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기분> 오각진 지음, 홍시 펴냄.

이어령 선생의 글이 책 앞 머리에 실려있다. ‘오각진과의 인연이 벌써 30여 년이 되어간다’로 시작된 ‘추천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오래 인연을 이어오며 그에게 궁금한 게 있었다. 일을 잘하는 것과 새로운 일을 생각하는 것의 양립이 쉽지 않은데 그걸 잘 해내더라는 것. 삼성맨 이미지에 예술가 같은 자유로운 구석이 많이 담겨 있었던 모순이라고 할까.’

30여년 직장 생활에서 은퇴하고서 저자는 삼성맨 답게 따져 본다. ‘그간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내 인생 결산은 어떻게 되는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머리 숱이 많이 줄었고, 아들이 준 축하 카드의 글씨는 잘 보이지 않아서 미간을 찌푸린 채 봐야 했다.’ 그러고는 ‘그리 밑지는 인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며 퇴직자의 회한과 불안을 훌쩍 넘어선다.

글에서 처럼, 탁하지 않은 눈과 예술가 같은 자유로운 마음으로 세상과 삶과 주변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새롭다. 나이 먹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즐거움이며, 늙어가는 매 시기는 전성기일 수 있다. 매일 똑같아 보이는 삶에도 볼만한 것들이 많고, 평범한 일상 풍경에서 갓 낚은 물고기 비늘처럼 떨어지는 행복의 조각들을 발견하게도 된다.

책은 소박하고 글은 따뜻하다. 생각은 자유로우며 강요하지 않는다. 저자가 여행을 다니며 촬영한 서른 장 남짓 흑백 풍경사진은 글 읽는 중간 중간 호흡을 가다듬어 준다. 몇몇 사진은 그것만으로도 위로를 준다.

책에는 저자가 2017년부터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하고 있는 단상들을 추려 담았다. '화통한 삶을 살자'며 동년배의 지인들에게 전한 글도 여러 편 넣었다. 인생의 후반에 접어든 중년부터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장년에 이르기 까지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