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한진가(家)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공개적으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KCGI, 반도건설과 손을 잡은 상태에서 조 회장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분위기다.

한진칼 주요 주주 3곳이 반(反) 조원태 세력을 결집하자 조 회장은 사실상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평가다. 3월말 열리는 한진칼 주주총회에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공동 입장문 발표...사실상 '조 회장 퇴진하라'
법무법인 태평양은 31일 조현아 전 부사장, KCGI, 반도건설 명의의 공동 입장문을 내고 "국민의 기업인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의 현재 경영상황이 심각한 위기상황이며 그것이 현재의 경영진에 의하여는 개선될 수 없고 전문경영인제도의 도입을 포함한 기존 경영방식의 혁신, 재무구조의 개선 및 경영 효율화를 통하여 주주가치의 제고가 필요하다는 점에 함께 공감했다"면서 "이를 위해 다가오는 한진칼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와 주주제안 등 한진그룹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활동에 적극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어 "앞으로 한진그룹의 전문경영인 체제와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하여 , 어느 특정 주주 개인의 이익에 좌우되지 않고 그동안 소외되었던 일반주주들의 이익을 증진하며 주주 공동이익을 구현할 수 있는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정립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면서 "사업의 강화를 통하여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그룹을 성장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제시 할 것이며, 그러한 과정에서 주주가치는 물론 한진그룹의 임직원 고객 , 파트너의 권익도 함께 증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조원태 회장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입장문의 핵심인 '현재의 경영상황이 심각한 상황이며 이는 현재의 경영진에 의해 개선될 수 없기 때문에, 주주총회를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를 꾀하겠다'는 메시지는 곧 조 회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것이자 자기들이 전면에 나서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 활활 타오르는 경영권 분쟁
고 조양호 회장이 지난해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향년 70세를 일기로 별세한 가운데, 업계에서는 '포스트 조양호는 과연 누구인가'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그러나 고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현 한진그룹 회장이 무난하게 전면에 나섰다. 

조원태 회장은 고 조양호 회장 별세 후 사장에서 회장으로 올라선 다음 지난해 10월 지주사 한진칼의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해 5월 한진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대기업집단 및 동일인(총수) 지정과 관련한 서류 제출을 늦추다가 부랴부랴 스캔본을 제출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장 한진그룹 내부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남매 갈등설이 제기된 이유다. 그러나 조 회장은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가족 간 협력을 안 할 수 없는 구조"라면서 "자기 맡은 분야에 충실하기로 세 명이 합의한 상태"라며 진화에 나섰다.

조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남매의 갈등에 선을 그었으나, 그의 발언 후 정확히 한 달이 지난 지난해 12월 기어이 충돌의 불꽃이 외부로 튀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법률대리인을 통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아버지인 고 조양호 회장의 뜻에 반하는 경영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조 전 부사장은 법무법인 원을 통해 “선대 회장님은 생전에 가족들이 협력하여 공동으로 한진그룹을 운영해 나가라고 말씀하시는 등 가족들에게 화합을 통한 공동 경영의 유지를 전하셨다”라면서 “선대 회장님 작고 이후 선대 회장님의 유훈에 따라 가족 간에 화합하여 한진그룹을 경영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생인 조원태 주식회사 한진칼 대표이사는 물론 다른 가족들과도 공동 경영 방안에 대해 성실히 협의하여 왔다”고 말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원태 대표이사는 공동 경영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하여 왔고, 지금도 가족간의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라면서 “한진그룹은 선대 회장님의 유훈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상속인들간의 실질적인 합의나 충분한 논의 없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이 지정되었고, 조 전 부사장의 복귀 등에 대하여 조 전 부사장과의 사이에 어떠한 합의도 없었음에도 대외적으로는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공표되었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조 전 부사장은 한진그룹의 주주 및 선대 회장님의 상속인으로서 선대 회장님의 유훈에 따라 한진그룹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향후 다양한 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의 주장은 남매의 갈등은 없고, 각자가 자기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는 조 회장의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강대강 대치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갈등의 표출은 경영에 깊숙히 관여하려는 조 전 부사장을 조 회장이 막아서며 시작된다고 본다.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소위 땅콩 회항사건으로 그룹 내 모든 직책을 내려놨으나 2018년 3월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하며 경영 일선 복귀에 시동을 건 바 있다. 물론 동생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소위 ‘물컵 갑질’ 논란이 벌어지며 조 전 부사장도 복귀 보름만에 다시 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으나, 조현진 전무가 다시 경영에 복귀하자 조 전 부사장 복귀도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말이 나온 바 있다.

명품 밀수 혐의(관세법 위반 등)와 외국인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도 집행유예를 받아 운신의 폭도 생겼고, 갑질 논란에 시달리던 어머니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도 정석기업의 고문으로 복귀한 상태다. 오래전부터 경영에 의욕을 갖고 있던 조 전 부사장 입장에서는 복귀를 위한 모든 무대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런 가운데 조 전 부사장은 고 조양호 회장이 별세한 후 적극적으로 자기의 역할을 찾으려 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동생 조원태 회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한진그룹은 조 전 부사장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고 그 연장선에서 공정위 동일인 지정 당시 내부적인 신경전이 증폭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정기 임원인사에서 조 전 부사장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고, 조 전 부사장의 측근들도 대부분 승진하지 못하자 결국 법무법인 원을 통해 실력행사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조원태 회장이 한진그룹의 호텔 사업 축소를 선언한 대목이 조 전 부사장을 자극했다는 말도 나온다. 호텔 계열사인 칼호텔네트워크의 영업적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조 회장은 해당 사업에서 단계적인 철수를 선언했고, 이러한 장면이 호텔 사업에 애착을 가진 조 전 부사장의 '역린'을 건들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 전선은 어떻게?
조 전 부사장이 지난해 12월 입장문을 발표하자 한진그룹은 즉각 입장자료를 내고 "회사의 경영은 회사법 등 관련 법규와 주주총회, 이사회 등 절차에 의거해 행사돼야 한다”며 “최근 그룹이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변화의 기초를 마련하고 있는 중요한 시점에서 금번 논란으로 회사 경영의 안정을 해치고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당시 조 회장이 모친인 이명희 고문의 자택에서 소란을 부렸고, 이 고문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이 어머니인 이 고문이 자기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누나인 조현아 전 부사장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소란을 부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당시 상황은 한진그룹 관계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업계에서는 이러한 분위기 자체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폐쇄된 집 안에서 벌어진 대기업 총수 일가 내부의 일이 외부에 알려진 것 자체에, 이 고문의 의도가 있다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 고문이 아들인 조 회장보다 딸인 조 전 부사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자택 소동 사건' 후 모자가 다시 화해했다는 말이 나오는 한편, 지난 설 연휴에 다시 두 사람이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이 전해지며 '갈등설'이 잦아드는 분위기도 일부 연출됐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이 31일 공동 입장문을 통해 사실상 조 회장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사태는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전선의 상황이 미묘하다.

현재 한진칼 지분 상황을 보면 조 회장이 6.52%, 조 전 부사장이 6.49%, 조현진 한진칼 전무가 6.47%, 이명희 고문이 5.31%를 가지고 있다. 4.15%는 재단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하고 있으며 사모펀드 KCGI가 17.2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델타항공이 10.0%, 반도건설이 8.20%, 국민연금이 4.11%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조현아 전 부사장이 KCGI와 반도건설과 함께 공동 입장문을 내며 사실상 반 조원태 회장 진영이 완성됐다. 여기에 이명희 고문, 조현민 전무가 사실상 조 전 부사장 우호진영으로 분류된다.

재미있는 조합이라는 평가다. 먼저 KCGI는 행동주의 사모펀드로 활동하며 사실상 한진그룹의 개혁을 요구하던 진영이다. 지난해 1월 20일 한진그룹의 신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전문 경영인 체제의 도입을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 이 대목에서 조 전 부사장이 KCGI의 손을 잡은 배경에 시선이 집중된다. 업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경영 최전선에 나서지 않는 선에서 KCGI와 전략적 제휴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 조 전 부사장이 조원태 회장 퇴진을 위해 오너 일가 최대의 숙적인 KCGI와 손을 잡고 마지막 승부를 걸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KCGI가 요구하는 오너 일가의 경영 철수 및 사외이사 경영 참여까지 인정하는 선에서, 조 전 부사장은 호텔 사업에 집중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반도건설의 경우 당초 한진그룹의 경영권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최근에는 적극 개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평가다. 조현아 전 부사장과의 교감설이 회자되던 당시만 해도 '그럴 일 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이를 뒤집고 조 전 부사장의 손을 단단히 잡은 후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는 평가다. 반도건설은 이명희 고문과의 유대관계가 강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 전 부사장을 중심으로 반 조원태 회장 진영 지분은 의결권이 없는 반도건설 지분 0.8%를 제외하고 총 31.98%가 된다.

조원태 회장의 위기다. 조 회장은 6.52%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조 회장 진영으로 볼 수 있는 정석인하학원은 2.14%, 정석물류학술재단은 1.08%, 일우재단은 0.1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1%를 가진 카카오, 10%의 델타항공이 우호진영으로 분류된다. 조 전 부사장 진영과 비교하면 크게 밀린다. 당장 3월 주주총회 결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어떻게든 어머니 이명희 고문과 조현민 전무를 우호진영으로 끌어들이고, 이후 치밀한 주주 설득작업에 나서야 하는 숙제를 받았다.

# 형제의 난, 이번에는 남매의 난
한진그룹이 격랑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남매의 난으로 한진그룹의 성장 동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진그룹의 선대에서 형제의 난이 벌어졌다는 점이 회자되며 안타까움은 배가되고 있다.

실제로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은 1945년 인천에서 한진상사를 일으키며 한진그룹의 역사를 창조했으며, 장남인 고 조양호 회장이 2002년 경영권을 승계했으나 차남인 조남호 회장과 4남 조정호 회장은 조양호 회장이 선친의 유언장을 조작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른바 형제의 난이다.

조양호 회장과 조남호, 조정호 회장은 2005년부터 법정공방을 벌이며 소모전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한진그룹의 성장 동력은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한진해운은 파산했고 조남호 회장은 한진그룹과 완전히 결별하는 등 '말로'가 좋지 않았다. 이들은 고 조양호 회장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화해하지 못했다.

형제의 난을 겪은 고 조양호 회장의 마지막 유언은 '남매간의 우애'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한진그룹의 상황은 고 조양호 회장의 바램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