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규제 장벽을 낮추면서 제약바이오 산업을 빠르게 키워왔던 중국이다. 달라진 중국 정부의 태도에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이 앞다퉈 중국 진출을 선언하며 가능성을 타진해왔다. 국내 기업들도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한 교두보 마련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지고 있다. 매일 사망자가 두자릿수 단위로 늘어나는 중국에서 당분간 사업을 진행하긴 어려워보인다. 중국 현지로 출장 및 파견을 나갔던 직원들도 신속히 국내로 복귀하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거 9개월간 지속됐던 사스처럼 이번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든다면 애초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중국 진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中진출 제동 걸린 국내 제약·바이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지인 중국 우한시에 생산공장 설립을 계획 중인 셀트리온은 거듭되는 감염증 확산에 비상이 걸렸다.

셀트리온그룹은 지난달 20일 후베이성 정부, 우한시 관계자들과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장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으로 셀트리온그룹은 중국 내 최대 규모인 12만L급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바이오의약품 개발·생산뿐만 아니라 중국 내수시장 공급을 위한 대규모 수탁생산(CMO) 사업도 진행한다. 중국 내 의약품 판매를 위한 직판망도 구축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이 회사는 2025년까지 5년간 설비투자에만 약 6000억원 이상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중국 중부 최대 도시인 우한시는 300여 개의 제약바이오 연구개발(R&D)센터와 기업이 자리잡고 있어 바이오 전진기지로 급부상하던 곳이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에 내려진 평가다. 현재 우한시는 사람과 대중교통이 끊긴 유령도시로 변모했다. 당장 현지에서 어떠한 사업조차 계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셀트리온도 올 상반기 우한에서 생산공장 건설을 위해 기공식을 가질 계획이었지만 일단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당분간 중국 출장을 가지 말라고 내부에 권고했다"며 "신종 코로나 사태와 같은 재난은 인간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으로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진출에 속도를 냈던 삼성바이오에피스도 신종 코로나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중국의 바이오기업 '에퍼메드 테라퓨틱스'와 함께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 치료제인 'SB12'의 중국 내 인허가 및 상업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에퍼메드 테라퓨틱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지난해 2월 파트너십 계약을 맺은 중국 헬스케어 벤처펀드 운용사 CBC 그룹(전 C-브릿지 캐피탈)이 세운 자회사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에퍼메드 테라퓨틱스와 유방암 치료제 'SB3'의 중국 내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SB3에 이어 중국에서 두 번째로 임상 3상에 착수하는 제품이 SB12다. 이 제품은 미국 알렉시온이 개발한 '솔라리스'의 바이오시밀러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에퍼메드 테라퓨틱스를 중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향후 이 회사와 안과질환 치료제 'SB11', 'SB15'에 대한 중국 내 임상, 인허가, 상업화도 협업할 계획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현재 사업에 크게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직원 건강 문제 등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국 의약품 시장 규모. 출처=중국산업정보, NH 투자증권

세계 2위 제약 시장 노리는 중국 야망 발목

급성장 중인 중국 의약품 시장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제동이 걸렸다. 

중국 의약품 시장은 지난 2013년 1618억 달러에서 2017년 2118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올해 3305억 달러까지 확대되며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의약품 시장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예상보다 빠른 감염증 확산에 중국 의약품 시장의 성장률이 하락할 위기에 처했다. 사태가 극적으로 반전되지 않는 한 3305억 이상의 성장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신종 코로나 여파로 중국 진출 기업들이 공장 가동을 중지하고 주재원을 속속 철수시키는 등 탈중국화를 시도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지난달 3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제적인 공조를 요청했다. 당시 WHO는 교역과 이동 제한까지 권고하지 않았지만 미국 등 각국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자국민에게 중국 전역에 가지 말라는 의미의 여행금지령을 내렸다. 세계 각국에서 중국행을 차단함에 따라 최소 올해 1분기는 중국 내 의약품 원료 수출이 타격을 입고, 매출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지인 중국 우한과 인접한 후베이성에는 수많은 제약업체가 상주해 있다. 전 세계에 원료 의약품을 공급하는 생산시설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대부분의 생산시설이 가동을 멈추면서 전 세계 의약품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을 넘어 세계 의약품 시장에도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