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호갑사 이필신> 이성민, 나무와열매 펴냄

 

 

[이코노믹리뷰=성시현 기자] 한국인이 호랑이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을 갖는 것은 신화와 속담의 영향이 크다. 고조선 건국신화에서, 금기를 지키지 못해 인간으로 변신하지 못한 호랑이에서부터, ‘삼국유사’의 후백제 견훤의 유아기 수유 전설까지, 호랑이는 항상 인간 주변을 떠나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한반도에 호랑이가 많았던 것은 먹이사슬이 튼튼한 산악지대가 국토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독특한 지형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호랑이 멸종은 일본이 자행했다. 일본의 제1차 침략 임진왜란(1592~1597)과 제2차 침략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은 의도적으로 한국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일본은 한국 호랑이가 조선 정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서 멸절에 나선 것이다.

임진왜란 직전, 선조의 어명을 받들어 전주에 있는 사고의 보관 문서를 점검하던 이주찬은 충남 금산에서 전북 무주로 넘어가는 성치산 고개에서 호랑이를 만난다. 해발 670미터로 낮은 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호랑이를 만난 것은 당시 한반도에 얼마나 많은 호랑이가 존재했는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증거이다. 일행 5명과 함께 호랑이를 만났는데, 호랑이에 대한 어설픈 공격으로 인해 2명은 현장에서 급사를 했고, 이주찬은 어깨를 호랑이에게 물리는 심한 상처를 입는다. 호랑이의 공격 뒤에, 이주찬 일행은 지역 경계를 넘나드는 장사치들에게 발견되어 이송되었지만, 3개월의 투병 끝에 결국 타계한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과거를 포기한 이필신은 녹봉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갑사를 자원하는데, 그 이유는 갑사의 임무 가운데 민생에 방해가 되는 호랑이를 잡는 일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선친 이주찬의 원수를 갚는 길이기도 했다. 이필신은 그렇게 해서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직전 갑사가 된다. 그리고 선친의 원수 백호 사냥에 나선다.

7년간의 임진, 정유왜란에 이어, 35년의 일제 강점 동안, 일본은 조선 땅에서 수천 마리의 야생동물이 포획했고, 한국 호랑이를 비롯한 몇몇 종은 절멸 단계에 이르렀다. 일제 강점기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야생동물들이 아예 자취를 감춘 것이다. 일제 강점이 가져온 비극이다.

한반도 수호신으로 존중받던 백수의 제왕 한국 호랑이는 호돌이와 수호랑으로 그려질 만큼 한국인이 사랑하는 동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한반도 자연환경에 서식하는 순수 한국 호랑이 개체를 볼 수 없는 지경이다. 이 책은 이러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글에 녹여 많은 사료를 토대로 쓴 소설이다. 착호갑사 이필신은 호랑이를 소재로 한 보기 드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