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워크의 상장 실패 이후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데다가 2020년 대선과 관련된 혼란으로 스타트업들이 상장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출처= Finance Commerc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지난 2019년은 새로 상장한 회사들에게 힘든 한 해였다.

물론, 식물성 고기 제조업체 비욘드 미트(Beyond Meat) 같이 상장 이후 주가가 치솟은 회사도 있지만 차량 호출회사 우버나 리프트는 모두 월가 데뷔에서 쓴 맛을 보아야 했고, 사무실 공유회사 위워크는 비즈니스 모델과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중대한 문제를 노출시켰다.

2020년에는 기업들이 월가를 피하고 싶어할까? 아직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와 업무용 메신저 회사 슬랙(Slack)이 입증했듯이,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지 않고 상장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이 두 회사는 2019년에 직접 상장을 통해 뉴욕증권거래소에 주식을 매각함으로써 은행에 비싼 수수료를 내거나 잠재적 투자자들을 상대로 화려한 로드쇼를 펼치지 않고 상장할 수 있었다. 라디오 및 옥외광고 회사 아이하트미디어(iHeartMedia)도 직접 상장을 통해 나스닥에 상장했다.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도 올해 하반기에 직접 상장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리서치회사 CB인사이츠(CB Insights)가 현재 기업가치 28억 달러(3조 3000억원)로 평가하고 있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회사 키트랩(GitLab)의 CEO도 여러 인터뷰에서 2020년 중에 회사를 직접 상장할 계획이라고 CNN이 최근 보도했다.

SPAC 늘어나고 IPO 줄어들까

사실 직접 상장은 대부분의 회사들에게 현실적인 경로가 아니다. 이 방법은 신규 자금이 필요 없는 비공개 대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전략이다.

최근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를 통해 상장한 리처드 브랜슨의 우주관광회사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의 예를 들어보자. SPAC은 기업 인수만을 목적으로 하는 페이퍼 컴퍼니를 말한다. 버진 캘럭틱은 자산은 하나도 없는 소셜캐피털 헤도소피아(Social Capital Hedosophia)라는 기존 상장회사와 합병했다.

SPAC는 흔히 ‘백지수표회사’(blank check companies)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벤처캐피털이나 사모펀드회사에 의해 설립되며 투자자들은 종종 엉성한 회사들이 상장하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그러나 버진 캘럭틱의 주식은 올해 45% 이상 상승해, SPAC의 절차가 유효하며 투자자들은 상장과정과 상관없이 새로운 회사에 대해 갈망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회사 언스트&영(EY)의 미국 IPO 팀장 재키 켈리는 "새 상장 시장에는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고 설명했다.

“직접 상장할 것인지, IPO를 할 것인지에 대한 옵션을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확실히 요즘에는 SPAC이 더 실용적 선택인 것 같습니다.”

▲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 업무용 메신저 회사 슬랙(Slack), 라디오 및 옥외광고 회사 아이하트미디어(iHeartMedia)는 직접 상장을 통해 나스닥에 상장했다.   출처= Twitter

SPAC을 통해 상장한 회사는 버진 캘럭틱 만이 아니다.

애트킨스 다이어트(Atkins Diet, 고단백질 식품만 먹고 고탄수화물 식품은 피하는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로 일컬어지기도 했음)로 유명세를 탄, 저탄수화물 식품 판매회사 애트킨스 뉴트리셔날 (Atkins Nutritionals)도 지난 2017년, SPAC과 합병해 심플리 굿푸드(The Simply Good Foods Company)를 만들었다. 심플리 굿푸드의 주식은 합병 이후 두 배 이상 올랐고, 지난해 11월 단백질 스낵 제조회사 퀘스트 뉴트리션(Quest Nutrition)을 10억 달러에 매입하면서 덩치를 더 키웠다.

더 많은 백지수표회사가 곧 더 생길 것이다.

판타지 스포츠게임 개발회사 드래프트킹스(DraftKings)는 스포츠베팅 기술회사 SB테크(SBTech)와 ‘다이아몬드 이글 애퀴지션’(Diamond Eagle Acquisition)이라는 SPAC과 합병해 상장할 계획이다. 합병된 회사의 이름은 드래프트킹스 주식회사(DraftKings Inc.)가 될 것이며 주식시장에서 표시하는 약자(ticker symbol)도 새롭게 표기될 것이다.

지난 달 다이아몬드 이글과의 합병 건에 대한 애널리스트들과의 컨퍼런스 콜에서, 드래프트킹스의 제이슨 로빈스 CEO는 회사의 상장으로 회사의 미래 성장 기회를 위한 자본 접근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회사 PwC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신규 상장 회사 중 SPAC을 통한 상장 비율은 2013년 4%에서 지난해 30%로 급증했다.

그러나 직접 상장은 소수의 유니콘만 가능

투자자들에게 있어, 올해 장기 포트폴리오 짜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신규 상장 회사들이 있어야 한다.

음식배달서비스 포스트메이트(Postmates)와 도어대시(DoorDash), 거래 수수료를 없앤 주식거래 앱 로빈훗(RobinHood), 빅 데이터 회사 플랜티르(Palantir), 디지털 결제회사 스트라이프(Stripe), 중국 자동차 공유 업체 디디추싱(Didi) 등이 2020년 IPO 목록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회사들이다. 이들이 어떤 상장의 길을 택할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상장하려는 기업에게나 투자자들에게나, IPO 와 직접 상장 또는 SPAC이 자신들의 포트폴리오에 어느 것이 적합한지 여부를 고려하는 데 여전히 많은 위험이 존재한다.

CB 인사이츠의 애널리스트들은 보고서에서, 위워크 상장 실패 이후 투자자들의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다가 2020년 대선과 관련된 혼란이 맞물려 스타트업들이 상장을 두려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장을 고려할 만큼 매출 규모에 도달한 스타트업들도 있지만, 여전히 사모 시장에 남아 성장 자본의 풍부한 공급원을 계속 활용하려는 스타트업들도 있습니다."

우버와 같은 잘못된 IPO 사례는 일반 투자자들의 머릿속에서 여간해서는 잘 잊히지 않는다.

자산운용사 에델만 파이낸셜엔진(Edelman Financial Engines)의 리크 에델만 공동창업자는 "이제 투자자들은 IPO에 대해 엄격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제 IPO는 더 이상 과거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부로 가는 쉬운 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