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어휴, 여기(중계청구3차아파트)는 이제 거래 거의 없지, 작년 10월 이쯤이면 몰라도 다 끝났어” 중계동 은행사거리 인근 D부동산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강남에 대치동 있다면 강북엔 小치동 있다

중계역, 노원역, 상계역 등 지하철역으로부터 최소 1.4km 떨어져 있어 대중교통으로는 버스를 갈아타야 진입할 수 있는 노원구 중계동 은행사거리. 지역 주민들이 ‘은사’라고 부르는 이 거리는 강남구 대치동, 양천구 목동과 함께 서울 시내 대표적인 학원가로 꼽힌다. 

“강남에 대치동이 있다면 강북엔 ‘소치동’ 을지학군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운 학군이기도 하다. 대치동이나 목동에 비하면 집값 부담도 덜해 ‘가성비 좋은 학군’이라는 소리도 종종 나온다. 특히 을지초등학교, 을지중학교, 상명중학교, 서라벌고등학교, 대진여자고등학교 등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이 근방이 ‘빅 학군’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은행사거리 중심으로 중·고등학교가 많고, 대로변에 저렴한 임대료의 건물들이 많아 학원이 들어서기 쉽기 때문이다.

중계동 은행사거리 대로변에 늘어선 학원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은행사거리 앞 스타벅스는 평일 오후에도 학원 숙제 하는 학생들과 입시정보를 나누는 학부모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학원 평가를 하고 있던 학부모들 중 A씨는 이쪽 지역에 대해 “교통편 빼고는 학군 끝내준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서라벌고에서 서울대 7명 갔다고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는 말이 나오자 주변에서 작은 탄성들이 터졌다. 그는 “(도심으로) 출퇴근 하는 애 아빠가 고생하긴 하지만 학원가 도보 가능한 게 큰 장점”이라며, 5분 거리에 200개 넘게 있는 학원을 입맛 따라 골라 다닐 수 있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B씨는 “유해시설이 거의 없다. (유해시설이라고) 해봐야 지하 PC방이나 노래방, 무엇보다도 (이 지역) 부모들의 관심이 있어 방임되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며 아이들이 학원 마치고 늦은 밤에 혼자 걸어 다녀도 불안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근린공원이랑 산도 있어 아이들과 살기 좋다”며 해당 지역이 생활권으로도 인기가 높다고 했다.

청구3차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한 중학생은 중학교 배정 때문은 아니지만 이쪽 학원을 다니기 위해 이사 왔다고 말했다. 한성과학고등학교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에 중계동과는 멀지 않으냐고 묻자, “여기 과고 많이 보내기로 유명하다”라며 “한 곳에서 외고만 200명 가까이 보낸 학원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해 6월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추산한 ‘2019년 중학교 졸업생 진로현황’에 따르면 전국에서 과학고 진학자가 가장 많은 자치구는 서울 강남구(78명)에 이어 노원구가 55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외고·국제고 진학 수는 노원구가 175명으로 제일 많았고, 125명을 배출한 강남구와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과학고, 외고, 국제고 진학자를 모두 합친 수치로는 노원구(233명)가 강남구(203명)를 제치며 서울 지역 1위다. 학교별 과학고 진학 현황에서도 노원구의 불암중(10명), 을지중(7명), 중계중(7명)이 서울 지역 톱 10 안에 들었다. 이 학교들은 모두 중계동 은행사거리 반경 600m 내에 자리하고 있다.

“서라벌고가 좋아서 여기 학원이 많이 생겼다. 서울대 많이 보냈다는 소문이 퍼져서" 밤 10시가 지나 11시 야심한 시각인에도 이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학원 수업이 끝난 학생들과 아이를 픽업하러 오는 엄마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그는 “25차 (학원) 셔틀버스는 의정부까지 가요”라며, 노원구와 가까운 경기권에서도 이쪽 학원가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전했다.

“부모님들이 그러는데, 여기 지하철역에서 먼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 역세권이면 집값 더 올랐을 거라고. 그리고 이쪽은 LH(임대아파트)에 대한 무시도 덜하다. 거기 사는 애들도 공부를 잘해서다”

6개월 일찍 일어난 맹모가 학군에 자리 잡는다

중계동 학군의 대장주 청구3차아파트.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중계동 학군의 대장주 건영3차아파트.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은행사거리에서 도보 5분 내외 거리에 있는 아파트들은 주공아파트를 제외하고 대부분 32평형 이상으로, 현재 시세 9억3000만원에서 10억7000만원대를 호가한다. 3.3㎡당 시세는 청구3차아파트와 건영3차아파트 같은 32평형 경우 3000만원 사이에서 움직였고, 그 외 아파트들은 42평형 기준 2200만~2500만원 선이었다.

은행사거리 바로 옆에 있는 청구3차아파트와 건영3차아파트는 지어진 지 25년 정도로 오래됐지만 명실상부 대장주로 꼽히고 있다. 을지초등학교와 을지중학교를 함께 끼고 있어 이쪽 지구의 중심 단지가 될 만한 조건을 갖췄고, 특히 을지초는 근처의 입시성적이 좋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배정받기 위한 첫 계단이기 때문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운영하는 '학교알리미'의 공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을지초등학교의 총 전입생 수는 639명, 전출생 수는 148명으로 순유입 인원만 491명이었다. 3년 내내 전학 온 학생이 전학 간 학생보다 4배 이상 많은 흐름이 이어졌다. 같은 기간 서울 소재 초등학교의 평균 전입학생비율과 전출학생비율은 각각 5~5.1%, 5.7~6.1%로 수치가 엇비슷한 양상이 지속된 점을 감안하면 특징적인 추세다.

을지초의 경우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3년간 고학년(4~6학년)과 저학년(1~3학년) 학생수의 차가 적게는 250명에서 많게는 329명의 폭을 보였고, 고학년(4~6학년)이 전체 학생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8~60%로 과반 이상인 흐름이 꾸준히 나타났다. 이는 중학교 진학을 의도한 학군 진입이 많다는 의미다.

2월 2일 기준 중계동 은행사거리 인근 아파트 시세. 출처=한국감정원

12.16 풍선효과 '을지학군' 피해 주변 시세 올려

그러나 설 이후 현재 중계동 학군 부동산시장에서는 별 움직임이 읽혀지지 않는다. 청구3차아파트 근처 J부동산의 말을 빌리자면 “중계동 이쪽은 올스톱이다. 매물도 잘 안 나오고, 거래도 거의 없으며, 심지어 문의도 없다”고 말했다.

중개업자들은 지난해 12월까지는 매물을 찾는 수요자가 꽤 있었다고 전했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정체된 상황이다. 이미 학교 배정이 다 끝났기 때문이다. 학교 배정을 노린다면 새학기 시작보다 6개월 앞서 준비해야 한다. 즉 학군이 좋은 곳으로 유입하는 수요자들의 움직임은 10월부터다. 추석 지난 후인 10월 말, 11월 초까지는 초등학교에 전입신고를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D부동산과 J부동산은 매매와 전세를 불문하고 최근 일주일은 물론 한 달 내에도 학군의 중심 아파트들은 거래가 거의 없었다는 동일한 의견을 전했다. J부동산은 은행사거리와 인접한 아파트들은 물론 주공아파트까지 매매가 거의 없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설 직전부터 해서 1~2주 정도 됐다.

J부동산은 “특히 12.16대책 발표 후 1월에는 청구, 건영은 거래가 소멸했다”며, 대장 아파트 경우 거래가 없으니 가격도 변동이 없다고 언급했다. 현재 청구3차아파트와 건영3차아파트는 시세는 매매 9~10억, 전세 5억3000만~6억원 수준이다. 대신 주변이 움직인다며 “(상계동과 인접한) 양지대림아파트나 신안아파트 이런 데는 실거래 6억대 후반에서 7억 선이었는데 지금은 8억대로 뛰었다”고 언급, 이를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풍선효과로 해석했다.

“이렇게까지 문의가 없는 건 처음인 것 같다”고 한숨을 쉬던 J부동산 중개업자는 9억 이하 매물만 간간히 문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9억 이상은 고가주택으로 분류돼 대출이 안 나와 문의도 없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이들도 별 움직임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학군이 이 정도 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이들 기숙사비를 내주거나 원룸을 얻어준다”며 사람들이 잘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10년 정도를 지내면 생활터전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학원이나 상가 매물에 대해서는 가끔 나온다고 답했다.

실수요자 위주로 꾸준히 거래하고 있다고 밝힌 L공인중개사도 최근 흐름에서 매매, 전세, 반전세 등 거래량의 어떤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윤지해 수석연구원은 이런 흐름에 대해 “12.16대책은 애초 강남권을 겨냥한 것이라 강북권은 상대적으로 아파트값이 덜 올랐던 단지들이 주목 받고 있다. 노원 쪽에 저평가된 아파트들이 특히 그러하다. 서울에서 전세나 매매 등 물건이 많지 않은 현상은 강북권에서 더 심하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노원구로, 노원 내 중심과 학원가 중심 쪽에 매물이 부족하다”고 분석하는 한편, “대치동이나 목동의 경우 집값의 부담이 커 전세로 들어와 졸업 직후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으나, (비교적 집값이 싼) 중계동 학군은 그렇지 않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