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자유기업원장
·숭실대학교 법학박사
·(전)규제개혁위원회 위원

많은 사람들이 당장의 쾌락을 위해 미래의 고통을 가볍게 여긴다. 하지만 미래는 반드시 오게 돼있다. 무책임한 행동은 머지않아 고통을 안겨준다. 그래서 선조들은 다음과 같은 속담을 만들었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 먹는다.” 포퓰리즘도 같은 맥락에 서있다. '포퓰리즘'이란 당장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나라의 장래를 위해 해로운 정책까지 공약으로 내거는 정치인들의 행동을 말한다. 총선을 앞두고 발표되는 각 정당의 복지공약들 중에는 그런 것들이 많다.

베풀어주는 것이야 좋다. 문제는 재원이다. 무슨 돈으로 이것을 다 충당한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부자증세만 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너무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하다. 부자가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모든 세금을 그들이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한번 보자. 1%대 99%의 대결구도가 유행이니 최상위 1%가 어느 정도나 세금을 부담하는지 살펴보자. 소득세의 경우 최상위 1%가 전체 세입의 45%를 낸다. 미국의 36%보다 훨씬 많다. 재경부 세제실장의 인터뷰에서 나온 수치다. 국세통계연보를 기준으로 한다면 자영업자의 상위 7%가 종합소득세의 85%를, 근로소득자 상위 12%가 전체 근로소득세의 85%를 각각 내고 있다.

반면 전체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의 40%는 아예 소득세를 안낸다. 이미 부자들은 충분히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는 말이다. 부자증세의 여지가 크지 않다는 말이다. 버핏세라는 것으로 거둘 수 있는 금액은 겨우 8000억원 정도다. 최소 40조가 들어가는 복지재원에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복지를 제대로 하려면 중산층이나 지금 세금을 안내는 사람들에 대한 증세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말은 안하고 복지만 늘리겠다고 한다. 그러니 누가 포퓰리즘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재벌 때리기 역시 포퓰리즘적 색채가 강하다. 다윗이 되어 거인 골리앗을 혼내주는 일은 누구에게나 신난다. 자기 대신 그런 일을 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당연히 응원하게 된다. 하지만 재벌은 우리의 생각처럼 나쁜 골리앗이 아니다. 정치권 일각의 주장대로 재벌을 해체한다고 해보자. 누구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분리되는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투자자, 심지어는 중소기업인 협력업체의 임직원도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계열에서 분리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릴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지금 하는 일은 마치 외상소를 잡아먹듯 미래의 투자와 일자리는 아랑곳없이 다윗의 골리앗 때리기 놀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계열사의 증가는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이다. 누구나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어하지 않는가. 계열사가 증가한다는 것은 대기업의 일자리가 증가함을 뜻한다. 금감위원장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7년말부터 2010년말까지 3년간 36대그룹의 고용은 84만명에서 100만명으로 2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체 고용증가율은 2%에 불과했다. 대기업 일자리 증가는 투자 때문이며, 그 투자 중의 상당 부분은 계열사 증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일자리는 만들라고 하면서 동시에 계열사는 늘리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다. 물론 재벌도 잘못하는 것이 많다. 특히 법을 위반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고, 철저하게 법대로 집행해야 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투자의 결과인 계열사 증가까지 막겠다는 것은 감정에만 호소하는 포퓰리즘이 아닐 수 없다.

제대로 된 정책이라면 그 결과가 무엇일지에 대해서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나오는 공약들에는 그런 고심의 흔적이 드물다. 이제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포퓰리즘 공약이 그만 나오길 바란다.

최원영 기자 uni3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