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노삼성자동차가 오는 3월 9일 출시하는 중형 SUV XM3. 출처= 르노삼성자동차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르노삼성자동차가 ‘태풍의 눈’ 엠블럼을 사업 전략에서 배제한 것을 두고 사명에서 ‘삼성’을 지움으로써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르노삼성차가 최근 부진한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르노 화(化)’를 새로운 카드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르노삼성차와 삼성물산이 현재 유지하고 있는 ‘삼성’ 상표(브랜드) 사용 계약은 오는 8월 4일 만료된다. 삼성물산은 브랜드 사용권을 가지고 있는 삼성그룹 계열사다.

르노삼성차는 앞서 지난 2000년 8월 5일 프랑스 완성차 분야 기업집단 르노그룹이 삼성그룹에서 설립한 삼성자동차를 인수함으로써 탄생했다. 당시 르노그룹과 삼성카드가 르노삼성차 지분을 각각 80.04%, 19.90%씩 보유하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0.06%는 르노삼성차 임직원들로 구성된 우리사주조합이 취득했다.

르노삼성차는 브랜드 이용 계약을 10년 단위로 체결함에 따라 지난 2010년 7월 3일 만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내 일류 기업집단인 삼성그룹의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는 것이 르노삼성차의 시장 입지를 확보하는데 유리할 것으로 판단해 계약을 갱신했다.

업계에서는 르노삼성차가 브랜드 사용 계약을 두 번 갱신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르노삼성차가 브랜드 사용 계약 만료일을 앞두고 삼성보단 ‘르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서다.

22일 현재 르노삼성자동차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중형 세단 SM6와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M6, 준중형 전기차 세단 SM3 Z.E 등 3종만 판매모델로 소개되고 있다. 르노삼성차는 작년부터 기존 내연기관 세단 라인업인 SM3, SM5, SM7 등 3종의 생산을 순차적으로 중단했다.

또 같은 해 12월에는 스페인 르노 공장에서 수입해오는 소형 SUV QM3의 판매를 중단했다. 올해 르노 엠블럼을 단 완전변경 2세대 모델 ‘캡처’를 수입하기 앞서 내린 조치다. 르노삼성차는 오는 3월 9일 출시할 국산 중형 SUV XM3에도 르노 엠블럼을 장착한다.

르노삼성차는 현재 삼성 브랜드 사용 계약 연장 여부에 관한 언급을 삼가고 있다.

르노삼성의 ‘르노화’는 부산공장을 중심으로 불거진 노사 불화, 파업, 판매실적 등 부정적 요인으로 떨어진 브랜드 위상을 끌어올리는데 도움될 것이란 게 업계 관측이다. 

르노삼성은 현재 기본급 인상 여부 등 사안에 대한 입장차로 인해 작년 임금 및 단체교섭 협상을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르노삼성차의 내수 판매실적은 8만6859대로 2016년 (11만1101대)를 기점으로 3년 연속 하락폭을 나타냈다.

각종 잡음으로 부산공장의 XM3 생산에 악영향이 끼칠 우려가 발생함에 따라 르노그룹의 호세 비센테 데 로스 모소스 부회장이 지난달 방한하기도 했다. 모소스 부회장은 노조 파업이 지속되는 등 노사 불협화음이 이어질 경우 부산공장에 대한 XM3 감산 조치를 단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 등 글로벌 주요 외신들이 해당 사실을 보도했고,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르노삼성차의 경영상 불확실성으로 인한 상품·서비스 경쟁력 약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르노삼성차의 브랜드 이미지가 전세계적으로 실추되고 있는 실정이다.

르노삼성차는 최근 르노 브랜드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가 상승한 점에 편승해 브랜드 쇄신 전략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부 르노삼성차 고객들은 이미 5년 전부터 SM 시리즈 차량의 전면부 그릴이나 스티어링 휠 클락션 등에 붙은 태풍의 눈 엠블럼을 모두 르노의 마름모(로장주) 엠블럼으로 교체했다. 로장주 엠블럼이 자아내는 이국 브랜드로서 감성을 자차에 적용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한 때 일부 르노삼성차 직영점이 로장주 엠블럼 등 르노 요소에 대한 소비자 수요를 고려해 본사 협의 없이 순정 태풍의눈 엠블럼을 로장주 엠블럼으로 교체해주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최근 소비자들이 고유 개성을 갖추기 위해 수입차에 관심을 보이는 추세가 나타나는 점도 르노삼성차의 브랜드 전략에 호재로 꼽힌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국내 시장에 들어오는 국가별 수입차 신규등록 점유율 가운데 프랑스는 1~2%대를 유지하고 있다. 작년 기준 독일(60.0%), 일본(15.0%) 등 국가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르노삼성차는 다만 부산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을 바로 내수 시장에 판매할 수 있고 수입차 업체 대비 폭넓은 영업·서비스망을 갖췄다. 가격, 서비스 등 분야에서 수입차 업체 대비 경쟁 우위를 점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르노삼성차가 브랜드 사용 계약 만료 이후 삼성 브랜드를 사용할 지 여부와 관계없이, 현 브랜드 쇄신 전략이 조건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모든 완성차 업체들이 침체된 자동차 시장에 대응할 묘안을 찾기 어려운 가운데, 르노삼성차가 차별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박재용 이화여대 미래사회공학부 연구교수는 “르노삼성차가 르노 브랜드 색깔을 전격 도입한다고 해도 실적을 획기적으로 늘리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현대차·기아차를 제외한 나머지 국산차 업체나 프리미엄 라인업의 수입차와 파이를 두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박 교수는 “르노삼성차는 그럼에도 현재 전략 기조를 유지하는 것보단 브랜드 쇄신을 추진하는 게 이로울 것”이라며 “최근 수입차 브랜드에 대한 수요 증가세를 국산차 업체로서 인프라와 상품성으로 잘 공략할 수 있다면 실적을 개선하고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 XM3 사전 공개 영상. 르노삼성자동차는 사전 공개 영상의 설명글에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출처= 르노삼성자동차 공식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