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이 28일 공식 사과문을 통해 과거 미래전략실이 임직원들의 시민단체 기부금 후원내역을 무단으로 열람한 것과 관련해 임직원들과 해당 시민단체, 그리고 관계자들에게 사과했다. 삼성그룹이 존재하던 시절, 7년 전 미래전략실의 과오를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첫 성과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실제로 삼성준법위는 지난 13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임직원 기부금 후원내역 무단열람 건'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를 촉구한 바 있다. 이후 삼성의 사과가 나온 셈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과정을 둘러싸고 재판이 벌어지는 가운데 출범한 삼성준법위를 두고 “진정한 변화의 시도”와 “법적 책임을 피하려는 요식행위”라는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번 사례는 전자에 힘을 더 실어줄 전망이다.

임직원 후원 시민단체 열람?

삼성이 이번에 사과한 시민단체 후원내역 무단열람은 ‘무노조 경영 기조’와 관련이 있다. <한겨레> 보도와 재계 취재 결과를 종합한 결과 삼성은 노동조합 설립을 막아내기 위해 이와 관련된 광범위한 정보수집에 나섰고, 특히 노조 설립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직원들을 색출하는 것에 집중한 바 있다.

인사관련 부서에서 직장인 익명 SNS인 블라인드나 자체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 직원들이 교환한 메일까지 살펴보며 아주 작은 노조 설립 가능성도 집중적으로 사찰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를 설립할 가능성이 높은 소위 ‘요주의 인물’이 어떤 시민단체에 후원하고 있는지 살펴본 것이 문제가 됐다. 삼성은 극우단체가 지목한 좌파 시민단체 명단에 후원한 직원들을 색출하기 위해 관련 후원내역을 무단열람했다.

삼성은 이를 두고 “임직원들이 후원한 10개 시민단체를 '불온단체'로 규정하고 후원 내역을 동의 없이 열람한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명백한 잘못이었음을 인정한다”며 “우리 사회와의 소통이 부족해 오해와 불신이 쌓였던 것도 이번 일을 빚게 한 큰 원인이 되었다는 점 또한 뼈저리게 느끼며, 깊이 반성한다. 임직원과 시민단체 및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삼성준법위 제대로 가동된다

현재 이재용 부회장은 승계과정에서의 불법청탁 등의 혐의로 법원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준법위가 발족하자 외부에서는 그 진정성을 의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특히 재판부가 사실상 제안을 하고 삼성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연출된 것은, 결국 ‘정상참작을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삼성준법위의 위원장인 김지형 전 대법관은 진보성향의 법조인이며 2016년 구의역 사고와 2018년 김용균씨 사망사건의 진상을 파헤친 인물이다. 그는 이 부회장에게 독립적인 권한을 받았으며, 2차 회의를 통해 조만간 중점 검토 과제를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라는 점도 밝혔다. 삼성준법위의 인물 구성으로만 보면 ‘단순 면피성’으로만 보기에는 그 의지나 행보 자체가 남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무엇보다 임직원 후원 시민단체 무단열람이라는, 7년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서 자행된 일을 삼성준법위 권고에 따라 삼성이 사과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는 삼성준법위의 행보가 삼성 내부에서 힘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뜻이며, 결국 삼성준법위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는 평가다. 심지어 임직원 후원 시민단체 무단열람은 이미 재판을 통해 관련자들이 처벌까지 받은 상태다. 그럼에도 논란이 되자 삼성준법위가 나섰고, 삼성이 이에 따른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뭔가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은 확실하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