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대영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재계에서 ‘행복전도사’로 불린다. 사내 행사를 통해 임직원들을 만날 때 혹은 외부 행사로 SK 기업 문화를 소개할 때 항상 ‘사회적 가치’와 함께 ‘구성원의 행복’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목적이 결국 이윤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기업의 형태와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새로운 먹거리인 바이오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도 이미 주력하고 있는 반도체, 이동통신 분야에서 안정 속 변화를 택하고 있다. 최 회장 스스로 현재의 경영환경을 두고 ‘서든데쓰’라 부를 정도로 최전선에 섰다.


주요 계열사 실적 부진… CEO 유임으로 안정화


SK는 최태원 회장이 상무, 전무, 부사장 등 임원 직급을 폐지하겠다고 지난해 7월 밝힌 이후 첫 임원 인사에서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 등 주요 계열사 CEO는 모두 유임됐다. 지정학적 위기, 경기 악화 등 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운 다양한 외부적인 요인으로 빚어진 실적 감소를 CEO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여기에 추가적인 사장 승진까지 포함시켜 내부 사기 진작 및 결속을 강화하는 한편 조직 내부에 강한 믿음을 심어줬다는 평가다.

▲ SK하이닉스 2019년 실적. 출처=SK하이닉스

현재 돌아가는 경영환경 분위기가 나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주요 계열사인 SK하이닉스가 주춤하는 장면이 뼈 아프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 26조9907억원, 영업이익 2조7127억원, 순이익 2조164억원을 기록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이 각각 33%, 87%, 87% 감소한 수치다. 기업이 얼마나 남는 장사를 했는지 보여주는 영업이익률은 전년(52%)대비 42%p(포인트) 급락한 10%에 그쳤다.

외적으로 글로벌 메모리 산업 불황과 지정학적 위기가 겹쳤고, 내적으로 수요 부진으로 인한 공급과잉이 빚어져 ASP(평균판매단가) 하락까지 더해진 결과라는 설명이다. 또 올해는 주요 고객사가 위치한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창궐로 혼탁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중국 생산 거점이 있는 우시, 충칭 등에서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하며 예의 주시 중이다. 여기에 SK하이닉스의 최대주주인 SK텔레콤도 크게 힘이 빠졌다.

경영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으나 SK는 오히려 조직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한편, 장기적 관점의 투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계열사 SK바이오팜의 국내 첫 바이오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신약승인을 받으면서 27년 간 투자의 결실을 맺었으며 뇌전증 치료제인 엑스코프리는 SK바이오팜이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개발, 신약허가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한 국내 최초 사례로 역사에 남게 됐다. 성과에 따른 보상도 제공했다. 연말 임원 인사에서 조정우 SK바이오팜 대표이사는 사장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20년 SK 경영 키워드 ‘반도체·바이오·배터리’


SK는 꾸준한 수익 창출을 내고 있는 SK텔레콤을 기반으로 올해 반도체(SK하이닉스), 바이오(SK바이오팜), 배터리(SK이노베이션)를 통해 새로운 성장 모멘텀 확보에 집중할 계획이다. 우연찮게 지난 임원 인사에서 박정호 SK텔레콤 대표이사,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조정우 SK바이오팜 대표이사 등은 모두 CEO 자리가 유임됐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반도체 업황 개선 전망을 토대로 ‘상저하고’ 실적이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지난 2018년 일본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해 낸드플래시 분야 경쟁력을 확보한 부분도 시장에 일정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해 4분기부터 가격 하락세를 멈추고 반등한 낸드플래시에 이어 올해 1분기부터 반등한 D램까지 제품 믹스를 통한 실적 개선 전망이 우세하다. 재고 소진과 ASP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된다.

SK바이오팜은 지난해 엑스코프리 FDA 신약승인에 이어 올해 기술 수출한 수면장애 신약 수노시(성분명: 솔리암페톨)가 유럽 판매허가를 획득했다. 이에 따라 SK바이오팜은 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하는 매출 금액에서 일정 로열티를 받게 되며,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12개국 판권 보유로 상용화 시 직접적인 수익이 발생할 전망이다. 특히 상반기 IPO(기업공개)를 앞두고 있다. SK바이오팜은 밸류에이션(기업가치) 5조원 이상, 공모금액만 1조원 이상 조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석유, 화학 부문 업황 악화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반 토막 난 SK이노베이션도 배터리, 소재를 통한 출구전략 모색에 나선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른 디젤 수요 증가, 환경규제 강화로 고급 윤활유 수요 증가, 리튬이온배터리분리막(LiBS) 신규라인 생산 등 수익성 개선을 제고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미래 모빌리티에 필수적인 배터리 영역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는다. 또 초경량 소재, 고성능 윤활유 등 친환경 사업 영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최태원式 사회적 가치 창출… 올해도 ‘진행형’


▲ 최태원 SK 회장. 출처=SK

‘행복전도사’ 최태원 회장은 확고한 경영 비전인 ‘사회적 가치 창출’을 올해도 지속적으로 제언할 예정이다. 최 회장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세션 패널로 참석해 사회적 가치 창출과 측정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특히 최 회장은 지난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 사회문제 개선과 참여를 유도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에 SK는 인센티브 지급을 위해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자체 측정방법을 개발한 뒤 지난 2014년부터 사회적 기업, 2018년부터 SK 계열사를 대상으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왔다. 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화된 측정모델 개발을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 세계 4대 회계법인, 글로벌 기업들과 비영리법인 VBA(Value Balancing Alliance)를 구성해 공동 협력하고 있다.

SK는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한 뒤 이에 비례해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를 시행하고 있다. SK에 따르면 인센티브를 받은 기업은 창출한 사회적 가치의 증가 속도가 매출액 증가 속도보다 20%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SK는 더블 보텀 라인(Double Bottom Line) 경영을 도입하고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는 등 기업 경영의 본질적 변화를 시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