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 백수가 380명이 넘는단다.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비경재활동인구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사상 최대 규모가 되었다는 소식이다. 대학이 학문보다는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씁쓸하지만 현실은 그 보다 더 엄혹하다. 나 역시도 쉽지 않았던 취업의 길이었지만, 이젠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면 욕 먹는다는 소리 듣게 되니 조심하라는 얘기가 동년배들 사이에서 공유된다.

30년 전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지방에서는 두 번째로 큰 캠퍼스를 가지고 있네 뭐네 하면서 떠들어댔지만, 정작 학교 시설들은 별로였다. 특히 2만명이 넘는 학부생과 5천여 대학원생들이 공부하기에 중앙도서관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 그래서 새벽 같이 도서관에 자리를 대신 잡아주는 ‘도자기’, 남의 자리에서 공부하다가 주인이 오면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공부해야 하는 ‘개구리’, 자기 자리도 아니면서 이런 개구리를 잡아먹으면서 공부하는 ‘뱀’ 같은 말들이 유행어였다.

도서관은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시설도 부족했지만, 특히나 열악했던 것이 화장실이었다. 새벽에 눈 뜨자마자 싸 짊어지고 도서관으로 온 탓에 하루의 볼일들은 죄다 도서관에서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 층만 해도 학생들이 수 백 명이 넘는데, 층마다 화장실은 달랑 두 군데 밖에 없었다. 특히나 큰 일 볼 수 있는 곳은 한 화장실에서 대여섯 칸이었는데, 그 중 한 두 개는 늘 고장이었다. 때문에 다 큰 어른인 대학생임에도 누가 도서관 5층에서 빈 화장실이 없어 옆 건물로 가다가 지렸다는 웃픈 얘기도 나돌았다.

 

서로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화장실 벽엔 온갖 낙서로 가득했다. 어느 학과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기말고사의 족보가 있는가 하면 형이상학적인 사자성어의 향연이 있는 곳도 있었고, 남녀상열지사도 많았다. 그 중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문구가 있다. 누군가 밖에서 애타게 화장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써 놓은 한 줄이었는데, 한자가 섞여있었다. ‘당신이 思索에 잠긴 동안 누군가는 死色이 된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어, 의미는 쉬이 짐작될 것이다. 문 안에 있는 자에게는 느긋한 시간이지만, 문 밖에서는 일분 일초가 화급하다.

지금이야 공공시설이나 그 밖의 화장실도 깨끗하게 잘 만들어지고 관리되지만, 50줄에 들어선 연배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집 밖에서 볼일 보는 것은 거북했다. 학교 화장실은 특히나 더 그랬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침에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면서 큰 일 작은 일을 계속 봤다. 학교에 가서 볼일을 보지 않을 수는 없더라도 그 횟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특히나 큰 일을 보게 되는 불상사는 일어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화장실에 대한 간절함은 사라졌지만, 참으로 기이한 다르면서도 동일한 현상을 늘 마주하고 있다. 시간에 대한 다른 해석, 결정 장애자들이 늘 득시글대고 있기 때문이다. 지시하는 사람의 시간과 지시 받은 사람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시간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 ‘내일 자료를 볼 수 있게 해!’라는 지시만 하더라도, 시킨 사람은 ‘내일이 되면 자료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하지만,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은 ‘내일이 다 가기 전까지 보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결재’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재를 올린 사람은 이미 구두로 설명도 하고 서로 이해된 사안이어서 결재를 받고 나서 빨리 진행하기를 원한다. 결재에 대한 승인이 곧 프로젝트의 시작이라는 생각이다. 반대로 결재를 해주는 사람은 혹여 문제가 생길 수가 있기 때문에 제반 사안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말이 좋아 생각이지 사실은 책임에 대한 회피 습관이다. 결재판을 받고 나서부터 오랫동안 고심을 했다는 자신의 방어논리를 위해서 사인을 미루고 미룬다. 그리고 결재만 하면 끝이라 생각한다.

결재판을 들이민 입장에서는 속이 타고 死色이 되어 가지만, ‘좀 더 생각해 볼게’라는 말과 함께 思索에 잠긴 입장은 분초를 다투는 사활의 화장실 문처럼 서로 다르다. 특히나 큰 예산이 걸려있는 프로젝트라면 결재를 받아야 비로소 예산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전에는 함부로 진행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한 시라도 빨리 결재를 받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반대로 결정 장애에 빠져 있는 입장에서는 결정해 주면 해결되는 문제이니 마지막 타이밍까지 기다린다. 마감 시한에 쫓기고 나서야 펜을 든다. 정작 사인은 늦게 해 주면서 일은 재촉한다.

 

“니가 하라고 했잖아?” 부하직원에게 할 소린가

이젠 밖에 나가면 후배들뿐인 듯 하다. 자주 만나는 후배도 이미 이 바닥에서 원로급 대접을 받는 터라, 행사장 같은 곳을 가더라도 뒤에서 조용히 앉았다가 슬그머니 빠져 나오곤 한다. 나 역시도 현실에 부딪히면서 예전에 못했던 경험을 해 가면서 고군분투해야 하고 속상한 일이 태반이지만 후배들 면전에서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 자리에서는 그냥 후배들 이야기를 들어줄 수 밖에 없다.

하루는 술이 좀 들어가자 후배가 쓰린 속내를 털어놨다. 외부에서 새로이 임원이 왔는데 이 방면에는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차라리 그 윗선 경영진들과 후배가 손발을 맞춰온 지 오래여서 말이 잘 통했는데, 문제는 담당 임원이 게이터키퍼로 버티고 있으면서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키기만 하니 도통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떨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곤혹스런 기사가 올라오거나 감당하기 힘든 사건들이 벌어져서 미리미리 보고도 하고 결재도 올리지만 그 위에서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작은 사안도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되면 큰 상처를 입게 될 뿐만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몇 배로 들여야 하는 사안으로 곪기 일쑤였다고 했다. 그렇다고 과정을 생략하고 더 윗선에 직보를 하게 되면 더 큰 일이 벌어지곤 해서 골머리를 썩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임원의 습관적인 행동은 결재를 올리면 내용부터 검토할 생각은 하지 않고, “마감이 언제지?”라거나 “언제까지 결정해야 돼?” 같은 확인만 거듭하곤 했다. 그러다가 마감 시한이 닥쳐오면 담당자를 불러서 기안 문서를 같이 보면서 이해를 겨우 하고, 사인을 해 주곤 했단다. 그러다 보니 결재를 받기는 했지만 늘 일을 초치기로 밀어붙여야 했고, 마감시한에 닥쳐서 일하는 실무자는 몇 배로 힘을 들여야 겨우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에서 돌아온 그 임원이 후배를 불러놓고 “니가 하라고 해서 결재를 해 줬는데, 사장단 회의에서 면박만 받았다”며 모멸감이 들만큼 몰아붙인 일이 있었다. 내용인즉슨 사장단 회의에서 제기되어서 시행하기로 한 프로젝트를 실무진인 후배는 즉시 내용을 공유하고 위로 보고하고 품의를 올렸는데, 위에 있던 임원이 결재판을 받아서 보지도 않고 던져둔 채로 시일이 제법 흘러가 버렸던 모양이었다.

결재가 나기만을 학수고대 하고 있다가 마침 실무진에서 돌아가면서 출장에 외근이 겹쳐져 있던 참에 뒤늦게 결재판을 들여다본 임원이 그 건에 대해 경영진에 보고를 하니, 뒷북인 셈이었다. 이미 프로젝트의 양상이 바뀌어 다른 방향으로 선회해야만 했다. 열심히 일하고 야단만 들은 후배는 못내 속상한 마음에 술의 힘을 빌어서 내게 털어놓았는데,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나 역시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제는 나는 그런 꼰대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만을 속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얼마 뒤에 만났던 후배는 새로운 소식을 전해줬다. 그 임원이 다른 계열사로 발령이 나고 팀장 체제로만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미 그 후배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경영진에서도 웬만한 일은 후배가 다 감당해왔고, 후배로부터 직접 듣고 상의해서 진행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교훈을 얻었던 모양이었다. 그 후배가 임원으로 승진하지 않는 한, 어쩌다 낙하산처럼 내려오는 임원은 없을 것이라는 전갈이었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최고경영자인 레이 달리오는 그의 저서 ‘Principles 원칙’에서 ‘습관은 뇌의 공구함에 있는 공구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다’라며, 습관이 미칠 수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책임자로서 최고의 성공은 자신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이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다음은 자신이 일을 잘 하는 것이다. 최악은 자신이 일을 못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습관적으로 결정을 미루는 사람, 습관적으로 결정에 장애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흔한 요즈음이다. 그게 점심 식사로 뭘 먹을지에 대한 결정 정도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으나, 조직의 존립과 직결될 수 있는 사안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거기에 실무진들이 일을 잘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준비하고 매달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나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는 자기 변명이라는 함정에 빠져서 늘상 결정을 미루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학창시절에 나처럼 ‘내일부터는 정말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내일이 되면 나는 또 ‘오늘까지만 놀고, 내일부터는….’이라는 다짐을 수도 없이 했었다. 결과는 요모양 요꼴이지만.

마케팅의 천재 소리를 듣는 세스 고딘은 ‘퍼플 카우 2’에서 ‘성공한 CEO들의 공통점은 실패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주 실패를 거듭하지만 그때마다 책임을 진다는 데 있다’고 했다. 꼭 CEO가 아니라 조직의 리더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결정거리들을 그냥 끌어안고 있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다. 뒤가 급한 사람이 화장실 문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안간힘을 쓰면서 동동거리는 수 밖에 없다. 실행에 옮길 일들에 대한 결정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도 그리 많지 않다.