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이 드디어 해냈다. 봉준호 감독에 대한 기대는 그의 첫번째 천만관객 영화였던 '괴물'에서부터 있어왔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로컬' 영화제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외국어영화상이라는 4개의 오스카를 획득한 것이다.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이번 '기생충'의 쾌거와 함께 봉준호 감독, 그의 통역인 샤론 최, 그리고 공동으로 각본을 썼던 한정원 작가라는 사람에 대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소셜상에서는 샤론 최의 유창한 통역실력이 큰 이슈가 되고 있지만, 나는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을 만큼의 강렬한 시놉시스를 완성시킨 한정원 작가에게 주목해 본다.

 

파트너의 수준이 곧 결과물의 수준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봉테일'이라고 불릴 만큼 까다롭고 디테일에 집착하는 봉준호 감독과 함께 각본을 썼다? 이 양반 다 내려놓고 봉감독이 시키는대로 썼나?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서브로 표현될 것이지 '공동 각본자'로 등재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조연 캐스팅 한명을 하는데도 완벽을 추구하는 봉준호 감독이 영화 전체의 각본을 쓰는데 파트너를 아무나 선택했을리 만무할 것이다. 한정원 작가는 이미 연출부, 시나리오부를 오가며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영화인이다. 그가 홀로 작업한 작품만도 수십편이다. 대사 한마디, 연출 한꼭지가 생명과도 같은 영화판에서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고 두 사람은 결국 '기생충'이라는 걸작을 창조해냈다.

 

당신은 어떤 파트너인가?

시대가 복잡해지면서 파트너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직장내 거의 모든 업무에서 협업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의 수준이 나의 업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다보니 넷플릭스의 경우 뛰어난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을 최고의 복지라고 생각하고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는데 사활을 건다. 그리고 업계 최고의 연봉을 제시한다. 그외에 일체의 복지는 없다. 사람이 전부고, 사람의 힘을 믿는 것이다. '사람이 이 모든 과정의 시작이고 끝'이라는 신영복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우리 주위에서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어떠한가? 일의 핵심을 이해하는가? 협업의 목표를 알고 있는가?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나? 얼굴이 찌푸려진다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똑같이 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은 어떤 파트너인가?

 

홀로 서는 힘을 가진 자가 주목받는다

협업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이 '협업은 페어하다'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협업은 절대 페어하지 않다. 오히려 양자의 사회적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냉정한 시험대이다. 두 사람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는 경우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로드맵과 타임라인을 정하지만, 절대 같은 양의 일을 동일하게 나누게 되진 않는다. 권력을 덜 가진 쪽이 다른 쪽을 위해 조금 더 자신의 자원(에너지, 시간)을 투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 글로벌대표인 이브 모리유는 이를 두고 '조정비용'이라고 한다. 즉, 프로젝트에서 더 큰 영향력(높은 전문성, 이해도, 경험 등)을 가진 자가 다른 자보다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우월적 지위를 점하며 양자간 협업의 구분선을 긋는 데 있어 양보(조정)의 정도가 적다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껏 협업을 해오면서도 당신만 더 많이 일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반대로 보면 낮은 영향력을 가진 약자임을 뜻한다. 업무량을 줄이기 위해서도 자신의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전문성을 가지고 타인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 바로 이것이 바로 '협업의 시대, 혼자 해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의 참뜻이다.

협업을 할 때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 있다. 일의 전체 그림을 그리고, 그 중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고 자기 영역에 있어서 온전히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함께 한다면 최소한 '쓸데없이 야근하진 않겠구나' 싶은 안도감이 든다. 헌데 이번은 파트너를 잘 만나서 다행이지만, 다음번은? 다른 프로젝트는?..

회사란 곳을 '결승점'이 아니라 인생의 '과정'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협업'이라는 선량해 보이는 단어에 숨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 소홀해져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노오력'은 위험하다. 염세적이 되기 딱 좋다. 먼저 내가 오롯이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다른 이의 주목을 받을 정도의 수준인지, 그리고 내가 흥미로워하고 있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전문가로 생각하는 영역은 무엇인가? 어떤 일이 발생하면 당신을 찾는가? 그리고 그 일을 해냈을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일 잘하기 위해 쏟는 노력만큼 자신에 대한 사색에도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는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인풋없이 아웃풋은 없으니 분명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전의 '노오력'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며, 장담하건대 언제부터인가 당신은 '노력하고 있다'가 아니라 '즐기고 있다'고 대답하고 있을 것이다. 닮고 싶은 매력적인 인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