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신진영 기자] 

분양현장에서 단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로는 ‘호재’를 꼽을 수 있다. ‘호재’는 시세 상승의 요인이 되는 조건을 뜻하는데, 부동산 시장에서는 바로 교통이 곧 ‘호재’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교통망이 개선되거나 개통되면 타 지역으로의 접근성이 확대되고 인구의 유입이 원활해지기 때문에 인근 부동산 가치가 수직 상승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교통 환경의 개선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서울 ‘강남’의 탄생부터 교통에 따른 개발 그리고 올해 개통되는 지하철과 GTX까지. 시장의 인식과 변화를 하나하나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부동산하면 우리나라에서 대표로 지목되는 1순위 지역이 있다. 바로 강남이다. 툭 하면 터져 나오는 정부 부동산 규제 대책의 최대 타깃인 이유도 있겠다. 여러 언론 보도나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에서 ‘강남’이란 단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부동산 투자 관련 카페에서 “강남 아파트 왜 사요?” 라는 질문이 달렸다. 이에 “샤넬, 롤렉스 같은 명품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 “살아보면 안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우리에게 강남은 하나의 로망이 됐다. 더군다나 정부의 관심이 클수록 강남의 인기는 날로 상승한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강남을 완성한 것은 현대적인 교통망 구축이라고 입을 모은다.

▲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 공사현장. 사진 = 이코노믹리뷰 신진영 기자

강남은 강북 인구 과밀화 해소 위해 개발됐다


서울 강남은 1960년대 강북에 몰려 있는 인구를 고르게 분산하고자 개발이 됐다. 당시 서울은 인구 과밀화 문제가 심각했다. 방방곡곡에서 일자리를 찾고자하는 사람들이 상경했는데 땅은 한정돼 있었다. 박정희 정부는 1960년대 후반 한쪽에만 쏠려 있는 인구 과밀화가 수도 방위 차원에 문제를 야기할 거라 생각했고 강남 개발이 시작됐다.

당시 영동(강남)은 미개발 지역으로 토지이용은 경작지 이외는 없었다. 교통 노선으로는 경부고속도로와 강북진입로인 버스노선만 있을 뿐 마을과 마을을 잇는 소로의 형태로 돼 있었다. 정부는 강북 인구 증가에 따라 인구 분산책과 제2도심이 필요했다.

1968년 ‘영동1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이 발표됐다. 영동지역, 지금의 강남을 1지구와 2지구로 나눠 60만 인구를 유치하는 이 사업은 1988년에 종료됐다. 이 사업으로 폭 50m 이상 간선도로와 삼릉로(50m), 영동대로(70m), 강남대로(50m)를 비롯해 올림픽 대로를 구성하는 강변 제방 도로 등이 건설됐는데, 격자형 가로망 형태로 도로를 만들어 ‘선진국 대도시 수준의 가로망 체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왼쪽)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오른쪽) 제3한강대교(현 한남대교) 준공.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국가기록원

본격적으로 강남이 중심 도시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 개통이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전국 일일 생활권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 큰 의미가 부여됐다. 1968년 개통한 경인고속도로가 서울과 인천을 연결했던 것과 달리 경부고속도로는 서울과 부산을 이었다. 서울 도심에서 경기권에 이어, 남부지역까지 갈 수 있는 ‘교통 핵심축’으로서 자리 잡게 됐다.

강남과 강북을 이어주는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강남은 빠르게 변화했다. 사실, 제3한강교는 북한의 재남침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한강 다리다. 군사적이고 국가 안보적인 목적으로 만든 이 다리로 강남의 가치가 크게 상승하게 된다. 1972년 잠실대교에 이어 1973년 영동대교, 1976년 천호대교, 1976년 잠수교, 1979년 성수대교, 1980년 성산대교, 1981년 원효대교, 1982년 반포대교, 마지막 1999년 12월 청담대교까지 완공됐다.

▲ 출처 = 국토연구원. 그래픽 = 이코노믹리뷰

도로가 개통되면서 강남은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매김했다. 강남의 땅값은 강북을 뛰어 넘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1963년 서울 중구 신당동의 땅값은 당시 기준 평당 3만원, 용산구 후암동은 2만원이었다. 이 당시 강남구 학동은 300원, 압구정동 400원, 신사동은 400원이었다. 그러다 1968년 영동1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고 경부고속도로가 착공했다. 중구 신당동은 10만원, 후암동은 7만원으로 올랐고 강남은 10배 이상이 올랐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자 강남 땅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강남구 학동이 6000원, 압구정동이 1만원, 신사동이 2만원이었다. 1979년에는 강남구 학동은 40만원, 압구정동은 35만원, 신사동은 40만원까지 폭등하기에 이른다.


강북의 발전 가른 요인 ‘교통’


종과 횡으로 놓은 격자형 간선도로, 여기에 아파트 단지들이 만들어졌다. 교통 환경이 강남과 강북의 발전에 큰 차이를 가져왔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강남은 당시 허허벌판이어서, 강북과 달리 도로망을 계획적으로 갖출 수 있었다”며 “강남은 강북과 달리 격자형, 현대 도시 교통망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강북과 강남의 도로망 차이. 출처 = 네이버 거리뷰

전문가들에 따르면, 강북은 해당 지역을 벗어나면 다시 순환될 수 있는 도로가 아니다. 그러나 강남은 '격자형 도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다시 주요 도심으로 들어올 수 있다. 안 교수는 “강북은 도심권 몇 군데를 제외하고 가다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도로가 많다”면서 “강북이 교통에 대한 장점이 강남보다 없기 때문에 집값도 떨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개통도 강남의 비약적인 발전에 한 몫 했다. 1980~1983년까지 서울 지하철 2호선은 4단계(성수~잠실, 을지로입구~성수, 을지로입구~서울대입구, 사당구간)에 걸쳐 순환 노선이 개통됐다. 이로써 강남은 서울 도심의 한 축으로서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됐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1977년 752만 명이었던 서울 인구가 지하철 2호선 완전 개통된 후 1985년 조사에서는 964만 명으로 늘었다.

▲ 출처 = 서울연구원. 그래픽 = 이코노믹리뷰

이후로 강북에서 강남으로 고르게 인구가 분포됐다. 강북과 강남의 인구 비율이 2배 차이가 났던 것이 8년 만에 비슷한 비율로 바뀌었다. 2호선을 중심으로 역세권 개발이 이뤄졌고, 1985년 10월 개통된 서울 지하철 3호선은 지축에서 출발해 구파발, 불광, 종로3가, 을지로3가, 충무로, 약수, 옥수 등 강북을 거쳐 동호대교를 건너 강남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압구정, 신사, 잠원, 교대, 남부터미널을 거쳐 양재가 종점이었다.

그 뒤로 지하철 3호선은 양재~수서역, 2010년에는 수서~오금역 노선까지 연장돼 현재 5호선과 연결됐다. 현재는 서울 지하철 3호선 구간 수서역에서 경기도 성남 고등지구와 판교~용인~수원으로 연장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지난 14일 ‘서울 3호선 연장 관련 선제 대응과 효율적 대안 마련을 위한 상생 협약’에서 은수미 성남시장은 서울 지하철 3호선 연장 계획에 대해 “서울 지하철 3호선 연장은 수도권 남부지역 교통난 해결에 이바지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GTX 구축, 산업경쟁력 제고 기여


또 다시 ‘강남의 교통 신화’가 나올까?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망이 구축되면 경기·인천 지역에서 전철 차내 시간 기준으로 30분 이내 서울역에 접근 가능한 인구는 현재 180만 명 수준에서 490만 명으로 급증하게 된다. 이러한 출·퇴근 통행시간 단축으로 노동생산성 향상과 산업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 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개통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현재는 경기 북부에서 남부로 가려면 서울을 통과해야 한다. 지금보다 수월한 교통을 위해서는 '지하화'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경기도 지역이어도 경기도 내에서 유기적인 교통망을 연결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GTX 개통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