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 한일 경제전쟁에 이어 코로나19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으나 삼성전자의 날카로운 전략적 행보는 현재 진행형이다. 실제로 파운드리 영역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며 5G 통신 장비 시장에서는 기민한 전략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그 행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백악관에서 4월 5G 서밋이 열린다. 출처=갈무리

화웨이와 유럽의 만남, 미국의 고민
미국 정부가 4월 초 백악관에서 5G 서밋을 열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삼성전자가 핀란드의 노키아와 스웨덴 에릭슨과 함께 초청될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실제로 CNBC는 "4월 초 백악관에서 5G 서밋을 연 가능성이 높다"면서 "다양한 기업들이 주의 깊게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화웨이 배제다. 미국은 5G 서밋을 준비하며 삼성전자를 포함한 다양한 기업을 불러들일 전망이나, 화웨이는 원천 배제하며 사실상 '반 화웨이' 전선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글로벌 5G 상황을 돌아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미중 무역합의 1단계가 마무리된 가운데 두 수퍼파워가 벌이던 신경전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으나, 미국 정부와 중국 화웨이의 난타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당장 캐나다에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미국 송환 여부를 가리는 재판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화웨이는 미국 통신사인 버라이즌에 특허기술 활용과 관련된 소송을 걸었으며, 미국 상원은 화웨이 5G 굴기를 막으려는 법안까지 발의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화웨이는 유럽과의 연합을 통해 위기를 넘으려 한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BBC 및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1월 28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국가안보회의(NSC)를 열어 5G 통신 네트워크 공급망에 관한 검토 결과를 확정했으며, 여기에 화웨이 장비가 들어간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 출처=화웨이

미국은 당혹스러워하는 눈치다.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속에서 최소한 중국의 기술굴기를 꺾으려 노력했으며, 특히 화웨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눌러야 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7일 미국과 영국 정부 당국자 멘트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존슨 총리와 화웨이 이야기를 나누며 미친 듯이 화를 냈다"고 보도할 정도다.

화웨이의 독주가 가능한 것은, 말 그대로 강력한 기술력과 확실한 시장 지배력 덕분이다. 글로벌 통신 장비 시장 점유율을 놓고 보면 이미 전세계의 약 1/3은 화웨이 장비를 통해 서비스를 받고 있으며, EU 집행위원회가 발간한 2019 산업 R&D 투자 스코어보드에 따르면 2018년 화웨이의 R&D 투자 규모는 세계 5위로127억 3960만 유로(약 16조 4393억 원)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화웨이 대응 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수렴된다. 하나는 자국 기업의 화웨이 장비 사용을 막는 한편 동맹국들의 화웨이 연합전선을 훼방놓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는 영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명확한 성과가 없다. 심지어 가능성 자체가 희박하다는 말이 나온다. 화웨이와 유럽 전체의 동맹이 공고히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이브러햄 류 유럽 화웨이 CEO는 지난 4일 "우리는 유럽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유럽에 공장을 건설할 것으로 이미 내부에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에서 회원국이 5G 장비 구축에 돌입할 때 적용해야 하는 가이드 라인을 발표한 직후다. 여기에는 강화되는 미국의 보호 무역주의에 대한 유럽의 반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이유로 두 번째 로드맵, 즉 '자강론'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1월 미 상원에서 화웨이 5G 굴기를 막고 자국 인터넷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펀드 조성 법안을 통과시킨 상태에서, 반 화웨이 전선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4일 WSJ와의 인터뷰에서 "에릭슨, 노키아와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윌리엄 바 미국 법무장관은 6일 미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아예 에릭슨 및 노키아와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금지원까지 염두에 두고 미국과 유럽 공동 통신 컨소시엄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미국 시장 발판 삼아라
글로벌 5G 시장에서 화웨이의 존재감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은 자강론에 집각해 반 화웨이 전선을 구축하려고 한다. 그 연장선에서 4월 5G 서밋을 열어 일종의 동맹군 포섭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가 미국 5위 이동통신사업자인 'US 셀룰러(US Cellular)'와 5G·4G 이동통신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23일 밝힌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4G 및 5G 장비를 제공하는 US 셀룰러는 미국 전역의 가입자에게 이동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미국 5대 이동통신사 중 하나며 이번 계약을 통해 높은 통신품질과 안정적인 실내외 커버리지를 바탕으로 가입자들에게 한 단계 높은 5G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US셀룰러에 장비를 공급하는 장면은, 단순한 장비 공급선 확대 이상의 의미가 있다. 미국이 반 화웨이 전선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우군 확보에 나섰으며, 이를 기점으로 삼성전자가 기민하게 북미 시장에 파고들고 있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US셀룰러와의 협력으로 미국에서 무려 80%의 커버리지를 가지게 됐다. 미국 5대 통신사 중 4개에 장비를 공급하며 4G는 물론 5G 장비 공급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게 된 셈이다.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 김우준 부사장은 "미국의 여러 이동통신 네트워크에서 삼성전자 5G 솔루션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5G 혁신과 리더십, 새로운 통신 기술 개발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겠다" 라고 말했다.

US 셀룰러 CTO 마이크 이리자리(Mike Irizarry) 부사장은 "삼성전자와 함께 혁신적인 5G·4G 기술과 이를 통한 서비스 경험의 향상과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제공해 나갈 것"이라며, "삼성전자와의 협력은 4G LTE 및 5G 서비스 확대와 5G 혁신을 가속화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삼성전자 화성 공정. 출처=삼성전자

파운드리 전략도 새롭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반 화웨이 전선에 동참하며, 선진시장인 미국을 중심으로 외연 확대의 기회를 절묘하게 잡았다. 이러한 기민한 전략은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엿보인다.

퀄컴이 3세대 5G 모뎀인 스냅드래곤 X60 5G 모뎀-RF 시스템(X60)을 공개한 가운데, 일부 물량을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서 소화하도록 결정된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사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으나 여전히 TSMC의 벽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랜스포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의 TSMC는 무려 52.7%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17.8%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퀄컴의 차세대 5G 모뎀칩 수주 계약을 따낸 배경에 시선이 집중된다. 여기에는 퀄컴이 중화권 기업(대만)인 TSMC에 모든 물량을 밀어주지 않으려는 의지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높은 역량이 고려됐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 있다. 바로 엑시노스의 일시적인 포기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내수용에는 자사의 엑시노스를, 외수용에는 스냅드래곤을 탑재한 바 있으나 갤럭시S20에는 모든 기기에 스냅드래곤을 탑재했다. 여기에는 스냅드래곤의 기술력이 엑시노스를 상회한다는 현실인식과 더불어, 최신 스마트폰에 퀄컴의 라인업만 채워 ‘다음 물량’을 소화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가 향후 시스템 반도체 전략에서 모바일AP 보다는 파운드리 자체에 더 집중할 것이며, 이를 기점으로 파운드리 물량을 늘려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라는 전망에 설득력을 더한다. 일각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분사설이 끊임없이 나오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기민한 선택과 집중으로 차근차근 포인트를 올리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