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SH 수협 숙대입구역 지점에 정기예탁금 최고 2.5%, 정기적금 특판(3년납입) 최고 4.0%를 주는 행사를 진행하자 사람들이 오픈 전 부터 길게 줄서고 있다. 사진=박재성 기자

[이코노믹리뷰=장영일 기자] 시중은행들의 특판 예적금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간혹 벌어지곤 한다. 은행들의 이러한 특판 행사는 기념일 축하나 스포츠 이벤트 등으로 기존 고객 만족과 신규 고객 유치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진짜 속내는 특판을 통해 예금액을 늘려 정부의 대출 규제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숨어있고, 저금리시대에 특판상품은 팔면 팔수록 손해인 점을 감안하면 은행으로서는 울며겨자먹기식의 고비용 상품이다.

4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1월 31일 서울 용산구 SH 부안수협 숙대입구역지점 앞에는 특판 정기적금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이 오픈 전부터 길게 줄을 섰다. 이 지점에서는 오픈 기념으로 기본 3년 3.5% 금리에 입출금통장까지 개설하면 0.3%를 추가해주고, 체크카드를 1년간 120만원 쓰면 0.2% 추가하는 등 최대 금리 4.0%의 적금 상품을 판매했다. 한도는 없지만 31일까지만 판매했다.

이날 현재 하나은행도 특판 적금을 판매하고 있다. 기본금리 연 3.56%에 온라인 채널로 가입하면 연 0.2%, 하나은행 입출금 통장에 자동이체를 등록하면 연 1.25%를 더해 최고 연 5.01%를 제공한다. 판매 한도는 없지만 오는 5일 오후 5시까지만 가입할 수 있다. 이 상품은 가입하려는 고객들로 애플리케이션이 마비되는 등 열기를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특판 상품으로 실제 손에 쥐는 이자는 많은 편은 아니다. 이번 하나은행 특판 적금의 경우 최대 한도인 월 30만원씩 1년간 적금에 부었을 경우 받을 수 있는 이자는 세후 기준 8만2000원 정도다. 비록 큰 돈은 아니지만 시중은행 금리가 1%대에 불과해 소비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이자를 받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입자들 뿐만 아니라 은행 입장에서도 특판으로 얻는 효과는 크다.

먼저 은행 입장에서는 기존 고객은 잡아두고 신규 고객을 유인할 수 있다. 은행들은 통상 연초에 특판 상품을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초에는 새해를 맞아 저축 계획을 세우는 고객들이 많은데, 이럴 경우 유리한 조건의 특판 상품을 내놓으면 고객들이 앞다퉈 가입한다는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초에는 저축하려는 고객들이 예적금 가입이나 상담을 위해 영업점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시기보다 훨씬 바쁜편"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창립일이나 국가대표 경기 등을 기념하는 특판 행사를 벌여 신규 고객을 흡수하기도 한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지주사 전환과 창립 120주년을 맞아 장기거래 고객에게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예적금 상품을 내놨다. 적금은 출시 12일(주말 포함) 만에 준비된 5만좌가 모두 팔렸고 예금 역시 출시 13일 만에 2조원 한도가 모두 소진됐다.

특판 상품은 신규 고객 유치 외에 다른 효과도 발휘한다. 

시중은행은 올해부터 신예대율 규제가 적용돼 예금 규모가 대출 규모보다 많아야 한다. 예대율은 원화 예수금 대비 원화 대출금 비율로, 이 비율은 100%를 넘길 수 없다.

금융당국은 올해부터 가계대출금에는 1.15를 곱하고 기업대출금에는 0.85를 곱한다. 즉, 은행 돈이 가계대출에 치우치지 말고 기업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가계대출이 많은 은행은 예금을 늘려야하는데, 지난해 유독 특판 상품이 많았던 이유도 예대율 규제에 대한 대비로 풀이된다.

다만 매년 연초 쏟아지는 특판 상품이 올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부터 은행들은 고금리를 주는 특판 예적금보다는 주택담보대출 등 우량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장기채권인 커버드본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버드본드는 금융기관이 보유한 주택담보대출 채권 등 우량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만기 5년 이상의 장기채권이다. 원화 예수금의 1% 이내에서 커버드본드 발행액을 예금으로 인정해주고 있어 커버드본드 발행시 예금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작년에만 4개 은행이 3조7200억원 정도의 커버드본드를 발행하면서 지난해 4대 은행들의 예대율은 100% 밑으로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커버드본드 발행잔액의 원화예수금 인정한도를 계속 확대한다는 방침이어서 올해에도 시중은행들의 커버드본드 발행은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