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하나의 시장이 열리면 다양한 플레이어가 경쟁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1등 기업'이 탄생한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에 따른 시대의 흐름은 1등 기업에게 무한의 연속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특히 ICT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면 또 한 번 판은 출렁이기 마련이다.

재미있는 것은 새로운 강자에 일격을 당한 1등 기업의 반격이다. 이들은 새로운 강자의 매력 포인트를 업의 본질이라는 키워드에 묶어 입체적인 전략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아마존에 일격을 당한 '원조 후발주자' 디즈니와 월마트의 이야기다.

▲ 디즈니. 출처=픽사베이

디즈니의 방식
월트디즈니 컴퍼니는 1923년 월트 디즈니와 로이 디즈니가 설립한 만화 스튜디오 기업으로 출발해 100년 가까이 글로벌 콘텐츠 시장을 호령했다. 창의성과 혁신을 바탕으로 뛰어난 콘텐츠를 제작했으며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의 픽사까지 인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디즈니 채널 월드와이드, ABC 패밀리를 비롯해 ESPN 등 탄탄한 미디어 네트워크 제국을 보유하고 있으며 테마파크와 영화, IP 산업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디즈니의 행보가 곧 글로벌 콘텐츠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1997년과 2007년, 탄탄한 제국에 미세한 균열이 가지 시작한다. 바로 넷플릭스의 등장이다.

1997년은 넷플릭스가 탄생한 해다. 당시 넷플릭스는 DVD 대여로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 DVD 시장에는 이미 큰 손인 블록버스터가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 누구도 넷플릭스의 생존을 장담하지 못했으나, 넷플릭스는 연체료를 과감하게 폐지하고 구독료를 받는 비즈니스 모델로 큰 호평을 받았다. 블록버스터는 마치 운석을 맞은 공룡처럼 2013년 파산하고 말았다.

2007년은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때다. DVD 대여에서 벗어나 통신 네트워크의 기술적 진보를 활용해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뽑아들었고, 현재 이는 'OTT 시장의 최강자=넷플릭스'라는 공식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는 제국의 미세한 균열일 뿐이다. 디즈니는 1997년에도, 2007년에도 여전히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했으며 그 연장선에서 보여준 업의 본질도 탄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디어 시청 패턴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넷플릭스의 등장에 디즈니가 일정정도 긴장한 것은 사실이다. 1등 기업으로 군림했으나, 새로운 강자의 일격에 대비할 필요는 있었다.

디즈니가 보여준 '원조 후발주자' 전략에 시선이 집중된다. 디즈니는 2017년 8월 넷플릭스와의 연대를 끊어내고 자체 OTT를 구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즉 콘텐츠 강자에서 벗어나 콘텐츠+플랫폼 강자의 존재감을 선택한 셈이다.

초반 많은 우려가 나왔다. 특히 디즈니가 자체 OTT를 출시하면서 넷플릭스와의 콘텐츠 제휴를 중단한 자체가 모험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디즈니가 콘텐츠 강자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에서 특히 중요한 플랫폼 역량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달렸다.

디즈니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넷플릭스와 콘텐츠 연대를 중단한 직후인 2017년 12월 21세기 폭스의 미디어 사업을 전격 인수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으나 인수절차는 예정대로 진행됐으며, 디즈니는 훌루의 경영권까지 확보하며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자체 OTT 디즈니 플러스도 순조롭게 출발해 이제는 1300만명의 가입자를 달성했다.

▲ 디즈니 플러스. 출처=갈무리

월마트의 방식
1962년 샘 윈튼의 손에서 태어난 월마트는 무려 28개 나라에서 영업하는 할인점의 대명사다. 말 그대로 최강의 오프라인 유통망을 보유한 곳이다.

월마트는 오랫동안 미국은 물론 글로벌 유통업계를 좌우하는 큰 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새로운 강자의 도전을 받기 시작한다. 바로 제프 베조스의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강력한 ICT 기술 플랫폼으로 유통의 패러다임을 이커머스로 옮겨오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마존 프라임 등 구독경제 전략을 통해 소위 가두리 양식장 전략을 구사하면서 '모든 것을 아마존의 품'에 넣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제 아마존은 AWS의 클라우드부터 이커머스, 로봇, 인공지능 등 현존하는 모든 기술을 빨아들이는 새로운 제국으로 변신하고 있다.

월마트는 초반 아마존의 맹공에 크게 휘청였다. 특히 이커머스 본능에 속절없이 무너지며 한 때 '덩치만 큼 공룡'이라는 비야냥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월마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트닷컴을 인수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한편 아마존 프라임을 연상하게 만드는 월마트 플러스를 출시, 만만치 않은 기술본능을 보여주고 있다.

▲ 월마트. 출처=픽사베이

원조 후발주자의 무기는?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등장으로 위협을 받기 시작한 디즈니와 월마트. 이 사례를 동일선상에 두고 획일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디즈니와 월마트라는 '원조 후발주자'들의 전략적 행보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다.

먼저 체질 개선이다. 디즈니는 넷플릭스와의 콘텐츠 제휴를 종료한 후 디즈니 플러스를 독자 출시하며, 콘텐츠의 소비 패턴을 이해하는 자사의 시각을 완전히 바꿨다. 이는 넷플릭스라는 자극에 대응하기 위해 파격에 가까운 수단을 동원했기에 가능했고 조직 체질을 바꾸기 위한 실험이 있기에 가능했다.

월마트도 마찬가지다. 오프라인을 거점으로 '장사'한다는 체질을 바꿔 아마존이 보여준 온라인 본능을 충실하게 체화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최근 월마트는 패션 부티크 '스쿠프'를 월마트 온라인 매장에서 리런칭하는 등 다양한 전략도 구사하는 중이다. 월 12.95달러만 내면 무제한으로 식료품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도 출시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과감한 투자도 관전 포인트다. 디즈니는 넷플리스와의 제휴 종료 후 바로 21세기 폭스 인수라는 커다란 '딜'을 성사시켰고, 이 과정에서 실적이 주춤할 정도의 출혈을 감내했다. 또 월마트도 제트닷컴 인수 및 이커머스 확대를 위해 강력한 투자를 단행했고 2017년부터 월마트의 온라인 판매 성장률은 60%대로 치솟았다. 이러한 통 큰 전략은 '원조 1등'이 보유한 막대한 자금이 있기에 가능했다.

1등 기업으로서 업의 본질을 잘 알고 있기에, 새로운 강자가 보여준 방식과 기존 방식의 융합을 끌어내는 장면도 보인다. 실제로 디즈니는 콘텐츠 집중 전략으로 일관했으나 디즈니 플러스 런칭을 기점으로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 작동을 익혔다. 이를 바탕으로 순식간에 OTT 시장의 핵심 키워드를 플랫폼 매력이 아닌, 콘텐츠 매력으로 정리하는 괴력을 보여줬다. 넷플릭스가 최초 테크 기업의 정체성을 강조했으나 지난해부터 콘텐츠 기업의 정체성으로 전환한 것도 원조 후발주자인 디즈니의 행보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월마트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이커머스가 아니라 오프라인 거점 중심의 '올포원 커머스' 전략을 가동하며 업의 본질과 신기술의 적절한 배합을 끌어냈다. 아마존이 홀푸드 인수 및 아마존고, 아마존고 그로서리를 런칭한 것도 월마트의 방식의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 제트닷컴. 출처=갈무리

물론 이러한 원조 후발주자들의 행보가 마냥 합격점을 받는 것은 아니다. 디즈니의 경우 '콘텐츠+플랫폼 전략'의 효과를 아직 단정하기에는 어려운 시기인데다 최근 밥 아이거 CEO의 퇴장 등으로 IP 중심의 수익사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하자 업계에서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월마트도 야심차게 월마트 플러스를 런칭했으나 "성공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나오는 중이다. 온라인 사업도 성장률은 높지만 수익성이 낮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다만 업의 본질을 알고, ICT 기술을 적재적소에 담아내며 '온라인 플러스' 전략을 취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평가다. 만약 이들이 미래의 시장을 바꾸는 큰 시각을 보여주면 최종성공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여지도 있다. 디즈니가 넷플릭스 타도를, 월마트가 아마존 타도를 목표로 삼는다면 필패일 가능성이 높지만 각각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글로벌 유통시장의 변혁이라는 큰 그림을 그린다면 업의 본질을 숙지한 플레이어가 승리할 수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