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목동물 인간 2006-14, 2006, 한지에 수묵채색, 72x121.4cm/Nomadic Animals+Human 2006-14, 2006, ink and pigment on hanji, 72x121.4cm 익명인간-구몽33

허진의 그림은 방향을 잃은 익명의 인간이 부유한다. 정착하지 못하는 현대인을 대변하는 이 도상은 물질적이며 수동적인 인간군상을 화면 가득 배치하면서 문명의 혼돈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을 풍자한다. 표리부동하고 부조리한 현대사회를 횡단하는 이 도상은 무한 증식하는 자본욕망과 속도 속에서 피압박적인 흑백도상 및 색채점을 가득채운 인간형상을 재현한다.

이 형상들은 분할되거나 뒤섞인 채로 개성상실의 현대인을 시각적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허진의 형상들은 시대적 문제에 대한 과감한 이미지를 접목하거나 일그러진 자화상을 현상적으로 시각화한 작품의 표현을 거쳐 다층적인 현실을 드라마틱한 일상으로 담아내었다.

익명인간과 접목된 이 부유인간 시리즈는 근자에 와서 더욱 형태미를 정제화하면서 시각적 상징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데 인간문제에 대한 현상학적 사고력을 배가시키고 있다.

이전 전시의 연장인 부유인간은 원시적 생명력을 상실한 채 현실 속을 떠도는 인간군상을 흑백과 색채점 형상을 통해 시각화하면서 심리의 안과 밖, 존재의 본질과 껍질, 관계의 피동성을 화면에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 허진 회화를 이해하는 내러티브를 형성하고 있다.

단절되고 소외되며 세계에 대한 전체의 이해를 상실한 현대인은 세계 내를 방황하며 관계상실에 절망하고 공허한 현실을 떠돌고 있다. 이 부유는 인간과 동물, 사물의 곳곳에 도상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화면의 분할과 공간에 대한 표현력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즉 표면에 들러붙어있는 역할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대상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 부유형상은 분할되고 중첩되면서 분리된 공간과 사물, 인간도상의 존재형식들을 공간 안에 결속시킨다.

선조형보다는 점과 면에 대한 의식이 강한 허진(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한국화가 허진,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A Painter HUR JIN)의 화면으로 볼 때 이러한 결속은 공간을 창출하는데 효과적이고 시각적 인식을 심화시키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류철하(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