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쿠터 렌탈 스타트업 라임(Lime)은 지난 1월, 12개 도시에서 직원을 해고하고 영업을 중단했다.    출처= Dixplor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기술 스타트업들은 사람들을 제 때에 고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스타트업들로부터 해고가 이어지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을 개발하는 도전 정신과 그에 대한 투자 열기도 수그러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이른 바 로봇 피자 회사로 주목을 받았던 줌(Zume)과 승차공유 회사 겟어라운드(Getaround)는 지난 달 500명 이상을 해고했다. 또 DNA 테스트 회사 투엔티쓰리앤미(23andMe), 물류 스타트업 플렉스포트(Flexport), 오픈소스 웹 브라우저 파이어폭스(Firefox)를 만든 모질라(Mozilla), 질의응답 웹사이트 쿼라(Quora)도 자체적으로 인력을 삭감했다.

뉴욕의 벤처캐피털 회사인 럭스캐피탈(Lux Capital)의 조시 울프는 "이제 심판의 시대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차량호출 회사 우버, 숙박공유 회사 에어비앤비, 그 외 기존 산업의 타파를 외치며 화려하게 등장한 잘 알려진 회사들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일자리 창출과 혁신의 엔진으로 여겨왔지만, 이 업계가 이제 변화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들은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 7630억 달러(930조원)의 투자 자금을 흡수하며 배달, 대마, 부동산, 소비자 산업 등에 대거 등장했다. 이들은 손실을 보면서까지 엄청난 자산과 인력에 거액을 쏟아 부으면서 경쟁사를 인수합병 했다.

그런데 이제 가장 과대포장된 분야가 정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NYT의 집계에 따르면 전세계 30개 이상의 스타트업들이 지난 4개월 동안 8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줄였다. 스타트업을 추적하는 전국벤처캐피털협회와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2019년 4분기 동안 미국에서 자금 조달에 나선 스타트업은 2215개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6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출처= PitchBook

변화의 조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온라인 매트리스를 팔면서 자신을 ‘수면업계의 나이키’라고 자처했던 캐스퍼 슬립(Casper Sleep)은 지난 6일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주저 앉았다. 한 때 붐을 일으켰던 전동스쿠터 회사 라임(Lime)은 일부 도시에서 철수했다. 전자상거래 스타트업 브랜드리스(Brandless), 게임앱 HQ 트리비아(HQ Trivia), 전자제품 제조사 에센셜 프로덕트(Essential Products) 같은 스타트업들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블룸버그 벤처투자사의 로이 바하트 투자자는 "이런 일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스타트업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면서 "언젠가 우리가 투자한 회사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소프트뱅크는 이달 초 비전 펀드를 통한 투자와 회사의 직접 투자가 2019년 마지막 분기에 20억 달러(2조 4000억원)의 손실을 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최근의 스타트업의 몰락이, 수익을 내지 못한 수백 개의 인터넷 기업들이 사라졌던 2000년대 초의 닷컴붕괴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벤처 캐피털 등 많은 투자자들은 여전히 투자해야 할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업을 대상으로 기술을 만들어 꾸준한 매출을 올리는 특정 유형의 스타트업들은 여전히 성황리에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그러나 비합리적일 정도의 낙관론이 넘치던 벤처캐피털 업계에 오늘날 회의론이 만연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업가들은 투자자들의 변심을 이야기하면서도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는 최근에 감원한 회사들의 명단이 나돌기도 한다.

라임의 브래드 바오 대표는 지난달 블로그에 12개 도시에서 사업을 철수한다는 글과 함께 “회사 운영의 1차 목표는 수익 창출”이라는 글을 올렸다.

시카고대학교 경영학과 스티븐 N. 카플란 교수는 "비경제적으로 돈을 쓰고 있던 기업들은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돈을 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근로자들도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약속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케이트 브래츠키어는 지난 12개월 동안 스타트업에서 두 번이나 해고됐다. 그는 1년 전, 수익을 내지 못하던 뉴욕의 디지털 미디어 스타트업 마이크(Mic)에서 해고되었다. 이후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에서 마케팅일을 하다가 최근 다시 해고되었다.

▲ 로봇 피자배달 서비스로 4억 달러 이상을 모금했던 줌(Zume)은 지난달 수백 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로봇 피자 제작을 중단했다.    출처= Steemit

일부 스타트업들은 로봇도 해고했다. 로봇 커피숍을 표방하며 1450만 달러(180억원)의 벤처 자금을 조달한 카페 X(Café X)는 지난달 샌프란시스코 시내 3개 매장을 폐쇄했다. 이 회사의 헨리 후 CEO는 "문 닫은 매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웠다"며 “현재 남아있는 공항의 두 개 매장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곧 반전될 것 같지는 않다. 벤처캐피털에서 3억 달러 이상을 모은 캐스퍼는 이달 초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급락했다. 이는 올해 상장될 것으로 예상되는 에어비앤비와 식품 배달 회사 도어대시(DoorDash)를 포함한 다른 유명 스타트업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두 회사 모두 손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장 급격한 변화는 대마업계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이 스타트업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캐나다와 우루과이 같은 나라들과 미국의 몇몇 주들이 대마 관련법을 완화하면서 열광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300개 이상의 대마초 회사들이 26억 달러(3조 2000억원)의 벤처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2019년 중반, 공식적으로 대마를 거래하는 회사들이 불법 스캔들로 잇따라 단속되면서 투자자들은 이 업계가 높은 수익을 내겠다는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을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대마 재배업체 칼리바(Caliva), 대마 배달 서비스 회사 이즈(Eaze), 또 다른 재배업체인 노칼 카나비스 (NorCal Cannabis) 같은 스타트업들은 최근 몇 달 동안 수백 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2018년 상장한 대마 재배업체 틸레이(Tilray)의 브렌던 케네디 CEO는 "많은 대마 기업들이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케네디 CEO는 “우리 회사도 이번 폭풍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지출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동 스쿠터 제작 스타트업 유니콘(Unicorn)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개인용 전동 스쿠터를 판매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 투자자들로부터 150만 달러(20억원)를 모금했지만 돈은 온라인 광고에 모두 들어갔고 스쿠너 350대의 주문을 받았을 뿐이라고 설립자 닉 에반스는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 12월, 더 이상 스쿠터를 생산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에반스는 결국 자신의 돈으로 일부 고객들에게 환불 해주었다.

그는 새로운 회사를 계획하고 있다. 무슨 회사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이라 하더라도 처음부터 수익을 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