해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이 탄생하는 것이다.

▲ 김명주, 162.2×130.3㎝ 캔버스에 유채, 2018

김상표의 ‘얼굴성’의 연작은 색과 선이라는 통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얽힘이 나올 수 있는지를 예측할 수 없는 방식이다. 그것은 과거를 통해서도 미래를 통해서도 재현하거나 예견할 수 없는 고유한 근원적 창조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김상표의 그림은 재현이 아니라 체험한 삶의 고유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신만의 사건이며 느낌이다. 우리 역시 그가 그린 작품을 통해 차이를 마주하며 느끼는 것이다. 차이의 시대에 본다는 것은 자신의 다양한 인격성과 마주하는 것이다. 사이버 시대에 다양한 ID라는 구멍을 통해 소통을 하는 우리는 외로움이나 우울증과 마주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기 자신안의 진짜 차이를 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니체는 문명인의 삶은 원시인과 달리 천천히 보는 시각을 가질 때 만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는 자신을 천천히 드러내서 볼 힘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은 생명을 잃고 상실해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상표(김상표 작가,金相杓, ARTIST KIM SANG PYO)의 ‘얼굴성’ 연작은 참된 차이를 직시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이 시대의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알려주는 모험의 징표라고 할 수 있다.

△글=김영진(대구대,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