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정부의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사고 조사단이 지난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ESS 화재 원인이 배터리에 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지난해 6월 2차 발표에서도 배터리 결함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당시는 배터리 자체의 문제보다 보관 및 운영의 문제가 있었다고 봤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내 업체의 배터리 제조 자체에 결함이 있었다고 말해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ESS 화재 사건은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고다. 정부가 이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면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확고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정부 조사단의 발표 자체는 큰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

문제는 조사단의 모호한 결론이다.

조사단은 5건의 ESS 화재 사건 조사를 발표하며 파손된 ESS 내부의 일부 파편이 양극판에 붙어 있거나 내부 발화시 발생하는 용융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또 강원 평창 사업장은 화재 사건이 발생하기 전 전력 범위를 넘기는 충방전 현상도 벌어졌기 때문에 ‘ESS 화재 원인은 배터리 결함’이라고 설명했다.

조사단은 그러나 배터리 때문에 ESS 화재발생이 발생했다면서도 브리핑 말미에는 “추정일 뿐이라 제조사의 탓을 할 수 없다”는 이상한 결론을 내놨다. ESS의 경우 화재가 발생하면 발화지점의 배터리가 모두 소실되기 때문에 근본적인 화재 원인을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지만, 사태의 후폭풍을 고려하면 더 신중한 접근이 이뤄졌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실제로 LG화학과 삼성SDI 등 국내 대표 배터리 업체들은 조사단의 발표가 나온 직후 “배터리가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서 “조사단이 주장하는 큰 전압편차는 충전율이 낮은 상태의 데이터며, 이는 에너지가 없는 상태에서의 차이이므로 화재가 발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이 조사단의 발표에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는 조사단의 말 한 마디에 생사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ESS 악몽에 갇혀 지난해 실적이 크게 떨어진 가운데 일본의 파나소닉과 중국의 ACTL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여겨지는 배터리 시장에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밀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확한 조사를 통해 ESS의 덫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업체들에 정부는 ‘추정’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쓰며 모든 책임을 돌려버렸다.

심지어 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터리 보호장치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ESS 화재가 발생했다는 조사단의 지적에 삼성SDI가 “화재 발생 3개월 전 데이터이며 잘못 해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반박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일각에서 조사단이 ‘과연 제대로 조사를 했나’하는 의문을 가지는 이유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ESS 화재가 단 한 건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결국 정부는 ESS 화재의 진실을 명확하게 파악하지도 못했고, 몇몇 보완정책을 마련하는 선에서 재빨리 발을 빼는 분위기만 연출했다. 나아가 글로벌 ESS, 배터리 시장에서 경쟁자들과 싸워야 하는 기업들의 발목만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