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부드러운 욕망전(展). 석주 윤영자 선생

-가톨릭 신앙을 갖게 된 것도 그 무렵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닌데, 먼저 아이들을 돌봐주지는 시어머니께서 독실한 신자셨어요. 자연히 아이들도 모두 열심히 성당을 다녔구요. 저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늘 고마웠어요.

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만드신 분에 대한 경외도 있었구요. 물론 그 안에는 부끄러움, 모자람 등 나 자신을 치유하고 싶은 갈망도 있었다고 해야겠지요. 그리고 사십 대가 되면 이런저런 고민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나지요.

그때마다 흔들리지 않게 나를 붙들어주는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죠. 그러다 어느 날 계기가 되어 한 신부님께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그 신부님께서 이심전심으로 저의 심정을 헤아리시는 거예요.

말주변이 없는 사람의 몇 마디 말을 듣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저를 알아보고는 신의 품으로 부르신 거죠. 전혀 거부감이 없었고, 기쁜 마음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그래서 아주 짧은 기간에 교리교육을 끝내고 세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세로 53x41cm

-그 무렵 수련과 연꽃을 테마로 한 전시를 얻으셨는데, 이 작업 역시 진주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은 대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그려온 테마이긴 해요. 그런데 진주에서 어느 날, 학생들이 제가 연에 관심을 가진 것을 알고는 예하리라는 곳에 위치한 저수지로 저를 데려갔어요. 존재가 떨릴 정도의 미적 충격이었습니다. 그 충격의 정체를 이해하고자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몇 번을 반복해서 갔어요.

저수지 수면위로 싹이 돋아나는 것이며, 바람이 불면 수면이 일렁이며 이파리가 덩달아 흔들리는 모습 또 연근 걷이가 끝나면 이파리가 고개를 꺾고 대만 남아 있는 풍경 같은 데에서 세계의 근원에 대한 물음과 함께 형언하기 어려운 조형적 아름다움을 보았어요.

그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는 심정으로 그 풍경을 추상으로 변용시키려는 노력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밑 작업으로 구상 작품을 했는데, 운이 좋게도 제 작품들 가운데에서는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작업을 지속하라는 대중적 요구가 있었을 텐데요?

그것은 제게(한국화가 송수련,한지화가 송수련,송수련 화백,宋秀璉,SONG SOO RYUN,송수련 작가,Hanji Painter SONG SOO RYUN,한지작가 송수련,종이회화 송수련,여류중견화가 송수련, KOREA PAPER ARTIST SONG SOO RYUN, KOREAN PAPER ARTIST SONG SOO RYUN)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어요. 저는 오히려 그 아름다움의 본질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그 탐구가 제 작업의 존재 이유이니까요.

△글=박철화, 중앙대학교 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