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의 내부자들> 김정수 지음, 캐피털북스 펴냄.

월가를 뒤흔든 세기의 내부자거래 스캔들에는 4자가 등장한다. 돈과 명예, 권력을 향해 질주하는 세계 최강의 헤지펀드 트레이더들, 정의의 이름으로 이들을 단죄하는 연방 검찰과 FBI· SEC, 법정에서 인권을 내세워 검찰에 맞서는 미국 최고 로펌의 변호사들, 그리고 무엇이 정의인지를 고뇌하는 연방 판사들과 배심원들이다.

저자는 1930년대 미국 법조계에 커다란 논쟁을 일으켰던 아가시 판결을 필두로 총 12건의 내부자 거래 스캔들을 조명한다. 1961년의 캐디 로버츠 사건은 내부자거래를 처음으로 응징한 판례를 남겼다. 그 다음으로는 대기업의 임원 13명을 내부자거래 혐의로 연방 법정에 세웠던 텍사스걸프 사건을 살핀다.

1968년 연방 항소법원은 원심을 완벽하게 파기하고 피고인 전원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내부자거래 규제는 증권법 역사의 무대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1980년대 발생한 인쇄공 치아렐라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면서 극적인 반전을 이룬다.

‘탐욕의 시대’라고 불리던 1980년대 대형 스캔들이 잇따른다. 월가의 황태자인 데니스 레빈 사건, 차익거래의 황제 이반 보스키 사건, 그리고 정크본드의 제왕으로 일컬어진 마이클 밀켄 사건이 터졌다. 이들 3인의 스캔들이 영화 ‘월스트리트’의 모티프로 쓰였다.

2001년 말 가사(家事) 제국의 여왕이라고 일컫던 마사 스튜어트 사건이 발생했다. 생명공학 업체 임클론의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부당거래한 혐의다. 그녀가 매도한 주식 수는 3928주에 불과했지만 당시 사건은 그녀의 유명세 때문에 미국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녀는 조사받는 과정에서 관계자들과 입을 맞춰 수사를 방해하고 조사관들에게 허위진술한 혐의로 기소돼 2004년 3월 유죄 평결을 받았다.

2009년 10월 FBI가 라자라트남을 포함한 5명의 핵심 공모자들을 전격 체포하면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내부자거래가 실체를 드러냈다. 이른바 라자라트남의 헤지펀드 ‘갤리언’ 사건이다. 주모자였던 라자라트남이 구축했던 내부정보 네트워크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당시 스캔들로 인해 월가 전문가 약 100명이 유죄를 인정하고 처벌을 받았다.

스캔들의 대형화는 자산운용사인 헤지펀드의 등장과 맞물려 있다. 엄청난 규모의 고객 자산을 운용하여 수익을 남기고, 천문학적 성공보수를 받아내는 헤지펀드는 성격상 내부정보 확보에 목숨을 건다. 갤리언에 이어 초대형 스캔들을 일으킨 SAC 캐피털도 미국 톱 순위에 랭크된 헤지펀드였다.

저자는 “미국 법원이 내부자거래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지만 앞으로도 내부자거래가 근절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매일 거대한 돈이 꿈틀거리며 수많은 시장참가자들을 유혹하는 증권시장이 자본주의 심장으로 작동하는 한 ‘21세기의 엘도라도’ 월가 이면의 음습한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란 얘기다.

저자는 연세대 법학대학원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로스쿨에서 각각 법학 석사 학위를 받고 한국거래소에서 27년간 근무하여 이론과 현장을 꿰뚫고 있는 국내 최고의 증권법 이론 전문가이다. 저서로는 ‘현대증권법원론’ ‘자본시장법원론’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공저)’ ‘내부자거래와 시장질서 교란행위’ 등이 있다. 법무법인 율촌 고문을 역임했다. 금융법전략연구소를 설립하여 대표로서 자본시장과 자본시장법을 연구 강의하고 있다. 금융독서포럼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