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모친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그리고 여동생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지지를 얻었다. 한진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주주총회가 한 달 남짓 남은 가운데 조원태 회장 진영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진영의 건곤일척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 왼쪽부터 조원태 회장, 조현아 전 부사장, 조현민 전무. 출처=대한항공

입장문 발표...'외부세력 연대' 선 그어
이명희 고문과 조현민 전무는 4일 공동 입장문을 내어 "이명희와 조현민은 한진그룹 대주주로서 선대 회장의 유훈을 받들어 그룹의 안정과 발전을 염원한다"면서 "조원태 회장을 중심으로 현 한진그룹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외 경영환경이 어렵지만, 현 경영진이 최선을 다해 경영성과를 개선하고 전문경영 체제 강화와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개선 노력을 기울여 국민과 주주, 고객과 임직원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한진그룹을 만들어 주시기를 바란다"면서 "조현아 전 부사장이 외부 세력과 연대했다는 발표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으며, 다시 가족의 일원으로서 한진그룹의 안정과 발전에 힘을 합칠 것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입장문의 표현 중 '외부 세력과 연대했다는 발표에 대해 안타까움'이라는 문구에 시선이 집중된다. KCGI와 손을 잡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행보를 문제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조 전 부사장은 지난달 31일 KCGI, 반도건설 명의의 공동 입장문을 내고 조원태 회장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법무법인 태평양을 통해 "국민의 기업인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의 현재 경영상황이 심각한 위기상황이며 그것이 현재의 경영진에 의하여는 개선될 수 없고 전문경영인제도의 도입을 포함한 기존 경영방식의 혁신, 재무구조의 개선 및 경영 효율화를 통하여 주주가치의 제고가 필요하다는 점에 함께 공감했다"면서 "다가오는 한진칼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와 주주제안 등 한진그룹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활동에 적극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고 주장했다.

사실 조 전 사장이 조원태 회장 체제에 반기를 들 조짐은 예전부터 있었다. 조원태 회장이 아버지 고 조양호 회장 별세 후 사장에서 회장으로 올라선 다음 지난해 10월 지주사 한진칼의 최대주주로 등극했으나, 그 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는 대기업집단 및 동일인(총수) 지정을 두고 한진가 내부에서 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 회장은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가족 간 협력을 안 할 수 없는 구조"라면서 "자기 맡은 분야에 충실하기로 세 명이 합의한 상태"라며 애써 진화에 나섰다.

조 회장이 진화에 나섰으나 지난해 12월 조 전 부사장은 법무법인 원을 통해 "조원태 대표이사는 공동 경영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하여 왔고, 지금도 가족간의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라면서 “한진그룹은 선대 회장님의 유훈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상속인들간의 실질적인 합의나 충분한 논의 없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이 지정되었고, 조 전 부사장의 복귀 등에 대하여 조 전 부사장과의 사이에 어떠한 합의도 없었음에도 대외적으로는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공표되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달 31일에는 한진그룹에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 등을 주장하는 KCGI, 반도건설과 손 잡는 충격파를 던졌다.

이런 상황에서 조현태 회장이 궁지에 몰리는 분위기가 연출됐으나, 이명희 고문과 조현민 전무가 4일 조현태 회장 지지를 선언하며 반전이 벌어진 셈이다.

▲ 조원태 회장. 출처=대한항공

강대강 대치...치열한 전쟁 예고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소위 땅콩회항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뒤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으나 2018년 3월 칼호텔 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한 바 있다. 이후 동생인 조현민 전무의 소위 물컵 갑질 사건이 불거지며 다시 경영에서 물러났으나 어머니인 이명희 고문이 복귀하고 조현민 전무도 경영에 복귀하자 조 전 사장도 경영복귀에 재차 시동을 걸었다.

문제는 조 회장이 조 전 부사장의 경영복귀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지점이다. 여기에 지난해 11월 정기 임원인사에서 조 전 부사장의 측근들이 낙마하고, 조 전 부사장 스스로도 경영복귀에 실패하자 갈등은 증폭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조 전 부사장이 애착을 가진 호텔사업을 조 회장이 사실상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남매의 갈등이 더욱 깊어졌다는 후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 전 부사장이 최근 연이어 조 회장 퇴진을 요구하고, 조 회장과 어머니 이 고문의 갈등설이 커지며 분위기가 미묘하게 흘러갔다. 실제로 재계에서는 이명희 고문이 조원태 회장보다 딸인 조현아 전 부사장의 편에 서자, 지난해 크리스마스 가족행사에서 조 회장이 이에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 고문이 조 전 부사장이 아닌 조원태 회장을 선택한 배경에 시선이 집중된다.

재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의 동맹군 구성이 이 고문의 심기를 건들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바로 KCGI다. 

조 전 부사장이 지난달 31일 최근 부쩍 한진그룹 경영권에 관심을 보이는 반도건설을 영입한 것은 이 고문에게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이 한진그룹의 주주가치 제고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KCGI와 손을 잡은 대목은 이 고문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KCGI는 지난해 1월 20일 한진그룹의 신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전문 경영인 체제의 도입을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조 전 부사장은 조원태 회장 체제를 끝내고 KCGI의 뜻대로 한진그룹을 바꾸는 한편, 본인은 호텔 분야에 집중하는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는 지분확보에 있어 조 전 부사장이 보여준 신의 한 수였으나, 외부세력을 견제하는 어머니 이 고문의 지지를 철회시키는 양날의 칼이 됐다.

한편 이명희 고문과 조현민 전무가 사실상 조원태 회장을 지지하면서, 양측의 대결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재 한진칼 지분 상황을 보면 조 회장이 6.52%, 조 전 부사장이 6.49%, 조현진 한진칼 전무가 6.47%, 이명희 고문이 5.31%를 가지고 있다. 4.15%는 재단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하고 있으며 사모펀드 KCGI가 17.2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델타항공이 10.0%, 반도건설이 8.20%, 국민연금이 4.11%를 가지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 진영의 지분율은 모두 32.06%다. 여기에 반도건설의 의결권 유효 지분 8.20%을 고려하면 주총에서 총 31.98%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반면 6.52%의 조원태 회장과 조 회장의 우호세력인 델타항공 10.0%을 더해도 고작 16.52%다.

그러나 여기에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의 5.31%, 조현민 전무의 6.47% 지분이 더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4.15%의 정석 인하학원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더하면 33.45%의 지분이 되어 조 전 부사장 진영을 근소하게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부사장 진영과 비교하면 1.39%p 앞선다.

결국 주총에서 강대강 표대결이 벌어질 전망이다. 양측의 지분율이 근소한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제3지대'의 선택이 경영권 향배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현 상황에서는 조원태 회장의 입지가 유리해진 것이 사실이라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