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식회사 갑(甲)은 2011. 8. A에게 주식회사 갑(甲)을 건축주로 하는 건물(이하 이 사건 건물)의 신축공사를 맡겼고, A는 다시 B에게는 이 사건 건물에 대한 신축공사를 하도급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더 이상 이 사건 건물 신축공사를 이끌어갈 수 없게 된 A는 ‘이 사건 건물에 대한 공사대금은 건축주인 주식회사 갑(甲)으로부터 직접 받으라.’며 하도급자인 B에게 자신이 주식회사 갑(甲)으로부터 받기로 한 공사대금채권을 양도하였습니다. 한편 그 사이 이 사건 건물의 건축주는 주식회사 갑(甲)에서 주식회사 을(乙)로 변경되었습니다. 이후 이 사건 공사가 마무리된 시점에서 B는 A로부터 양도받은 채권을 근거로 주식회사 갑(甲)에게 공사대금을 자신에게 지급해 줄 것을 청구하였는데, 당시 주식회사 갑(甲)은 사실상 자력이 없어 B로서는 공사대금을 받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이에 B는 이번에는 주식회사 갑(甲)로부터 건축주 지위를 이전받은 주식회사 을(乙)에게 이 사건 공사대금을 지급해 줄 것을 청구하였습니다. 주식회사 갑(甲)과 주식회사 을(乙)은 법인등기부상 서로 다른 회사이기는 하였으나, 두 회사 모두 C라는 사람이 설립하여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었으므로 주식회사 갑(甲)이 지급하지 못한 이 사건 건물에 대한 공사대금은 주식회사 을(乙)이 대신하여 B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법 상 어떠한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주체, 즉 ‘사람’은 ‘자연인(제3조 이하)’과 ‘법인(제31조 이하)’에 한정됩니다. ‘자연인’이란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생물학적인 인간을 뜻하고, ‘법인’은 법률상의 규정에 의하여 성립되는 사람의 결합(사단)이나 재산(재단)을 의미하는데, 특별히 상법에서는 영리적인 목적으로 설립·운영되는 법인을 ‘회사’라고 합니다(제169조). 이처럼 ‘사람’, 즉 ‘자연인’과 ‘법인’은 모두 독립적인 권리·의무의 주체이기 때문에 앞서 살펴본 경우와 같이 C가 주식회사 갑(甲), 주식회사 을(乙)을 각 설립하였다 하더라도 C는 주식회사 갑(甲)이나 을(乙)과 동일시 할 수 없으며, 주식회사 갑(甲)과 을(乙) 역시 서로 별개의 존재로 보는 것이 법리적으로 맞습니다. 재산적인 측면에서도 C, 주식회사 갑(甲), 주식회사 을(乙)의 재산은 모두 제각각 별개로 서로 독립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가령 B가 주식회사 갑(甲)에게 위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주식회사 을(乙) 또는 C가 대신 이를 B에게 지급할 의무는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예외적으로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는 등의 방법으로 기존에 존재했던 다른 사람 또는 법인의 채무를 면탈하려는 이른바 ‘법인격남용’에 대해서는 ‘법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 기존에 채무를 부담하던 다른 사람이나 법인이 그 채무를 부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외형상으로는 법인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법인의 형태를 빌리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고 실질적으로는 그 법인의 배후에 있는 사람의 개인기업에 불과하거나 그것이 배후자에 대한 법률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비록 외견상으로는 회사의 행위라 할지라도 회사와 그 배후자가 별개의 인격체임을 내세워 회사에게만 그로 인한 법적 효과가 귀속됨을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7다90982판결 선고 참조). 이 사건의 경우에도 대법원은 주식회사 을(乙)이 이 사건 건물의 건축주 지위를 양수할 무렵 별다른 자산이 없었으며, 주식회사 갑(甲)과 마찬가지로 C가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는 점, 주식회사 을(乙)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식회사 갑(甲)이 빌려온 돈을 이용해 주식회사 갑(甲)의 건축주 지위를 이전받았다는 점 등에 비추어 실상 C가 주식회사 을(乙)을 이용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하였다고 보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같은 판결로 B는 주식회사 갑(甲)으로부터 받지 못한 채무를 주식회사 을(乙)로부터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법인격을 부인’하는 것은 ‘사람’을 ‘자연인’과 ‘법인’으로 나누고 각각을 독립된 별개의 주체로 보는 민법·상법상의 대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어서, 실무상으로는 매우 예외적으로만 인정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제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면, 향후 채무를 청구해야 하는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당사자가 법인격을 이용하여 채무를 면탈하기 이전에 미리 집행 가능한 채무자 명의의 재산을 파악해 놓거나 담보로서 보증보험을 받아놓는 등의 방법으로 사전에 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