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오스카상 네 부문을 석권했다.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않은 쾌거라고 한다. 기쁜 소식을 뉴스 기사 좌표로 퍼나르던 단체 카톡방에 누군가가 바로 그 영화의 불법 영화다운로드 좌표를 올린다. 아카데미상 수상을 생각하며 보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열정과 노력으로 빛나는 성과를 이루어낸 사람들의 뒤통수치는 이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뜨끔한 독자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지양했으면 한다. 불법성의 경중 여부를 떠나서, 몇 천 원 득보는 걸 재미 정도로 생각하는 순간 인품에는 상처가 나는 것 아닐까?

몇 년 전 필자를 찾아와 돌출입수술을 하고 싶다며 유난히 겸연쩍어하던 남자에게 돌출입수술을 왜 하려고 하는지 물었다. 수술을 원하는 사람이 오면, 성형외과 전문의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수술해주면 그만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필자는 비교적 상세히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 직업이나 수술하려는 동기, 결혼 여부 등을 아는 것도 수술하는 데 있어서 간접적인 도움이 되고, 그 혜택은 환자에게 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연예인 지망생인 25세 여성과, 시부모와 함께 살고 갓난 아기를 키우는 25세 여성의 돌출입수술, 윤곽수술은 미세하게 다를 수 있다. 물론, 환자가 원하는 취향을 먼저 고려한다.

돌출입수술을 하려는 동기를 물은 그 남자환자의 대답은 이랬다.

-아, 그게. 뭘 좀 못 해 보여야 되는데 너무 잘 해 보여서...그렇습니다...

-네?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단 돌출입이어서 뭔가를 더 잘해보이게 된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을뿐더러, 설령 그렇다고 치더라도 뭐든 잘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좋은 일 아닌가?

20년간 돌출입수술과 안면윤곽수술을 하면서 만난 수많은 직업들이 있다. 학생, 취준생, 회사원, 그리고 주부인 경우가 제일 많았고, 의사, 치과의사, 구강외과(악안면외과;치과의 한 분야)의사, 간호사, 판검사, 변호사, 사법연수원생, 회계사, 변리사, 교수, 교사, 학원 강사, 현직 경찰, 직업군인, 소방/행정 공무원, 중소기업 경영자 등 참 다양한 직업군의 환자를 수술해왔다. 특히, 필자와 대학이나 병원 동문이 아닌 성형외과전공의, 성형외과 전문의, 그리고 구강외과 의사에게 돌출입수술을 해주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또, 배우, 뮤지컬배우, 연극배우, 가수, 보컬트레이너, 연예인 지망생, 승무원, 캐디, 운동선수, 악기 전공자, 음악학원장, 음식점/까페 사장, 헤어/의류/웹 디자이너, 보험설계사, 부동산 중개인, 트랜스젠더 바 댄서, 유흥업소 종사자, 프리랜서 등등 필자가 수술했던 환자의 직업을 모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돌출입이나 광대뼈, 사각턱의 돌출은 어느 직군에서나 존재하는 게 당연했다.

필자와의 상담과 검사까지 모두 마치고 돌출입 수술 날짜를 잡은 그 남자환자는 결국 그날 필자에게 직업도 수술 동기도 밝히지 않았다. 사실 필자가 묻는 말에 환자가 반드시 대답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건 아니고 환자의 사생활이니, 더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었다. 말 못 할 무언가가 있는 건지 사실 궁금하기는 했다. 수술날짜가 되었고, 여느 때처럼 최선을 다해 돌출입수술을 해주었다.

돌출입수술 후 두 달쯤에 환자가 웃는 낯으로 병원에 왔다. 처음 필자를 찾아왔을 때의 점퍼 차림이 아니라, 말쑥한 정장 차림이었다. 필자가 그를 몰라볼 뻔했다.

그제서야 환자의 입을 통해,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그 날도 역시 겸연쩍어하며 환자가 한 말을 종합해보면, 결국 그 환자는 ‘타짜’였다. 즉, 도박판, 아마도 포커판에서 주최측(?) 선수로 뛰는 포커플레이어였다.

그가 처음 했던 말, 즉, 뭘 좀 못해보여야 되는데 너무 잘해보여서 수술하고 싶다라는 말은 결국 이것이었다. 철없이(?) 도박판에 들어온 아마추어들과 둘러앉아 포커를 칠 때, 그 환자는 아마도 초반에 좀 돈을 잃어주다가 막판에 기술적으로 판돈을 다 회수하는 주최 측에서 고용한 ‘선수’다. 그 역시 말끔한 차림에 돈 좀 있고 순진한 아마추어로 보여야 하는데, 아무리 정장을 입고 포커판에 앉아도 돌출입 때문에 주는 인상이 뭔가 험악하고 강해 보여서, ‘너무 잘해보이는‘ 직업 포커 선수로 의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원작 만화를 최동훈 감독이 영화화해 조승우, 김혜수, 백윤식, 유해진, 김윤석, 김응수, 김상호등 주, 조연을 가리지 않는 선 굵은 연기로 빅히트를 친 영화 <타짜 2006>이 떠올랐다.  하긴, 그런 판들이 어디선가는 벌어지니 만화도 영화도 생겼을 게다.

그러나, 조금 거창하지만 의사는 사실 환자가 어떤 직업이든, 어떤 사생활을 가지고 있든 ‘치료’를 하는 것이 숙명이다. 이에 관해, 2003년 3월 11일자 연합뉴스 기사인 <쿠웨이트 북부 영국군 야전병원 취재기>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미국 주도의 대(對) 이라크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이라크와 접경한 쿠웨이트 북부 사막지대에 위치한 미국-영국군 야전병원(field hospital)의 손길이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중략)

이라크-쿠웨이트 국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 병원에는 현재 총 6개 병동에 97명의 영국 병사와 2명의 미국인 병사가 입원 중이다.

(중략)

병원 공보책임자인 케빈 그리핀 대령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에는 이라크 병사든, 이라크 민간인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개인에 대해 최선의 치료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비록 영군 군 야전병원이긴 하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적국 전투병이라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약속인 셈이다.’

요약하면, 영국군의 야전병원이지만, 적국인 이라크 병사, 이라크 민간인이 다쳐서 와도, 모든 개인에 대해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전쟁터의 야전병원 이야기를 가져다 붙이기는 필자도 좀 겸연쩍지만, 성형외과 전문의인 필자가 하는 성형수술도 의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며, 성소수자든, 불법성이 있는 어둠의 직업이든, 판검사든, 의사든, 군인이든, 학생이든, 환자를 차별 없이 진료하고, 그들 환자의 비밀을 의사로서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이 글도 누군가를 특정하지 않은 무기명이고, 시기적으로 공소시효도 지났으니 더 편히 쓸 수 있다.

당시 아내와 어린아이들, 즉 처자식이 있던 가장으로서의 환자에게, 그 어둠의 직업은 생계수단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도박판에 불나방처럼 걸려든 피해자도 있었을 것이다.

이후 그 환자는 광대뼈 수술을 하러 다시 필자를 찾았다. 아마, 돌출입수술로 포커판에서 효과를 보았던 것일 게다. 참고로, 돌출입수술로 입 부위의 부피감이 줄면, 광대뼈가 수술 전보다 약간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경향이 있다. 돌출입수술과 광대뼈수술의 궁합이 잘 맞는 이유다.

그냥 아는 형이 좀 도와달라고 해서 잠시 도와주는 것이라며 말끝을 흐리던 환자의 말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돌출입과 광대뼈로 인한 험상궂고 강한 인상이 그의 인생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일은 없을 것이다.

봄 햇살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그가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 모두가 행복한 일을 하고 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