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 글로벌 신용평가는 이번 사태로 인해 중국 내 자동차 생산이 1분기에 약 15%의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출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지난 수 십년 동안 미국, 유럽,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에게 중국은 약속의 땅이었다. 그러나 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코로나바이러스는 그 이전부터 이어져온 시장의 부진을 더욱 장기화시켰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의 모든 생산을 중단시키며 급기야 세계 자동차 공급망을 위협하고 있다.

폭스바겐, 다임러, 제너럴모터스(GM), 르노, 혼다, 현대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중국에 대거 투자하면서 현지 기업과 제휴해 광대한 공장을 짓고 자동차를 생산해 왔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나라이자 가장 많은 자동차가 팔리는 세계 최대 시장이기도 하다.

지난 달 춘절 연휴에 들어가며 중국 전역의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기 이전에 이미 중국 자동차 시장은 경기 둔화와 전기차에 대한 세제 혜택이 사라지면서 2년 연속 판매 감소를 겪고 있었고, 중국 관리들은 올해도 판매 감소를 전망하면서 전례 없는 3년 연속 시장 침체기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후 주요 자동차 공장 허브인 우한에 바이러스가 출현해 전국을 휩쓸며 수천 명의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수백 명을 사망하자 중국 당국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최소한 9일까지 공장 폐쇄를 명령했다. 그러나 자동차 회사들은 더 긴 폐쇄와 더 깊은 글로벌 판매 침체를 맞고 있다고 CNN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생산·판매 동반 고통

우한 지역 3개 도시가 각각 수 천건 이상의 확진 환자를 보고한 가운데, 중국에서는 여전히 6천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격리된 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계속 확산되며 연일 사망자와 감염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고 거대한 소비집단인 국민들은 외출을 삼가고 집에 머물고 있다.

S&P 글로벌 신용평가(S&P Global Ratings) 애널리스트들은 보고서에서 "소비자들이 감염 위험이 수그러질 때까지는 딜러를 직접 방문해 차를 구입하는 것을 피할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공장 폐쇄가 연장됨에 따라 업계가 침체에서 벗어나기는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S&P는 이번 사태로 인해 중국 내 자동차 생산이 1분기에 약 15%의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사태로 특히 자동차 업계가 더 타격을 받는 이유는 이 바이러스가 중국의 '자동차 도시' 중 하나인 우한에서 발원했기 때문이다. 제너럴모터스, 닛산, 르노, 혼다, 푸조의 PSA그룹 등이 모두 우한에 대규모 공장을 갖고 있어 1월 말부터 폐쇄에 들어갔다.

S&P에 따르면, 우한과 후베이성의 다른 지역이 중국 전체 자동차 생산량의 9%를 차지하고 있다. PSA그룹은 CNN과의 통화에서 "우한 공장은 적어도 2월 14일까지 폐쇄될 것"이라고 밝히고 "아직 유럽 공장 운영은 부품 공급이나 물류 차질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자동차 업체들도 이번 사태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CEO)는 6일(현지시간) 실적발표회에서 "매우 유동적인 상황"이라며 “공급망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중국 파트너와 현지 보건 당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다임러와 폭스바겐도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계획을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잠재적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이 회사는 중국에 완성차나 부품을 만드는 공장이 24개나 있으며 총 생산량의 40%를 중국에서 생산한다. 폭스바겐은 5일 "생산 개시 시점에 맞춰 공급 체인이 풀 가동될 것"이라며 "고객에 인도하기로 계획된 물량은 아직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 우한에 있는 혼다 중국공장(東風本田汽車有限公司, Dongfeng Honda). 당초 14일부터 가동하려 했으나 연기했다. 회사측은 “가동 재개 시기가 2월 말까지 늦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Wikimapia

중국에서의 생산이 전체 생산량의 15%를 차지하는 일본의 도요타도 걱정이다. 도요타 경영진들은 7일 "당초 10일부터 중국 내 생산 재개를 할 계획이었지만 17일 이후로 다시 연기했다"고 말했다.

디디에 르로이 전무는 "모든 게 불확실하다. 앞으로 며칠, 몇 주 동안 상황이 매우 빠르게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일본 자동차 회사 중 가장 피해에 노출되어 있는 회사는 혼다자동차다. 혼다는 지난 해 다른 회사들이 판매 부진을 겪고 있을 때 중국 내에서 155만대를 판매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혼다는 7일 “우한 공장을 당초 14일부터 가동하려 했으나 연기하기로 했다”며 “가동 재개 시기가 2월 말까지 늦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혼다는 광저우에도 4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10일 가동을 시작할 계획이지만 역시 확신할 수는 없다.

상황이 나아지기는 커녕 더 악화될 수도 있다. S&P 글로벌 신용평가의 연구원들은 중국 정부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위해 공장 폐쇄를 추가로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은 우한에서 수백 km 이상 떨어진 상하이와 톈진 같은 도시의 자동차 공장들까지 공장 폐쇄를 연장해 중국 내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생산의 절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너머로 확대되는 위험

위기가 길어질수록 글로벌 자동차 공급 체인의 피해 가능성이 커질 것임은 자명하다.

세계 최대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 독일 보쉬(Bosch)도 우한에 2개 공장을 포함해 중국에 십여 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S&P에 따르면 이 외에 베이링 전문회사 셰플러(Schaeffler), 섀시 전문회사 ZF 프리드리히스하펜(ZF Friedrichshafen AG), 배기가스 시스템 전문회사인 프랑스의 포레시아(Faurecia), 자율주행차용 카메라 등을 생산하는 프랑스의 발레오(Valeo) 같은 글로벌 자동차 부품회사들도 중국에서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보쉬 대변인은 6일 “중국 내 공장들이 현재 정부 명령에 따라 문을 닫고 있지만 ‘앞으로 수 일 내에’ 대부분의 공장에서 생산이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 회사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중국은 또 전기자동차, 트랜스미션, 기타 전기자동차 부품의 세계적인 생산 기지다. 중국 내 여러 기업에서 부품을 조달 받고 있는 테슬라는 이미 상하이 공장의 생산이 지연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에는 이미 비상 국면이 발생했다. 이 회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부품 공급에 차질을 빚자 이번 주 한국 공장의 조업을 중단했다.

영국 컨설팅회사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의 사이먼 매카담 글로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자동차 업계가 전체 부품의 29%를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차의 결정은 전 세계의 주요 제조업 공급망에서 중국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자체적으로는 중국 공급업체에 대한 노출도가 낮아 보이는 산업일지라도 중국 공급업체에 크게 의존하는 회사들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공급 사슬에서는 비록 값싼 부품이라도 고가 제품의 중요한 부품일 경우, 값싼 부품 하나의 공급 중단이 전체의 생산 흐름을 정지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