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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잘 해도 불확실성은 불신을 부추길 뿐

꾸준한 놈은 칭찬 받지만, 어쩌다 잘한 놈은 욕 먹을 뿐이다.

지금은 사촌 형님들도 다들 할아버지 대열에 들어간 지가 오래지만, 내가 어렸을 때 형님들이 고등학교 시절을 우리집에서 보냈다. 거기엔 외삼촌도 포함된다. 외갓집은 밀양 가곡동이었고, 큰집은 창녕군 길곡이었다. 때문에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만 시골에서 마치고, 고등학교는 마산에서 학교를 나왔다. 평준화 되고 나서도 마산은 고입부터 학력고사 뺨치는 곳이었으니, 외삼촌이나 형님들이 공부는 꽤 했던 편이다.

8남매 중의 막내로 자란 아버지는 시골 농사보다도 도회지 마산에서 직장을 다니셨고,이후 조그만 사업을 하다 (결국 망했지만) 세탁소를 운영했다. 때문에 어릴 때 집은 늘 삼촌이나 형님들 틈바구니에서 꼬꼬마로 자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까지 친척이 모인 곳에선 한번도 꺼내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우리 가족에게만 했던 얘기가 있다.

“니네 외삼촌은 머리가 비상하지는 못했지만, 성적이 한결 같았어. 꾸준히 공부했고 1등은 못했어도, 2등 못하면 3등 정도였지.”

“형은요?”

“걔는 머리가 아주 좋은 놈이었어.어쩌다 독한 맘 먹고 공부하면 1등 그런데 그게 유지가 되질 않아, 그러다가 다음달엔 꼬라 박기 일쑤였지.”

“그래도 형은 1등을 해보기라도 했으니 2-3등 보다 낫지 않나요?”

어릴 때였기에 나는 1등을 해 본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잘난 머리 믿고 까불었던 내 스스로가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 역시도 외삼촌 과가 아니라 형님 과에 속했으니까.

그 결과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성적이 항상 최상위권으로 유지되던 삼촌은 은행에 들어가서 정년까지 마치시고, 임금피크로 몇 년을 더 근무하면서 평생을 은행원으로 보냈다. 근무지에 따라 이사를 좀 다녔을 뿐, 주위에서 외삼촌의 삶에 대한 걱정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반면에 사촌형은 대기업에 입사해서 잘은 살았지만 명퇴도 하고 은근히 주위에서 보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당신은 ‘당신이 반복적으로 행한 행위의 축적물’이다

학교 다닐 때도 늘 그랬다. 성적이 일정하게 상위권을 유지하던 학생이 어쩌다 시험을 망치기라도 하면 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구나?”라고 걱정을 해준다. 하지만 평소에 늘 놀기만 하던 학생이 어쩌다 독한 마음 먹고 시험을 잘 쳤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이렇게 잘 할 수 있는 놈이 게을러터져서 지금까지 뭐 한 거야?”라며 오히려 욕을 먹기 마련이다.

아마존의 채용 면접은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면접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통해 외부로 알려진 것들이 많은데, 대부분 ‘지옥에 갔다 온 느낌’이라고들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면접을 거치고 나면 양말과 겨드랑이가 다 젖을 정도라고 하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면접관 6명이 돌아가면서 ‘1 대 1’ 방식으로 면접을 보는데,면접관 한 명당 평균 1시간 이상씩을 잡아 먹는다니, 최소 6시간은 압박 면접에 시달린다고 봐야 한다.

특히 6명의 면접관 중에 숨어 있는 한 사람을 ‘바 레이저 (Bar Raiser)’라고 한다는데, 장애물 즉 바(Bar)라 할 수 있는 기준을 높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최소 100회 이상의 인터뷰 경험이 있는 베테랑 직원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과거의 경력에 상관없이 당황스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해 놓고 어떻게 해결책을 제시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지를 본다고 한다. ‘STAR’라는 프레임을 정해 놓고, Situation 즉 상황이나 질문의 의미를 정리하고, Task 해야 할 업무의 순서를 어떻게 잡고, Action 실행을 어떻게 할 것이며, Result 즉 어떤 결과가 도출될 지에 대해 예상하는 지에 대한 내용이다.

이런 프로세스는 아마존이 지원자들로 하여금 채용 이후에 실제 업무에서 어떻게 적응해 나갈 지 상상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회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전개해 나가는 경우, 그 지원자는 탈락이다. 아마존이 이렇게나 채용에 신경을 많이 쓰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은 회사가 커질수록 회사와 맞지 않는 직원도 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회사와 잘 맞는 인재들을 가려 뽑기 위한 특단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기업들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아마존이라 언제부턴가 많은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왔기에, 과거의 경력을 묻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 해 나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그들의 방식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아마존 내부의 실질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거기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맡은 바 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율권이 주어지고 스스로가 대범한 방법을 찾아서 적용시켜낸다면 인정 받고 성장도 하게 된다.이는 아마존이라는 기업이 가지는 기업철학과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가능하다.

난 지금까지 수많은 면접을 해오면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이나 약속에 대해 비중을 둔 적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 있다. ‘당신의 진정한 모습은 당신이 반복적으로 행하는 행위의 축적물이다. 탁월함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습성인 것이다.’ 난 이 말을 철저히 신봉한다. 소위 면접관으로 나선 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놓고 왜 그렇게 밖에 생각 못하냐고 언쟁을 벌이는 것을 본 적도 많다.

나는 철저히 과거에 어떻게 해 왔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을 얘기로 듣고자 했다. 성공과 실패한 사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그 상황 속에서의 역할이 어땠는지에 대해 알고자 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구체성을 띠느냐는 것이다. 간혹,여럿 중에서 한 팀원일 뿐인데 회사 위기를 혼자서 구했다는 식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있다. 팀장도 있는데 대신 나서서 다 해결했다는 식인데, 불가한 것은 아니지만 구체성이 부족하다. 대부분 자화자찬의 형용사 부사어만 가득할 뿐이다. 작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이고 어떻게 수행했는지에 대해 세세히 기억하고 있다면 그 경험은 향후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급전이 필요해서 회사채나 유상증자 같은 외부 유입 자금이 필요한 경우에 하나 같이들 그럴듯한 기업 소개 자료를 만들고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비전을 얘기한다. 거의 2000년부터 나도 그 비슷한 자료를 수없이 만들고 발표해 왔다.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온 배경을 토대로 이루어질 성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적도 많았지만, 가끔은 흥행을 위해 분칠을 해야만 했던 자료들도 꽤 있었다.

첫 약속 못 지켜서, 아예 약속하지 않는 것은 불확실성을 더 키울 뿐

회사의 과거 성과와 실적들이 뒷받침될 때에는 크게 두드러지게 포장하지 않았어도 투자 반응은 호응을 이루었던 반면에, 고심고심을 거듭해서 멋진 말로 써놓더라도 별반응이 없던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땐 억울하기도 했다. 또 다가올 성과가 크고 확실한데도 예상과 달리 반응이 싸한 경우가 있어,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진정성을 담은 자료임에도 그에 대해 별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내가 실력이 부족했나 되짚어 본 적도 있었다.

다시 되돌아 보니 그게 아니었다. 당시엔 회사의 대부분의 조직들이 정상적이고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4개에 이르는 해외영업팀들은 미국, 중동, 호주, 동남아 등 춥고 덥고를 떠나 부지런히 세계를 누비고 다녔고,없는 이슈 애써 찾아 다니지 않아도 1억달러가 넘는 수주 자료를 수시로 보내주곤 했다. 연구 개발도 열심이어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선도적으로 제품을 개발해서 성공한 것들과 그 타깃 시장에 대해 발표하곤 했다. 당연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본업이 아닌 다른 여러 곳에 투자했던 많은 자산들의 가치가 증발해 버렸고,그로 인해 본업마저 위축이 되자 시장의 반응은 냉담해졌다. 5%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던 본연의 제조업에서 성과들이 이어졌을 때의 뜨거웠던 반응이었던 반면, 투자자들이 예상치 못했던 엉뚱한 곳에서의 자산 감소와 그로 인한 개선책에는 놀라우리만큼 차가웠다.위기가 닥치자 회사는 더욱 움츠러들어서 웬만한 것들은 입 밖으로 내지도 말자는 분위기가 됐다. 2-3조씩 매출을 올리지만, 회사 밖에서는 대체 안에서 무슨 꿍꿍이가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

해외출장 제한, 접대비나 개발비용 축소 등은 당장엔 비용이 줄어 마이너스를 줄이는 듯 보였지만,이듬해부터 수주 성과의 감소로 이어졌다.어렵사리 이루어진 고객과의 협상에서도 수익성을 고려해 공격적인 입찰은 주저할 수 밖에 없었고, 경쟁사에서는 반복되는 고성능 제품 발표에도 엔지니어들은 예전에 하던 것들이나 만지작거릴 수 밖에 없었다. 주주나 투자자들은 투명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알지도 못했던 이상한 손실에 타격 받지 않도록 예상 범주를 요구하곤 했다. 하지만 사실 회사 내에서도 내일 무슨 일이 터질 지 감이 잡히지도 않는데, 몇 달 뒤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자체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고, 초기 상황 판단은 부적절했으며 그 후속 조치들은 회사를 더욱 옥죄어만 갔다. 처음 몇 가지 프로젝트만 제대로 풀렸어도 숨통이 제대로 틔었을 테지만, 문제는 금융 위기가 우리 회사에만 터진 게 아니라, 당시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했던 상대 기업 역시 영향권 하에 있었기에 타이밍, 가격, 대상자 등등 모든 것들이 조금씩 어그러졌다. 그 뒤론 회사 수뇌부 회의는 더더욱 회사 깊숙하고 내밀한 밀실에서 이뤄졌고, 그 어떤 약속도 입 밖으로 내기를 꺼려했다.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키워가고만 있었던 것이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가끔은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도 생기는 법이다. 그럴 때 기대고 싶은 사람은 게으르지만 머리 좋은 놈이 아니라, 한결 같이 꾸준히 자신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회사나 조직도 마찬가지여서 연기금 같은 대규모 기관이나 주머니 쌈짓돈을 쥐고 있는 동네 아저씨 할 것 없이 원하는 곳은 ‘어쩌다 대박’이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조금 더 괜찮은 내일이 보이는 곳이다. 반복이지만 ‘보이는 곳’이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20.03.10  13: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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