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에어는 1년 반 가량 국토부 제재로 날개가 묶인 상황이다. 출처=진에어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창립 12주년을 맞은 진에어가 2009년 이후 10년만에 연간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보이콧 재팬 여파, 홍콩 사태 등 악재가 겹치면서 영업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된 데 따른 결과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진가(家) 집안싸움까지 격화되면서 진에어의 앞날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10년만에 연간 적자 낸 진에어… 보이콧 재팬·홍콩사태 등 영향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진에어의 지난해 매출은 9102억원으로 전년 1조107억원에서 9.9% 줄었다.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도 각각 491억원, 542억원을 기록해 나란히 적자전환했다. 연간 적자는 설립 후 초창기인 2008년, 2009년 이후 10년만이다. 

4분기만 놓고 보면 매출액은 182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604억원 적자를 기록해 전년 동기 –220억원보다 큰 폭으로 주저앉았다. 

공급 과잉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보이콧 재팬 여파와 홍콩 사태 등에 따른 여행 수요 둔화가 실적 악화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대체제로 발굴한 동남아 등 지역 노선의 공급이 집중되면서 수익성 제고효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 1년 반 넘도록 이어진 정부의 제재로 신규 노선 취항과 부정기편 운항이 제한된 것도 실적 악화를 키웠다. 

2018년 8월 국토교통부는 조현민 한진칼 전무(당시 진에어 부사장)의 ‘물컵 갑질’과 ‘항공법 위반’ 논란을 이유로 진에어에 신규 노선 허가, 신규 항공기 등록, 부정기편 운항허가 제한 등의 제재를 결정했다.

진에어는 지난해 9월 ‘항공법 위반 재발 방지 및 경영문화 개선 이행’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국토부에 내고 경영 해제를 공식 요청했다. 보고서에는 독립적인 의사결정 시스템 재정립, 이사회 역할 강화 등 17개 항목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이에 국토부는 외부 전문가 7명을 모아 외부 자문위원회를 꾸려 보고서를 검토했고, 지난달 초에는 진에어 노조와 직종별 직원 대표, 경영진과 회사 내 경영 문화 개선 상황에 대한 면담을 진행했다. 점검 과정에서 외부전문가들은 진에어에 이사회 활성화 등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진다. 진에어는 추가 권고 사항에 대한 소명을 준비 중이다. 

한진家 경영권 분쟁, 진에어 발목 잡을까

이 같은 상황에서 한진가에 잇따라 불거진 ‘모자의 난’과 ‘남매의 난’이 진에어 제재 해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지난해 6월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슬그머니 경영일선에 복귀한데 이어, 연말에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법률대리인을 통해 동생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공개 비판했다. 이틀 뒤 에는 조 회장이 이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모친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을 찾았다가 언쟁이 벌어졌고 유리창과 화병 등이 깨지는 소동도 일었다. 

직후 모자는 갈등 봉합에 나섰지만 한진가의 경영권 분쟁은 나날이 격화하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조현아 전 부사장과 KCGI, 반도건설이 합세한 반(反) 조원태 연합을 꾸린데 이어,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편에 서면서 남매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업계에서는 향후 가족간 극적 화해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조 전무의 복귀에 이어 가족간 다툼으로 한진그룹에 대한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국토부가 진에어 제재 해제에 미온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모기업인 한진그룹의 불안정한 상황이 경영정상화가 시급한 진에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 국토부도 지난해 12월 말 경영에서 총수 입김을 제외하는 등 추가 보완 사항을 진에어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에어의 경영 환경 개선과는 별개로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추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 여기서도 국토부가 오너일가의 경영 참여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다. 

 

항공업계, 각자도생 하는데… LCC 2위 자리 위태

진에어는 지난 2008년 1월 23일에 대한항공 자회사 격으로 설립됐다.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은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저가항공사를 성공적으로 출범시키겠다”고 선포, 제주항공·에어부산 등 기존 저비용항공사(LCC)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에어를 출범시켰다.

창립한 해 7월 17일 처음 비행기를 띄운 진에어는 출범 3년 만인 2010년에 흑자 행진을 시작했다. 이는 업계 최단 기간 흑자 달성 기록이다. 이어 출범 9년 만인 2017년에는 기업공개(IPO)에도 성공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제재가 이어지면서 진에어 사세는 크게 위축됐다. 약 1년 반의 제재 기간 동안 신규 항공기 도입, 신규 고용 등이 ‘올스톱’되면서 부침을 겪고 있다. 지난해 중국, 몽골, 싱가포르 등 신규 운수권 배분 경쟁에 배제돼 성장 동력도 약화됐다. 상황이 이쯤 되면서 업계 2위 자리를 뺏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항공정보포탈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7∼12월) 국내 LCC 8곳을 이용한 국제선 여객수는 총 1261만9583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진에어의 여객수는 225만8972명(17.9%)으로 3위에 그쳤다. 지난해 3위였던 티웨이가 2위로 올라서면서다. 

진에어의 성장시계가 멈춘 상황에서도 경쟁자들은 각자도생을 위한 살길을 찾고 있다. 우선 경쟁을 벌이던 업계 1위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인수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는 방침이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성공적으로 끝내는 경우 총 68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게 돼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게 된다. 

또한 업계 3위였던 티웨이항공은 지난해 4대를 더 도입해 총 28대로 항공기 보유 대수를 늘렸다. 항공기 보유 대수로는 국내 LCC 중 제주항공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티웨이항공은 올해 중대형항공기를 도입해 호주와 중앙아시아, 하와이 등으로의 취항을 고려하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시간 앞에 장사없다는 말처럼 진에어도 국토부의 제재가 길어지면서 체력 소모가 커지고 있는 거 같다”며 “업황 부진으로 다들 각자도생에 나서는데 진에어는 날개가 묶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토부의 진에어 제재가 1분기를 넘길 경우 LCC 업계 순위가 뒤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