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5차 공판이 당초 14일로 예정됐으나 돌연 연기된 가운데 재계는 물론 시민단체에서도 많은 논란이 나오고 있다. 법원이 ‘이 부회장 봐주기’에 돌입했다는 말이 나오는 한편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는 중이다.

연기된 공판은 4월 국회의원 총선거 후 재개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업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향후 거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프레임 싸움

현재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14일 열릴 예정이던 이 부회장 공판 준비기일을 전격 연기하는 한편, 특검과 이 부회장 양측에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먼저 준법감시위원회의 성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외부 독립기구 형태며 법원이 삼성그룹 전반의 준법체계를 감시할 제도 마련을 주문하면서 만들어졌다. 진보 성향의 대법관 출신인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그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준법감시위원회의 완전한 독립성과 자율성까지 약속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첫 회의를 열어 각사의 준법경영체제에 대해 논의했다.

업계에서는 준법감시위원회를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의 투명한 경영구조를 마련할 수 있는 긍정적인 자정활동의 ‘좋은 사례’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도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원회의 발족을 주문하고 이 부회장이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사실상 이 부회장의 혐의에 대한 법원의 봐주기 판결이 나올 명분을 마련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현 상황에서 준법감시위원회가 재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다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지난달 17일 4차 파기환송심 공판이 열린 가운데 법원이 그 실효성을 직접 점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원은 “(준법감시위원회)를 신설하는 것도 좋지만, 실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법원이 실효적으로 작동하는지 점검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독립적 제3자 전문가로 구성한 전문심리위원단을 통해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에 대한 점검에 나선다는 것은, 결국 법원이 준법감시위원회의 순기능을 일부 인정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준법감시위원회가 양형에 반영된다는 점도 확인되자, 현장에서 특검은 강하게 반발했다. 특검은 “재벌 체제에 대한 혁신 없는 준법감시위원회는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5차 공판을 앞두고 일부 정치권 및 시민단체의 공세가 시작됐다. 국회의원 43명과 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한국YMCA전국연맹 등 시민단체는 지난달 21일 “삼성이 급조한 준법위가 삼성 지배구조에 개혁적 결과를 담보할지 여부는 앞으로 수년이 지나야 검증될 수 있는 것으로 단기간에 평가하기는 불가능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법원이 최초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이후 양형에 반영하는 쪽으로 선회한만큼 일부 정치권 및 시민단체의 공세는 더욱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14일 예정됐던 5차 공판이 전격 연기된 셈이다. 4차 공판 후 삼성의 준법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이에 관련된 여론을 더욱 적극적으로 수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득일까, 실일까

이 부회장 5차 공판이 전격 연기된 상황에서 주로 재계에서는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준법위를 중심으로 투명한 경영활동에 나서겠다는 방침까지 나왔음에도 재판 과정이 지나치게 여론몰이로 치닫는 분위기가 역력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월 21일 정치인 및 시민단체의 비판은 삼권분립의 기본적인 헌법가치까지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이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추진하는 현안에 지나치게 개입하려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여론몰이 재판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5차 공판이 연기된 점도 논란이 크다. 적어도 총선 이후에야 공판이 재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삼성의 경영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삼성은 미중 무역전쟁, 한일 경제전쟁을 관통하며 악전고투한 바 있다. 그 중심에 이재용 부회장을 기점으로 하는 촘촘한 조직력이 가동됐고, 이 부회장은 필요하다면 일본이나 미국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까지 날아가 자사의 비전을 모색하는 한편 민간 외교관의 역할도 수행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1월 2일 새해 첫 현장경영으로 화성사업장을 방문해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서 ”역사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잘못된 관행과 사고는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면서 도전의식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사법 리스크가 커지며 운신의 폭이 제한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다만 5차 공판이 총선 후로 연기됐기 때문에, 삼성 입장에서는 이후 과정을 조망하며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할 시간은 벌었다는 의견도 있다. 또 일부 정치권에서 법원의 판결을 흔들려 여론몰이에 나서는 것 자체를 시민들이 경계한다는 말도 나온다. 일부 정치인들이 총선 직전 표를 의식해 전가의 보도처럼 ‘무리한 재벌 때리기’에 나서지만, 약효가 예전만하지 않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