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에쓰오일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지난해 말 정제마진이 반짝 개선되면서 기대감에 들떴던 정유업계가 코로나19 사태로 시름에 빠졌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휘발유와 항공유 등 국내 석유 소비는 물론이고, 최대 소비국인 중국에 대한 수출 물량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우려돼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상반기 부진 탈출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유가, 50달러선 붕괴·석유 수요↓…정유업계 ‘발동동’

2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2.3%(1.17달러) 내린 배럴당 48.7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로써 WTI는 3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보이면서 배럴당 50달러 선이 붕괴됐다. WTI는 앞서 24일과 25일 각각 3.7%, 3.0% 하락했다. 올 들어 최저치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4월물 브렌트유도 전날보다 배럴당 2.77%(1.52달러) 하락한 53.43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위험자산으로 꼽히는 원유 투자 심리가 위축된 영향이다. 국제기구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원유 수요가 급감할 것이라 보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12일(현지시간) 낸 월례 전망보고서를 통해 올해 1분기 전 세계 석유 수요 증가량을 기존 전망치의 3분의 1정도인 하루 평균 44만 배럴로 낮춰잡았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가한 탓에 전망치를 하향했다는 게 OPEC의 설명이다. OPEC은 코로나19의 영향이 올해 초반에 한정되지 않고 2020년 내내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이쯤 되면서 국내 정유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당초 올해 국제해사기구(IMO) 2020가 시행되면서 정유업계는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해운사들이 대기오염물질인 SO2 배출량을 낮추기 위해 저유황유 수요를 늘림에 따라 정유사들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돼서 였다. 

또한 올 들어 정제마진도 소폭 회복되면서 상황이 나아지는가 싶었다.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2월 첫째주 2.5달러를 기록한 이후 둘째주 4달러까지 올랐다. 그러나 셋째주 들어 소폭 하락한 3달러선에 머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요가 줄면서 국제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선 영향이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가격, 정제비용, 운임비 등 비용을 뺀 것으로 정유사들의 실적으로 직결된다. 통상 국내 정유업체 정제마진 손익분기점은 4~5달러 수준으로 추산된다.

▲ 11월 셋째 주부터 2월 셋째 주까지 정제마진 추이. 출처=이코노믹리뷰 이가영기자

정유업계, 자구책에도… “상반기 실적 어두울 것”

정유업계는 이 같은 효과 가시화되기 전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직격타를 맞게 됐다. 업계에서는 금번 코로나19 사태의 여파가 2003년 사스 사태보다 심각할 것이라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휘발유, 항공유 등 국내 석유 소비가 대폭 수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사스 유행이 절정에 달했던 2003년 3월 당시 석유제품 소비량은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 제품별 감소폭은 항공유가 24%로 가장 컸다. 그다음은 휘발유로 20% 감소했다. 경유도 7.6% 줄었다. 2009년 신종플루와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석유제품 소비량은 전년 대비 각각 2.6%, 3.2% 줄어든 바 있다. 

실제 최근 국내외 항공사들은 코로나19 여파로 노선을 감축하는 등 대응책을 내놓고 있어 항공유 수요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여기에 수출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공장 가동 중단 등으로 중국의 석유 소비도 급감하고 있어서다. 국내 정유사 수출 가운데 중국 비중은 약 20%로 추산된다. 국내 정유사들이 매출의 55~57%가 수출로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 석유 수요 감소에 따른 타격은 상당할 전망이다. 

우려가 커지면서 증권가에서는 정유업계의 상반기 실적을 대폭 낮춰 잡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 1위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한달전에 비해 64.7% 줄어든 1239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62.6% 감소한 수치다.

에쓰오일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에쓰오일의 올 1분기 영업익은 91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6.1% 줄어들 것으로 점쳐진다. 한달전과 비교하면 72.2%,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62.6% 줄어든 수준이다. 

이에 따라 정유업계는 고강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지난 20일 에쓰오일은 인력 운용 효율성 개선을 위해 50세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희망퇴직이 거론되는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에쓰오일은 정유업계가 대규모 적자를 낸 2014년에도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시행하지 않았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인위적인 인적 조정이 아니며 상황이 어려워져서 그런 것도 아니다. 지난해 초부터 검토를 해왔던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며 정해진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현대오일뱅크도 26일 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업계에서는 현금 유동성이 부족해진 현대오일뱅크가 회사채 조달을 통해 만기가 도래하는 기업어음 상환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3128억원으로 2018년 말 5777억원보다 크게 줄었고 잉여현금흐름도 –3579억원으로 2018말 –1895억원보다 크게 줄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석유 수요 둔화로 단기간 내 정제마진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면서 “여기에 국제 유가가 단기간 내 급락하면서 원유 재고 가치도 하락해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치산업 특성상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워 상반기 실적이 예상보다 더 크게 악화될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