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훈 기자가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일환으로 재택근무하는 모습. 사진= 본인 제공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2일 오전 6시.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울리는 알람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에 근무지까지 한 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던 덕이다. 

이날은 회사 방침에 따라 재택근무를 실시한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다. 회사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고 유사시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기자들을 대상으로 재택근무 조치를 단행했다. 그리고 이 기록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언제나 열혈이고 싶은 한 기자의 이야기다.

"한 손은 타자, 한 손은 아이를 안고"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전, 간밤의 뉴욕 증시나 글로벌 뉴스를 점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도 다르지 않다. 평소와 다른 것은, 모든 뉴스가 코로나19와 관련된 것 뿐이라는 점.

스마트폰으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니 메인 화면부터 코로나19의 현황을 알리는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우리나라에 본격화한지 한 달이 훌쩍 넘었지만 감염자 통계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일 확진자가 4000명을 넘어섰다는 말을 들으니 절로 긴장이 된다. 나는, 이 엄중한 시국에 어떤 기사를 써야 할까.

기자의 사명과 엄혹한 시기에 대한 짧은 사유의 순간(?)이 시작된 오전 7시. 노트북을 열고 취재 분야의 헤드라인을 훑고 있자니 갑자기 옆방에서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올해 4살 된 첫째 아이가 눈을 비비며 방문을 나서자마자 아빠에게 안기러 작은방으로 들어온다. 

"아빠..."

막 손가락을 풀며 열혈기자모드로 변신하려던 기세가 주춤거리는 것을 느낀다. 기자는 노트북을 등지고 돌아서 첫째 아이를 안아들었다.

3살 되던 해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첫째 아이는 등원한지 1년 만에 처음 비정기적인 ‘방학’을 맞아 하루 종일 집에 머물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코로나19 감염 예방책에 따라 지난달 27일부터 전국 어린이집이 휴원했기 때문이다.

휴원의 여파, 그리고 재택근무의 조합은 가정의 평화를 귀엽게 위협한다. 첫째 아이가 아빠와 놀지 못하는 걸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신속한 추경...아니, 신속한 '케어'가 필수다. 최후의 순간 떼쓰거나 울기 시작하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아이를 진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첫째 아이를 어르고 달래 떼어놓지만 하루에도 수차례 안아주고 대화해야만 더 큰 ‘사태’가 벌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특히 아내가 생후 50일도 채 안된 둘째 아이를 보살피느라 발 묶인 가운데 첫째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업무는 ‘전면 중단’ 된다. 아이들과 여러 차례 씨름을 하다보니 일의 흐름이 끊기기 일쑤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품을 파고든 둘째 아이를 한 팔로 안은체 다른 팔로 키보드를 치고 있으니, 왠지 태평양 너머 헐리우드 어딘가서 한 팔에 아메리카노, 한 팔로 아이를 안은 어느 남배우의 포스가 스스로 느껴지지만 어깨는 빠질 것처럼 아프다.

그렇게 업무에 몰입하지 못해 애 타는 동시에 아이들과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겹쳐 마음이 뒤숭숭하다. 근처 카페에라도 찾아가 일할까 고민해보지만 일이 잘못되면 왠지 '카페가 코로나19 청정지역이냐'라며 핀잔을 줄 것 같은 데스크의 잔소리가 아련하게 예상된다. 일단 그건 포기하기로 했다. 

오전 8시. 아이를 간신히 달랜 후 일단 빌라 출입구 옆에 설치된 우편함에 꽂혀 있을 일간지 신문을 챙기러 나선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 출입문을 열면 20초도 안돼 우체함에 도착할 수 있지만 마스크에 장갑까지 철저히 착용한다. 건물에 우리 가족을 포함해 8가구가 살고 있어 자칫 공기를 통해 코로나19에 감염될지 몰라서다. 이웃을 ‘잠재적 보균자’로 여기는 건 실례지만, 반대로 이웃에게 병균을 옮길 수 있는 일이라 서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 이코노믹리뷰 최동훈 기자가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우편함에서 신문을 꺼내들고 있다. 사진= 본인 제공

출입문을 나서니 빌라 주차장이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 연차 휴가를 쓰고 평일 같은 시간에 집에 머물며 목격했던 풍경에 비하면 차가 좀 더 많아 보인다. 이웃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임시 휴업하거나 재택 근무하느라 각자 집에 머무르는 모양이다.

취재원 “재택근무 하시나 봐요, 우리도…”

오전 9시. 본격적인 취재를 위해 출입처 직원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전화 취재는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에도 흔한 일이었지만, 재택 근무하는 요즘은 외부와 소통하고 업무하는 과정에서 유일한 경로다. 확진자가 불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다보니 매 통화는 서로 건강을 묻고 기원하는 인사로 시작하고 끝난다.

모 출입처 A 부장이 수화기를 통해 말하던 중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기자님, 집에서 일하고 계시나 보네요?”라고 묻는다. 첫째 아이가 떠들고 둘째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었나 보다. A 부장도 마침 집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홍보실 직원들이 취재진 문의에 수월히 응대하려면 회사로 출근해 실무진과 활발히 소통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재택 근무 체제를 한시적으로 도입한 기업의 홍보실 직원들은 당번 일정에 맞춰 소수 인원만 출근하고 있다고 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업의 본질인 기자도 현장에 나가지 않고 전화나 온라인 자료를 탐색하는 등 방법으로 취재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적·질적 수준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취재원을 대면하거나 현장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기자에게 재택 근무는 마치 장수가 전쟁터에 나서기 전 한 쪽 팔을 묶어두는 모습과 비슷하다.

이후로는 전쟁이다. 12시 점심을 먹기 전까지 최대한 자료를 긁어모으고 전화로 취재를 시도한다. '어?'하는 순간 다가온 아이의 천진한 웃음에 마음을 빼앗기다가도 읽지않음 카카오톡 메시지가 수백개 들어온 것을 확인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몸이 두 개면 얼마나 좋을까.

점식식사 후 다시 자리에 앉아 기본적인 취재의 얼개를 맞춘다. 하루 평균 전화만 30번을 하니 귀가 얼얼하고 정신이 몽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봄날은 오지 않았는데 왜 벌써 춘곤증이 오는지. 작업을 할 때 만큼은 익숙한 내 집, 내 방이 곧 마귀의 유혹이더라. 다 때려치우고 침대에 엎어지거나 아이들과 놀아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기자는 기사로 말하는 법. 그렇게 기사를 위한 사투와 유혹을 이겨내기 위한 사투가 오후 내내 벌어진다.

오후 4시. 긴급한 정보를 알리는 메시지가 왔다. 바로 사안을 정리하고 전문가들의 멘트를 받는 한편 출입처에 연락을 하고 기사의 아웃라인을 만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현장을 직접 가보지 못한 관계로 실질적인 사안의 파급력을 기사에 녹이는 것이 애매하다.

급한 마음에 데스크의 의견을 묻고 의논하려 카카오톡을 보냈지만 답이 없다. 기자는 24시간 항상 연결되어야 한다고 일장연설을 하던 그 패기는 어디가고..초조한 마음에 '카카오톡 숫자 1'이 사라질 순간만 애타게 기다린다. 그러나 무려 5분이 지나도 답이 없고, 바로 전화를 하니 그 너머로 소란스러운 아이 목소리와 함께 데스크의 계면쩍은 목소리가 들린다. '미안, 설겆이 하느라 못 받았어. 무슨 일이야?'

데스크도 재택근무 중인 가장이었지...괜시리 짠한 마음이 들어 투덜대는 것은 참기로 했다. 일단 데스크와 유선으로 논의하며 사안의 주제를 잡았고, 그렇게 어찌어찌 면을 막았다.

그렇게 오후 6시. 우여곡절 끝에 업무를 종료했다. 일이 끝나자마자 집 안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 낯설다. 

늦은 저녁의 누런 햇살이 커튼 아래에 펼쳐진 노트북을 평안하게 감쌀 무렵, 오늘도 전쟁을 무사히 치르게 된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실 심경은 복잡하다. 서울·수도권 전철을 통해서만 출·퇴근 해왔는데, 퇴근길에선 출근길과는 달리 매번 정확한 시점에 전철에 올라타고 환승하기 어렵다. 퇴근길에서 보내는 시간만 2시간을 훌쩍 넘었다. 그런데 재택 근무를 하니 코로나19 사태와는 역설적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육아를 병행하다시피 하며 하루를 보내고 난 뒤 맞은 저녁에 느끼는 피로감의 수준은 정상 근무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번에 여러 과제를 처리해야 하는 측면에선 재택 근무가 오히려 더 부담스럽다.

재택 근무는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예측하기 불가능한 상황에서 감염 사례를 최소화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다. 다만 육아에 대한 도움을 받기 어려운 맞벌이 부부나 현장 근무가 필수인 경제인구 등 일부 시민들에겐 적잖은 압박감을 주는 요소다. 사태가 빨리 진정돼 모든 시민들의 일상이 정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기자도 현장에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