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스타트업에서 주로 활용되던 ‘크라우드 펀딩’이 유통 대기업으로 퍼지고 있다. 주 소비층으로 부상한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선주문을 통한 수량 파악으로 재고 부담이 낮아지고, 소비자 반응도 미리 살펴볼 수 있어 많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 완성된 제품을 선매입한 후 일종의 박리다매로 구매를 유도하는 공동구매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유통업계의 크라우드 펀딩은 일종의 마케팅적 측면에서 작동하면서도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읽어내는 쪽에 방점이 찍혔기 때문이다. 유통업계가 부쩍 크라우드 펀딩에 집중하는 이유다.

다만 전문가들은 보상형 펀딩 성공률이 다소 높지 않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기업들이 신중하게 시작해야한다는 의견이다.

▲ ‘헤드(HEAD)’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진행한 ‘버티컬 구스다운’ 제품. 출처=코오롱FnC

크라우드 펀딩은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기업이 투자받는 자금조달 방식이다.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기 전에 선주문을 받는 ‘보상형’과 기업 지분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증권형’으로 크게 나뉜다. 처음엔 개인 간 자금 대출 형태로 등장했지만 최근에는 ‘보상형’ 펀딩으로 확장되고 있다. 

보상형은 대부분 투자한 그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허락해주거나, 출시된 상품을 주는 식으로 보상한다. 자금 조달이 아니라 제품 수요를 알아보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통업계에서는 크라우드 펀딩을 제품을 내놓기 전 소비자 수요를 예측하는 시험대로 사용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업체 와디즈의 지난해 상반기(1~6월) 패션·잡화 펀딩 건수는 960여 건, 펀딩 금액은 80억원으로 작년보다 577% 성장했다. 펀딩에 참여하는 고객들의 피드백을 제품개발 단계에서 적용할 수 있고, 펀딩을 전후로 한 입소문 등 자체 홍보효과는 한 제품에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 그 이상을 보여준다. 즉 신제품을 출시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 속. 소비자들의 선호도나 취향을 파악해 새로운 고객층 확보기 더 큰 이익인 셈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패션업계가 가장 활발하게 도입하고 있다. 코오롱FnC가 전개하는 스포츠 브랜드 ‘헤드(HEAD)’는 지난해 11월 크라우드 펀딩으로 세로 퀼팅 기법을 적용한 ‘버티컬 구스다운’을 선보였다. 제품은 버티컬 구스 다운을 숏다운, 후디다운, 벨티드다운 3종으로 선보였다. 약 2주간의 펀딩을 진행한 결과 목표대비 1만% 이상의 펀딩을 달성했다.

박지만 헤드 브랜드 매니저 “진행했던 제품은 바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선공개하는 펀딩 형식이었는데, 기대이상의 호응과 응원을 받았다”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 새로운 도전을 해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플립이 펀딩 중인 구스 다운 점퍼. 출처=신세계인터내셔날

크라우드 펀딩을 정식 유통채널로 삼는 기업도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사내벤처가 기획한 브랜드인 ‘플립(FLIP’)은 지난 2018년부터 와디즈를 통해 신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느린 배송이라는 콘셉트 아래 일정 수의 사람이 모이면 판매가 확정이 나는 형식이다. 플립이 지난해 9월 선보인 구스다운점퍼는 2억 5312만원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사내 디자이너가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이 디자인에 참여한 제품이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자 SSG닷컴의 다른 브랜드 상품들도 함께 펀딩 구매가 가능할 수 있도록 아예 매장 형태로 페이지를 구성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기획부터 생산 과정까지 소비자가 참여하는 게 브랜드의 기획 의도”라면서 “판매 채널도 소비자 참여도가 높은 크라우드펀딩 방식이 제격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제작업체가 아닌 유통업체도 직접 크라우드 펀딩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마트는 지난 31일부터 약 3주간 스페인 슈즈 전문 브랜드 ‘CETTI’의 빈티지 스니커즈 2종을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디자인과 제품에 참여하는 크라우딩 펀딩 방식보다는 아직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브랜드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 이마트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선보이는 빈티지 스니커즈 'Cetti' 제품. 출처=이마트

펀딩 목표 금액은 2000만원이며 펀딩 가격은 빈티지 스니커즈 한 켤레당 11만 9000원이다. CETTI의 해외 직구 가격이 20만원에서 30만원대인 점을 고려하면 시중가보다 최대 70% 이상 저렴한 가격이다. 조기 펀딩하는 얼리버드 투자자는 9만9900원에 CETTI 스니커즈를 만날 수 있다. 크라우드 펀딩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5월 중 상품이 배송될 예정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다년간 축적된 해외 직거래 노하우와 재고 부담이 없는 크라우드펀딩의 장점을 결합해 이마트 매장 판매가보다 최소 25% 더 저렴하게 빈티지 스니커즈를 선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식품 업계에선 아워홈이 대표적이다. 아워홈은 지난해 9월 냉동도시락 브랜드 ‘온더고’의 신상품 3종을 출시에 앞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약 3주 동안 진행한 온더고 프로젝트에서 약 4500만원의 펀딩액을 모집했다. 이는 목표 금액의 888%에 이르는 수준으로 참여한 서포터들은 정가에서 약 30% 할인된 신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했다.

▲ 아워홈의 냉동도시락 브랜드 ‘온더고’의 신상품 3종. 출처=아뤄홈

공구와 뭐가 달라?
크라우드 펀딩은 기존에 출시 된 제품에만 한정돼 진행되는 공동구매와는 다르다. 기존의 스타트업에서 행해지는 자금을 조달받는 형식보다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고 트렌드를 앞서보는 시험대로 활용되는 형식이다. 제품도 초반 완성형 제품 판매가 아닌 투자자들의 의견이 직접 들어가고 동시에 피드백을 계속 거쳐 탄생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다. 이는 금융 관련 목적으로 이뤄지는 투자·지분형과는 다른 형태라는 금융감독원 측의 설명이다.

소비자들의 참여는 자연스레 홍보효과로 따라온다.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흔히 말하는 제품의 서포터가 되어 각종 SNS에서 활동한다. 목표 금액을 채워야 상품을 받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제품에 대해 후원하는 것이 아닌 본인의 의견이 직접 반영되기 때문에 애착이 커지게 되는 셈이다. 유통비용이 저렴한 것도 장점이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판매하는 제품은 일반 소비자가공구로 진행되는 제품보다 통상 20~30% 저렴하고, 제작과정과 제품 사양을 등을 상세히 알 수 있고, 심지어 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은 원가와 마진까지 공개해 신뢰를 얻고 있다.

다만 보상형으로 이뤄지는 크라우드 펀딩의 모금 성공률은 다소 높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펀딩에 성공했더라 하더라도 실제 제품이 계획된 일정보다 크게 늦어지거나 제품의 완성도가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선주문 방식으로 주문 상품을 받아보기까지 2~3달 이상 기간이 소요되고 길게는 1년 이상이 걸린다. 때문에 유행 주기가 짧은 유통시장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물론 지속해서 진행 사항은 업데이트 되지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유통 트렌드 속 미세한 지연은 커다란 변화를 불러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크라우드 펀딩 투자자들은 주로 20~30대 직장인인 경우가 많다”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가 모여 있기 때문에 제품의 상품성과 맛, 선호도를 판단하기에 아주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크라우드 펀딩의 보상형의 경우 플랫폼에서 가져가는 수수료는 모집금액의 10% 수준 정도로 부담이 적다”면서 “다만 기업들이 펀딩을 통해 사업규모를 확대하긴 어렵고, 브랜드를 홍보하고 고객의 요구를 알아보는 테스트 선에서 끝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