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 CES 2020을 주최한 CTA(미국소비자기술협회) 게리 샤피로 회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현장에서 "모든 기업은 기술기업"이라고 일갈했다. 이제 기술과 기업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기술이 존재하지 않으면 기업은 영속성을 가질 수 없다는 논리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트렌드와 정확하게 부합한다. 이제 기술은 기업의 수단이 아니라 기업 그 자체로 변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기술이 시장의 속성을 완전히 바꾸는 흐름도 포착된다. 핀테크와 푸드테크, 인슈어테크 등의 정의는 결국 기술이 시장을 디지털로 바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이 기업의 영리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가운데, 문제는 단순히 '좋은 기술'만 보유한다고 '꽃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응용이 중요하다.

모빌리티에서 스마트시티까지
지난해까지 CES는 물론 MWC, IFA 등 글로벌 ICT 전자통신 박람회의 최대 화두는 기술의 진보였다. '5G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클라우드 기술력과 센서 및 기반 플랫폼 인프라의 효율이 얼마나 강력한가'라는 질문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은 더 얇은 디스플레이를 지원하는 TV를 제작하고, 더 강력한 인공지능 기술력을 쌓으려 노력했으며 더 효율적인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 생태계를 위해 노력했다.

올해부터는 기류가 사뭇 달라졌다. 단순히 기술이 뛰어난 것을 넘어, 기술을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찾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모빌리티가 단적인 사례다.

포드 및 도요타를 비롯해 현대자동차는 물론 인텔과 퀄컴 등 많은 기업들은 지금까지 자사의 자율주행차가 얼마나 '스마트하게 운행할 수 있는지'에 집중했고 또 '얼마나 효율적이고 강력한 칩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주목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자율주행차가 얼마나 기존 도로를 잘 달릴 수 있는지,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고 강력하고 효율적인 칩이 실제 자동차 환경에 어떤 순기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 소니의 비전-S가 공개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결국 현실성을 더욱 냉정하게 따져본다는 뜻이다. 우버 ATG(Advanced Technologies Group/우버의 자율주행기술을 총괄하는 부서) 소속의 엔지니어 브랜든 바쏘(Brandon Basso)는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코노믹 리뷰’와 만나 "아직 도심을 자유자재로 운행하는 자율주행차는 나오지 않았다”면서 "많은 시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 많은 ICT 및 전자 기업들은 각각 편차는 있어도 대략 2020년이면 레벨 5 수준의 완전자율주행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호언했으나 그 예언이 빗나간 것에 대한 냉정한 진단인 셈이다.

대신 현실에 방점을 찍은 자율주행차 로드맵에 더욱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그는 "볼보와의 협업을 통해 XC90 차량에 자율주행 라이다와 카메라 등의 하드웨어를 탑재하고 전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자율주행차량(AV) 플랫폼을 개발, 타 기업들이 자체 기술을 구축하고 우버의 네트워크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서 "우버 ATG에만 약 14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으며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테스트를 이어가며 기술의 완성도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모빌리티 전략이 현실의 응용으로 행보를 넓히는 가운데, 모빌리티를 단순히 '이동하는 것'에 대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도시의 모든 것을 '연결하는 것'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장면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스마트시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다. 당장 지난해 이팔렛트를 공개하며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도요타는 올해 CES 2020에서 스마트 시티 ‘우븐시티’를 전격 공개했다. 도로 인프라를 디지털로 제어하는 한편 다양한 초연결 실험의 테스트 베드로 우븐시티를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도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에 적용할 홈 사물인터넷 사례를 언급하면서 V2X(Vehicle-to-Everything)의 구현도 강조했다.

▲ 도요타 우븐시티가 눈길을 끈다. 출처=최진홍 기자

구글의 사이드워크 랩스의 스마트시티도 눈길을 끈다. 도시 곳곳에 인터넷과 센서를 배치하고 도시의 환경오염 및 교통체증 등 다양한 현상을 분석해 데이터로 축적하며 기후변화에도 도시 전체가 능동적으로 대응한다. 만약 도시에 비가 내리면 각 상점에 비치된 가림막이 자동으로 펼쳐져 인도를 걷는 사람을 보호하는 방식이며, 나아가 아예 기후를 정밀하게 예측해 도시 단위의 예보를 시도한다. 도로의 모든 신호등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기적인 알고리즘을 전개하고, 이에 맞춰 자율주행차량이 물에 떠 다니듯 움직이는 그림도 포함되어 있다. 친환경 에너지만 사용하며, ICT 기술과 인공지능으로 도시의 모든 것을 조율하는 방식이다. 중국도 항저우를 스마트 시티의 무대로 낙점했다. 지난 2017년 시티브레인 1.0을 공식 발표하고 2년간 교통체증 해결 부분을 중점 추진했으며 최근에는 2.0 버전을 준비하고 있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모빌리티에 대한 냉정하고 현실적인 문제의식, 즉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며 스마트시티를 중심으로 하는 대단위 플랫폼에 대한 청사진으로 업계의 시선이 옮겨가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실험도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기술의 가치를 '기계적인 진보'가 아닌 '기술의 응용'으로 설정한 대목은 옳은 선택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다른 줄기도 눈길을 끈다. 바로 입체적인 모빌리티 전략이다. 지금까지의 모빌리티 전략이 자율주행차 기술력과 플랫폼 운용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하늘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경로의 생태계 창출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눈길을 끈다.

우버와 협력한 현대자동차의 실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UAM(Urban Air Mobility : 도심 항공 모빌리티) ▲PBV(Purpose Built Vehicle : 목적 기반 모빌리티) ▲Hub(모빌리티 환승 거점)이 핵심이다. 정의선 수석 부회장은 “우리는 도시와 인류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깊이 생각했다"며 "UAM과 PBV, Hub의 긴밀한 연결을 통해 끊김 없는 이동의 자유를 제공하는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은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인류를 위한 진보'를 이어 나가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 현대차 지상 모빌리티. 사진=최진홍 기자

UAM은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모빌리티 플랫폼이다. 전기 추진 기반의 수직이착륙(eVTOL : electric Vertical Take Off and Landing)이 가능한 PAV를 활용해 활주로 없이도 도심 내 이동을 가능하게 만들며, 이는 메가시티의 부작용인 교통체증 및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자동차 UAM사업부장 신재원 부사장은 "이제 우리는 도심 상공의 하늘을 열어줄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앞에 와 있다"며 "UAM은 지상의 교통 혼잡에서 해방되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하늘을 아우르는 입체 모빌리티 역시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만 고집하는 것이 아닌, 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기술의 응용을 통해 '하늘'에 주목하는 모빌리티 전략은 그 자체로 의미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 출처=이코노믹리뷰DB

"고객의 경험을 팔아라"
기술의 실제적 활용 트렌드는 모빌리티 외에도 다수 존재한다.

삼성전자의 프로젝트 프리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프로젝트 프리즘은 단조로운 백색 광선을 갖가지 색상으로 투영해 내는 프리즘처럼 삼성전자가 밀레니얼 세대를 포함한 다양한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이 반영된 ‘맞춤형 가전’ 시대를 만들어 가겠다는 뜻을 담았으며,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프로젝트 프리즘을 발표한 바 있다.

프리즘 프로젝트의 대표작은 비스포크, 그랑데AI, 큐브 냉장고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맞춤형 가전을 표방하면서도 자유로운 기술 활용도를 전제한다는 특징이 있다. 기술은 제품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용자 경험'만 창출할 뿐이며,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대신 기술로 인해 제품의 사용자 경험은 비약적으로 성장하며 때로는 꼼꼼하게 모든 것을 메운다.

실제로 큐브 냉장고의 경우 삼성 공기청정기 무풍큐브에 적용되었던 큐브 디자인을 응용해 디자인 되었으며 침실이나 주방, 거실 등 집안 어디에나 자유롭게 두고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큐브 냉장고가 '얼마나 온도를 잘 맞추고 기능이 좋은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당연한 것이며, 얼마나 '고객의 삶에 스며들 수 있느냐'다. 신발을 넣어두기만 하면 탈취는 물론 습기까지 제거해 최적의 상태로 보관할 수 있는 신발 관리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기술력은 당연하고, 이제 높아진 기술력을 어떻게 고객에게 제공하느냐에 달렸다.

그랑데AI도 마찬가지다. 올해부터 생활가전사업부장을 맡게된 이재승 부사장은 현장에서 “프로젝트 프리즘 첫 번째 결과물 비스포크 냉장고가 디자인과 감성의 혁신이었다면 그랑데AI는 인공지능을 통한 소비자 경험의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랑데AI는 연간 1200만 건이 넘는 국내 소비자 사용 데이터를 미리 학습해 적용했으며, 소비자의 운용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욱 똑똑해진다는 설명이다. 결국 프로젝트 프리즘의 두 번째 작품인 그랑데AI는 디자인과 감성을 넘어 데이터로 학습된 경험의 지평선에서 무한의 가능성을 보여줄 전망이다.

▲ 그랑데AI. 사진=최진홍 기자

그랑데AI가 단순한 기술발전의 연장선이 아닌 ‘데이터=학습’이라는 나선의 고리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는 생물로 변하는 순간이다.

LG전자도 비슷한 전략을 세웠다. 박일평 LG전자 CTO(사장)은 자사의 가전 전략과 인공지능의 로드맵을 설명하며 "4단계의 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단계 효율화는 인공지능이 미리 정의된 명령이나 조건을 기반으로 시스템과 제품을 동작시켜 사용자의 편의를 높여주는 단계다. 현존하는 기술력이다. 또 2단계 개인화는 사용자와의 누적된 상호작용을 통해 패턴학습(Pattern learning)을 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사용자의 과거 행동을 분석해 패턴을 찾고 미래의 행동을 예측한다는 뜻이다.

3단계 추론은 인공지능은 인과학습(Causality learning)을 통해 각종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며 발견되는 특정 패턴과 행동의 원인 등을 파악한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상황에서도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니즈를 예측해 동작한다는 설명이다. 마지막 4단계 탐구는 실험학습(Experimental learning)을 통해 사용자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드는 단계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논리적으로 추론하고 가설을 세워 검증하며 더 나은 솔루션을 발견해내는 작업이라는 뜻이다.

결국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가전제품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것에서 벗어나, '기술이 실제 고객의 생활환경에서 어떤 이득을 보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고객의 경험'에 있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다. 김현석 사장이 CES 2020 기조연설에서 "앞으로의 10년은 경험의 시대"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좋은 기술로만 고객의 선택을 받는 시기는 끝났다. 이제는 기술로 고객의 삶을 어떻게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모든 기술기업은 이 대목에서 각각 맞춤형, 능동형 서비스,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다각화 전략 등을 구사하며 나름의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