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올해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취재 차 방문했을 당시 현지 ICT 플랫폼 기업인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최근의 모빌리티 이슈를 공유하는 한편 한인 엔지니어들이 궁금해하는 국내 시장 업계에 대해 이야기하던 상황에서, AB5 법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화두로 부상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날 미국에서 AB5 법안이 통과됐기 때문입니다.

AB5 법안은 기업이 노동자와 일할 때 이른바 ABC 테스트를 통과해야 독립 노동자, 즉 플랫폼 노동자로 인정하는 법안입니다. 쉽게 말해 우버의 경우 우버 드라이버와 계약한다고 가정한다면, 드라이버는 자기가 회사의 지나친 간섭과 명령체계에서 벗어나 있음을 ABC 테스트로 증명하고 계약을 맺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플랫폼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버와 리프트 및 플랫폼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는 온디맨드 기업들에게 AB5 법안은 다소 불리해 보입니다. AB5 법안 자체가 비정규직에 가까운 플랫폼 노동자를 사실상 배제하기 위해 마련된 법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버와 리프트는 AB5 법안의 시행을 막아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으며, 12일 기준 이는 기각됐으나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자의 '정의'
재미있는 대목은, AB5 법안 이야기가 나왔을 때 미국 현지에서 온디맨드 플랫폼 업무를 하는 이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이들은 AB5 법안이 우버와 리프트 등에 어느정도 타격이 있겠지만 '큰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당시 만났던 현지 기업인은 "AB5 법안은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를 정의하고 규정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대중적으로 AB5 법안은 긱 이코노미를 중심으로 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비정규직과 다름없는 지위에서 벗어나 정직원으로 나아가는 길을 마련한다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ABC 테스트를 통해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규정할 수 있습니다. 즉 AB5 법안의 ABC 테스트를 통해 플랫폼 노동자와 일반적인 정직원의 차이를 명확하게 만들고, 기업과 노동자들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길을 마련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AB5 법안은 온디맨드 플랫폼 기업, 즉 긱 이코노미 기업들에게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지금까지는 플랫폼 노동자의 정의가 불분명했으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논란이 터져나왔으나, 최소한 AB5 법안의 등장으로 '누가 플랫폼 노동자인지' 확인할 수 있고 나아가 '플랫폼 노동자와 정직원 중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별로 큰 이슈는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국내의 타다 이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쏘카 VCNC의 타다는 현행법의 예외조항에 따라 '합법'이라기 보다는 '불법이 아닌 상황'에서 시동을 걸어 큰 성공을 거뒀으나 행정부와 검찰의 집중압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법의 예외조항 적용이 상대적으로 '나이브'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논란이며, 이는 곧 명확한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는 당위성과 이어집니다.

사실상 정부가 무법의 지대로 방치한 암호화폐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견 사업자에게 불리할 수 있을 수 있으나 명확한 지침과 가이드 라인이 나온다면, 오히려 사업의 불확실성이 줄어들어 기업들은 더 힘있는 행보를 할 수 있습니다. AB5 법안은 이러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출처=배달의민족

커지는 시장, 커지는 논란
국내 플랫폼 노동자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온디맨드와 긱 이코노미로 무장한 O2O 시장은 팽창일로입니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4일 국내 O2O 시장 현황을 파악한 결과 관련 기업은 555개에 이르며 플랫폼 노동자는 52만1000여명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내 O2O 기업에서 플랫폼 노동자로 분류되는 외부 서비스 인력은 약 52만1000명으로 전체 인력의 97%며, 내부 고용 인력은 3%에 불과한 약 1만6000명에 불과합니다.

플랫폼 노동자의 숫자가 많아지는 가운데 업계의 논란도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배달앱 라이더를 중심으로 "우리를 정직원으로 고용하라"는 목소리가 강하게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매우 당연한 주장으로 보입니다. 국내의 많은 노동조합 전문가 및 시민단체들은 연일 "사람다운 삶을 보장하라"며 투쟁하는 중입니다.

다만 이 문제를 감정적인 노동문제로 보기에는 불편한 지점도 존재합니다. 플랫폼 노동자, 즉 긱 이코노미에 기반한 노동 행태가 경제불황에 따른 파생효과에서 시작된 한계가 있으나, 역시 이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등장한 해법 중 하나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플랫폼 노동의 경우 노동자가 더 많은 일을 하면 수익을 더 창출할 수 있도록 하며, 노동자에게 유연한 업무시간의 활용을 전제한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우아한청년들에 따르면 배민라이더의 2019년 하반기 평균 소득은 월 379만원으로 나타났으며 지난해 12월의 경우엔 배민라이더의 월평균 소득은 423만원이었고 상위 10%는 632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렸습니다. 주당 평균 배달수행 시간은 41시간입니다. 아르바이트생인 배민커넥터의 경우 월평균 약 160만원을 번 것으로 확인됐으며 시급으로 환산하면 라이더는 2만원, 커넥터는 1만3000원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업자는 공유경제 기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한 상태에서 기존 구사업에 신기술을 적용해 시장 자체의 발전을 끌어내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노동자의 입장에서 플랫폼 노동은 '나쁜 상황'이 아닙니다. 자기의 시간을 자기가 온전히 콘트롤하며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기업은 다양한 상생활동도 펼칩니다. 실제로 우아한형제들은 이륜차 종합보험을 마련해 대인 대물 피해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고 배민 커넥트의 경우 업계 최초로 시간 단위 오토바이, 자전거, 킥보드 보험도 제공합니다. 

이러한 과실은 노동자들에게 정직원이 아닌 '대가'로 볼 수 있습니다. 또 모바일 기술로 무장한 기업들의 상생은, 곧 기존 구사업의 낙후된 인프라를 개선시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플랫폼 노동자 문제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첫째, 기업이 플랫폼 노동자에게 정직원 수준의 업무를 지시할 때이며 둘째 '내 처우가 좋아지는 것은 모르겠고 그냥 난 정직원으로 해줘'라는 의도가 요동칠 때입니다.

▲ 사진=최진홍 기자

"가이드 라인 나와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일단 플랫폼 노동자의 시각에서 보자면, 전업 플랫폼 노동자의 공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긱 이코노미 자체가 투잡의 개념에서 시작한 여유시간 활용에 방점이 찍힌 상태에서, 전업 노동자는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여유시간 활용의 개념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돈을 벌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전업 노동자와 말 그대로 100% 여유시간 활용자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지만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문제들은 많다는 평가입니다.

또 다른 해결방안은, 바로 가이드 라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미국의 AB5 법안처럼 우리도 커지는 O2O 시장과 플랫폼 노동자를 인정하고, 누가 플랫폼 노동자이고 누가 정규직인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기업이 플랫폼 노동자를 구할 때 여기에 동의하는 인원이 찾아가고, 이 과정은 법적으로 명확한 선이 그어져야 합니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교수가 지난 1월 간담회에서 "국내에서도 AB5와 관련된 논의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한 배경입니다. 이제, 플랫폼 노동자의 정체를 정부가 밝혀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