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따라 골프장따라

‘궁예의 한’ 깃든 베어크리크

경기도 포천 베어크리크골프장(사진)은 몽베르와 마찬가지로 주변에 ‘궁예의 한’이 얽혀있다.
퇴계원IC를 통해 일동 방향으로 가다 현리를 막 지날 무렵 우측으로 줄지어 늘어선 산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특히 봉우리마다 기암괴석이 멋을 부리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우뚝 솟아있는 산이 유독 시선을 잡아 끈다. 화악산과 관악산, 감악산, 송악산과 함께 경기 5악에 속하는 운악(雲岳)산이다.
주봉이 망경대인데 운악산 중에서도 산세가 가장 수려한 봉우리로 꼽힌다. 조선 전기 4대 서예가 중 한 명이었던 양사언은 운악산을 “꽃 같은 봉우리가 높이 솟아 은하수에 닿았다”고 묘사했다. 옆으로 스치는 운악산을 잠시 감상하다 보면 곧바로 화현IC가 나오고 조금만 더 가면 베어크리크다.
라운드를 하다 동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오는 길에 봤던 운악산과 주봉인 망경대가 보인다. 산 중턱쯤을 자세히 살펴보면 양쪽 산줄기가 한군데로 모이면서 작은 계곡을 형성하고 거대한 암벽으로 이뤄진 폭포가 있다. 높이가 20m, 길이는 30m쯤 된다.
평소에는 물이 별로 없어 약간 붉은 빛을 띠지만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물보라로 인해 무지개가 걸린다. 일명 ‘무지개폭포’다. 한자로는 ‘무지개 홍(虹)’자를 써서 ‘홍폭’이라 부른다. 폭포물이 얼어붙은 겨울에는 빙벽 등반으로도 유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왕건의 군사에 쫓기던 궁예가 어느 날 상처를 입고 이 홍폭 아래서 상처를 씻어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바위도 그래서 붉은 빛이라 한다. 운악산에는 궁예 성터도 남아있다. 포천의 지명 중 울음산(명성산, 鳴聲山), 패주(敗走)골, 항서(降書)받골, 야전(野戰)골, 국망(國望)봉 등도 모두 궁예와 관련된 것들이다.
포천 지역에서 그만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음을 알려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궁예는 포악한 군주로 묘사되어 있지만 전설은 한결같이 그를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궁예에 관한 이미지가 왜곡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궁예의 ‘망국의 한’이 깃든 베어크리크에서 라운드할 때만이라도 하수에게 관대함을 베푸는 건 어떨까.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freegolf@asiae.co.kr)

강혁 편집국장 kh@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